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족 ; 독특한 티베트 문화의 주인공
(1) 인구와 분포
티베트족 인구는 2000년 현재 5,416,021명이며 중국 내 소수민족 가운데 인구규모가 9번째로 크다.1) (2000년 중국 인구조사통계)
티베트족의 주요 분포지인 서장자치구에 중국 내 티베트족 전체 인구의 약 45%인 2,427,168명이 거주한다(서장자치구 전체 인구 2,616,329명의 약 93%임).
이외에 사천성(1,269,120명), 청해성(1,086,592명), 감숙성(443,228명), 및 운남성(128,462명)에 많이 분포하며, 이외의 성급 행정구역에는 모두 1만 명 미만의 티베트족이 산재하고 있다.
이처럼 티베트족이 분포하는 지역은 매우 넓으며 중국 전체 국토면적의 약 1/4를 차지한다.
서장자치구 이외에 티베트족이 밀집 거주지로는 먼저 청해성의 옥수(玉樹) 티베트족 자치주, 과락(果洛) 티베트족 자치주, 황남(黃南) 티베트족 자치주, 해남(海南) 티베트족 자치주, 해북(海北) 티베트족 자치주와 해서(海西) 몽골족(蒙古族) · 티베트족 자치주와 해동(海東) 지역 등이 있고
감숙성의 감남(甘南) 티베트족 자치주, 천축(天祝) 티베트족 자치현 그리고 사천성의 감자(甘孜) 티베트족 자치주, 아패(阿壩) 티베트족 · 강족(羌族) 자치주, 목리(木里) 티베트족 자치현, 운남성의 적경(迪慶) 티베트족 자치주 등이 있다.
티베트족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 중 일부에는 한족(漢族), 몽골족, 회족(回族), 투족(土族), 싸라족(撤拉族), 강족(羌族), 먼바족(門巴族) 및 로바족(珞巴族) 등 다른 민족들이 티베트족과 섞여 산다.
* 출처 : 앞 책《中國民族工作年鑑》 2003년 판, pp.790-791 (‘2000년 전국 인구센서스 각 민족의 도시 · 진 · 향촌 거주인구’)
티베트족은 향촌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비율이 87.17%로서, 한족(61.83%) 및 중국 전체 평균(63.08%)은 물론 중국 내 전체 소수민족 평균(76.56%)보다도 높다.
반면 준도시화 지역인 진(鎭) 거주비율은 8.74%이며, 도시 지역 거주비율은 4.09%로 매우 낮다. (2000년 중국 인구조사통계)
(2) 티베트족 주요 거주지의 자연환경
티베트족 대다수는 평균 해발 약 4천m의 티베트 고원(靑藏高原)에서 살고 있다.
티베트 고원은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고원 지대로서, 아시아 대륙의 주요 하천이 발원한다.
이렇게 해발이 높기 때문에 지형, 지질, 인문, 동물, 식물 등 여러 방면에서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지리상으로 티베트 고원은 북쪽으로는 곤륜(崑崙) 산맥을 경계로 신강위구르자치구에 접해 있고 동쪽으로는 기련산(祈連山)에서 감숙성 남서쪽의 하하(夏河),
그리고 동남쪽의 사천(四川) 분지를 경계로 운귀(雲貴) 고원과 접해 있으며, 남쪽으로는 인도, 부탄, 시킴, 네팔과 접해 있고, 서쪽으로는 파미르, 카라코람을 경계로 인도, 파키스탄에 접해 있다.
위도 상으로는 티베트 고원의 대부분이 북위 27-36도, 동경 75도-100도 사이에 있으며 동서로 약 2,500㎞, 남쪽으로 약 1,200㎞에 걸친 총 약 200만㎢의 넓이를 차지하고 있다.
티베트 고원(靑藏高原)은 기후가 한랭하고 공기가 해박하며 일조량과 복사량이 매우 크다.
고원의 중심 지역은 평탄하고 광활한 초원이 있어 천연의 양호한 목초지이다.
고원의 바깥쪽은 가파른 높은 산이 둘러싸고 있다.
하천주변 지역은 토양이 비옥하여 농업 및 목축에 적합하여 주요 농업 지역이다.
티베트족 거주지의 대다수 지역은 천연자원이 매우 풍부하다.
49,162㎢에 달하는 빙하지역은 황하(黃河), 양자강, 노강(怒江), 란창강(瀾滄江), 아노장포강(雅魯藏布江) 및 인도대륙으로 흘러가는 큰 하천들의 발원지이다.
아울러 수많은 고원 호수들은 풍부한 수리자원의 원천이 되고 있다.
하천유역에서는 청과, 소맥, 완두, 옥수수, 감자 및 유채 등 농작물과 각종 과일을 생산하고 있다.
