역사이야기

환단고기 진위 논쟁의 주요 내용4

늠내 화랑 2012. 12. 1. 09:18

작성자 : 이한근

출쳐 : 상생출판 환단고기 완역본 P119


논점 : 대진국 문왕의 연호 




위서론의 주장 : 


대진국 문왕의 연호는 [신당서]에 이미 기록되어 있다. [환단고기]에 그 연호가 기록되어 있다고 해서 [환단고기]가 진서인 것은 아니다. 



위서론에 대한 반론 : 


대진국 문왕의 연호가 [신당서]에도 기록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동안 학자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1980년에 발견된 정효공주 묘의 묘비명을 통해 그 연호가 밝혀지면서 학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환단고기]가 그 연호를 기록한 것은, 진서임을 입증하는 사례가 된다. 




논점 : 지명 영고탑 




위서론의 주장 : 


청나라(1644-1911) 때 생긴 지명이다. [단국세기]의 저자인 이암이 고려시대 사람이므로 이 지명을 알았을 리가 없다. 그러므로 [환단고기]가 근세에 꾸며진 책이라는 결정적 증거이다. 



위서론에 대한 반론 : 


대표적인 위서론자인 조인성은 [환단고기]에 자주 등장하는 영고탑은 천나라 시조 전설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영고탑이라는 지명은 천나라 이전에는 사용할 수 없으므로 위서라고 단언한다. 


그러나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에서는 [명실록明實錄]을 인용하여 명나라 초기에 영고탑로寧古塔路가 있었다고 전한다. 따라서 영고탑이라는 명칭은 적어도 명나라 초기(1368) 이전에 이미 사용되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영고탑을 단지 지명으로만 해석하려는 시도 자체가 무리이다. 

영고탑은 원래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리던 '영고迎鼓터'란 지역으로 북부여北夫餘 이후 황폐화되고 고구려, 대진국의 멸망으로 자체 역사기록이 사라지면서 그 유래에 대해 정확히 아는 가람이 없어졌다. 다만 이름만 간신히 전해지다가 청나라 시조 전설과 맞물려 '영고탑寧古塔' 으로 기록된 것이다.



논점 : 기독교 교리 용어와 유사한 술어의 사용 



위서론의 주장 : 


[환단고기]에는 기독교 교리와 유사한 '삼신일체三神一體' 라는 말을 쓴다. 그리고 영혼, 각혼, 생혼은 명나라 때 예수회 선교사였던 마테오 리치 Matteo Rici 신부가 [천주실의天主實義] 에서 성삼품설聖三品說로 설명한 내용이다. 그러므로 [환단고기]는 기독교가 전래된 이후에 위작된 것이다. 



위서론에 대한 반론 : 


기독교의 삼위일체三位一體는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하나인데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인격人格으로 계신다' 는 뜻이고, [환단고기]의 삼신일체는 '우주의 조물주는 본체에 있어서는 하나이지만 작용으로 보면 삼신이며, 삼신의 본체와 한 몸이 되어 우주 만유를 다스리시는 지존무상의 주재자 삼신상제님이 계신다'는 뜻이다. 

삼신과 삼신일체상제님은 삼성조 시대로 부터 한민족이 사용해 오던 하느님의 명칭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삼위일체 하나님과 [환단고기]의 삼신일체 하느님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마테오 리치 신부가 사용한 영혼, 각혼, 생혼이란 표현은 동북아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던 개념이다.  그는 기독교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명나라에 들어가 한자 및 동양 문화를 섭렵한 바탕 위에서 [천주실의]를 저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