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환단고기의 편찬과 대중화

늠내 화랑 2012. 10. 23. 08:25


환단고기의 편찬과 대중화 




환단고기는 1864년 평안도 선천에서 태어난 운초 계연수(1864~1920)가 지인들로부터 구한 한민족의 정통 사서들을 한권으로 엮은 책이다. 

집안 대대로 전해오던 안함로의 삼성기, 
인근 태천에 살던 백관묵에게서 구한 원동중의 삼성기와 단군세기, 
삭주사람 이형식의 소장본 북부여기와 단군세기(그 내용이 백관묵의 단군세기와 동일하였다고 한다.) 합본, 
그의 스승이자 항일운동 동지였던 해학 이기의 집안에서 전해오던 태백일사. 

이기는 단군세기를 쓴 이암과 태백일사를 쓴 이맥의 직계 후손으로 우리의 고대사에도 해박한 인물이었다. 

이기의 지도 아래 계연수가 발간한 역사서의 결정판이 바로 환단고기이다. 

1911년 계연수는 그의 벗이자 독립운동 동지인 홍범도와 오동진 두 사람의 자금 지원으로 만주 관전현에서 환단고기 30부를 간행하였다. 

9천 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외세에 나라를 완전히 빼앗기고 절망과 통탄의 벼랑 끝에 서 있던 그때, 민족의 국통 맥을 천지에 선포하는 위대한 사서 환단고기가 출간된 것이다. 

그는 항일독립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여 천마산대, 서로군정서 등의 독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다 56세의 나이에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무참히 살해 되었다. 

당시 압록강에 처참하게 버려진 그의 시신이 수습되는 관경을 지켜본 소년이 있었다. 

그가 바로 환단고기를 널리 대중화기킨 이유립(1907~1986)이다. 

이암과 이맥의 후손인 그는 평안도 삭주의 유지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이관집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유립은 계연수와 친했던 부친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역사에 눈을 뜨게 되었다. 

13세 때(1919) 단학회가 주관하는 교육기관인 배달의숙에 들어가 계연수, 이덕수 두 스승의 강의를 들으며 환단고기를 공부하였다. 

그 후 독립군의 통신원으로 활동하기도 하고(14세), 신간회의 삭주 지부를 결성하는(21세) 등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45년 광복직후에는 단학회 기관지 태극을 발행, 그 주간(主幹)으로 활동하였다. 

1948년에 계연수 사후 그에게 전수된 환단고기를 가지고 월남하였다. 

이후 그는 단학회를 단단학회로 개칭하였도, 1963년 대전에 정착한 이후에는 후학을 기르며 역사 연구와 강연에 전념하였다. 



※ 현제 단단학회 회장인 양종현은 이유립을 1967년 고등학생 시절부터 약 20년간 모시면서 역사를 배웠다. 

환단고기가 이유립의 창작이란 비난에 대해서 그는 환단고기 초간본을 좁은 방에서 스승과 무릎을 맞대고 앉아 글자 하나하나 짚어가며 배운 기억을 생생하게 전해주며 결코 위작이 아님을 증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