고원 목초지는 주로 야크, 면양 및 말을 목축하고 있어 중국 내 주요 축산업 지역의 하나로서 육류, 유제품 및 모(毛)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티베트족 거주 지역의 무성한 삼림은 중국 최대의 원시림 지역으로서 가문비나무, 전나무, 설송 및 자작나무 등이 주요 수종이다.
지하자원은 약 1백여 종이 매장되어 있는데 이 중 크롬, 구리, 납, 아연, 알루미늄, 운모, 석유 및 희귀 금속 등이 매우 풍부하다.
현재까지 조사된 이 지역 내 352개의 염호(鹽湖)는 총면적이 21,460㎢로서 개발전망이 높다.
지열(地熱)자원 역시 현재까지 나타난 곳이 7백여 개로 중국 내 최대이다.
또한 티베트족 거주 지역의 다양하고 신비한 자연생태는 티베트족의 전통문화와 함께 독특한 관광자원이 되고 있다.
(3) 민족 기원과 역사, 명칭
(민족의 기원 및 역사)
티베트족의 역사는 매우 유구하여 고고학적으로 상고시대부터 티베트 고원에 광범위한 인류의 활동이 발견되는데,
중국 역사문헌상에 등장하는 강(羌)은 티베트족 조상의 일부이다.
티베트족의 기원에 관해서는 토착민설이 유력한데 티베트어 문헌자료에 나타나는 신화와 전설에 의하면, 신비한 원숭이(神猿)가 변화하여 여자 바위신(女岩妖)과 결혼하여 티베트족을 낳았다고 하는데 현재 서장자치주 택당현(澤當縣)에 전설과 관련된 동굴 유적이 남아 있다.
이러한 민족 기원과 관련된 지역인 택당현 아융(雅隆) 지역에 기반을 두었던 골제실발야(鶻提悉勃野) 부족은 티베트족의 가장 오래된 종족집단이며
이 부족의 제32대 수령인 찬보(贊普: 티베트어로 ‘王’이라는 뜻) 송찬간포(松贊干布)가 서기 7세기 중엽에 티베트 고원 일대의 여러 강인(羌人) 부족을 차례로 정복하여 최초로 통일함으로써 티베트 일대의 여러 종족을 하나의 민족공동체로 형성되게 하였다.
이어 하서(河西: 감숙성 臨河 지역), 농우(隴右: 감숙성 및 청해성 일대) 및 안서사진(安西四鎭: 신강위구르자치구 지역)에 이어 오늘날의 운남성 지역에 있었던 남조국(南詔國)까지 세력을 넓혀 통치하였다.
당시 당 태종은 문성공주(文成公主)를 송찬간포 왕에게 시집을 보냈는데 그때 데리고 간 주조, 제지 등의 기술자들에 의해서 중원의 문화가 전해졌다.
아울러 이 시대에는 인도로부터 티베트에 불교가 전파되고 티베트 문자가 제정되었다.
그러나 서기 842년 다르마 왕이 죽은 뒤 내분, 봉건제후의 할거 등으로 다툼이 일어나 약 400년간 혼란이 계속되었다.
서기 1253년 원의 헌종 몬케는 군대를 파견하여 티베트 전역을 장악하고 선위사(宣慰司)를 두었다.
또한 원 세조 쿠빌라이는 티베트 라마교의 고승 파스파를 중용하여 황제의 스승으로 임명하였다.
원대에 최초로 중원왕조에 의하여 군사적으로 정복당한 후 중원왕조와는 ‘단월(檀越)관계’라는 독특한 관계를 맺어, 중원왕조로부터 정치적, 군사적 지원을 받는 대신, 라마교 고승들은 중원왕조의 정신적 스승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라마교의 살가파(薩迦派)가 원 왕조의 지지 아래 티베트 일대를 관장하는 살가(薩迦) 지방정권을 건립하였다.
그 이후 티베트는 정교합일적 지배체제가 확립되었고 서기 1354년 파죽갈거파(帕竹噶擧派)의 강곡견찬(絳曲堅贊)이 살가 정권을 무너뜨리고 정교합일(政敎合一)의 파죽(帕竹) 정권을 건립하였다.
명청 시대에는 중원왕조의 정치적 및 군사적 후원 아래 라마교의 지배자가 정치적 지배권도 함께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청조 초기에는 라마교 격노파(格魯派)가 지배권을 장악하였으며 청태조 누르하치는 그 지배자에게 ‘달라이라마’라는 칭호를 부여하였다.
서기 1642년 라마교 황모파(黃帽派)의 제5대 달라이라마가 정교합일의 감단완장(甘丹頗藏) 정권을 건립하였으며 서기 18세기 후반부터 영국이, 그 뒤를 이어 러시아가 티베트를 그들의 세력권으로 확보하기 위하여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달라이라마로 상징되는 격노파의 정교합일 지배체제는 1912년 중원지역에서 청 왕조가 멸망하면서 한때 자주적으로 티베트 지역을 통치하면서, 중원지역의 국민당 정권과 갈등을 겪기도 하였으며, 1949년 새로 수립된 중화인민공화국이 티베트 정권의 독립성을 부인하고 이어 1951년 인민해방군을 파견하여 티베트 지역을 실질적으로 접수할 때까지 격노파 정교합일 지배체제가 티베트 지역을 통치하였다.
(사회경제 발전단계)
20세기 전반기까지 티베트족 사회는 봉건 영주제 사회경제 단계에 있었으며 봉건농노제도가 보편화되어 있었으며 서장자치구 지역이 가장 대표적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감숙성, 청해성, 사천성 및 운남성 등 지역에서 한족 사회와 자주 접하면서 살았던 티베트족 사회는 봉건지주제 사회경제 단계에 들어서기도 하였다.
(민족 명칭)
티베트족들은 스스로 “버”(博)라고 자칭한다.
다만 거주 지역에 따라 각 지방에 사는 티베트족들의 명칭은 다소 차이를 보인다.
서장자치구 중부 일대에 거주하는 위장(衛藏) 방언 지역의 티베트족은 “버바”(博巴) 또는 “웨이바”(衛巴)라고 하며 동부 지역과 사천성 서부 지역의 강(康) 방언 지역의 티베트족은 “캉바”(康巴)6)라고 하며
청해성, 감숙성과 사천성 서북부 지역에 거주하는 안다(安多) 방언 지역의 티베트족은 “안둬와”(安多哇)라고 부른다.
또한 사천성 서북부 지역의 가융어(嘉隆語) 사용 지방에서는 “쟈룽와”(嘉戎哇)라고 스스로 부른다.
“버”(巴)와 “와”(哇)는 티베트어로 모두 ‘사람’을 의미한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에는 모두 “藏族”(장족, 티베트족)으로 통칭하게 되었다.
※ 일처다부제가 일부다처제보다 많았던 티베트족의 다양한 혼인 풍속
티베트족은 일부일처제(一夫一妻制)가 보편화되는 추세에 있지만 과거에는 한 명의 부인이 여러 명의 형제를 남편으로 거느리는 일처다부제(一妻多夫制)가 드물지 않았으며 또한 재가해 온 부인과 그 딸을 동시에 부인으로 삼는 형태를 포함한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도 존재한다.
일처다부제(一妻多夫制)에서 남편은 형제간이 가장 일반적이고 친구 간 또는 심지어 부자(父子)간에 남편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부자간에 부인을 공유하는 경우는 아버지가 홀아비가 됐을 때에 한한다.
또한 야크나 양을 목축하는 유목민이 가족의 단결을 위해 한 명의 부인만을 공유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일처다부제의 시행 이유로는 과거 귀족 농노주 가정에서는 가문의 재산보존 차원에서 남자 자식들이 하나의 부인을 공유하여 가정을 하나로 유지하게 함으로써 자식들에 대한 재산분배가 여러 가정으로 분산되는 것을 막고 지위와 특권이 낮아지지 않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으며,
가난하고 지위가 낮은 농노계급 가정에서 형제들이 공처하는 목적은 형제들이 저마다 티베트의 풍속에 따라 많은 돈을 지불하고 처를 얻음으로써 늘어나는 경제적 부담을 덜고, 각 가정 마다 가해지는 농노주들의 착취를 최대한 모면하고 가정의 단결을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형제공처제의 경우, 맏형이 결혼 후 남동생들과 부인을 공처하며 그 자녀들은 나이가 제일 많은 아버지만을 아버지로 모시고 다른 사람들은 ‘삼촌’이라고 부르며 가장도 맏형이 맡는다.
친구들이 공처(共妻)하는 것은 대부분 친구 간에 사이가 좋거나 각자 집안의 노동력이 적어서 한 집으로 합쳐 노동력을 증대시키려는 목적이 있다고 본다.
티베트족의 일처다부제는 군혼제(群婚制)의 흔적을 보여주지만, 이러한 생활방식은 과거 모계 중심 여성 우위의 사회관습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티베트에서는 야크를 끄는 힘든 일을 제외하고는 김매는 밭일, 초원에서 양떼를 몰거나 양젖을 짜는 일 등이 모두 여성의 몫이다.
요리나 빨래, 바느질 등 가사는 남녀가 함께 하나 가정의 중요결정권은 여자쪽에 있다.
반면 일처다부제에 비해 드문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는 자매 또는 어머니와 딸이 남편을 공유하는 경우다.
어머니와 딸이 한 남편을 섬기는 일부다처제는 어머니가 과부가 된 뒤 가족을 부양할 남자가 필요한 경우에만 이뤄진다.
과부가 된 어머니는 먼저 새 남편을 맞이한 뒤 딸이 성장하면 남편을 공유한다.
또한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집에 대를 이을 아들이 없고 딸만 있을 때 그 집에 들어간 양자는 장녀뿐만 아니라 나머지 딸들과도 혼인을 한다.
티베트의 일처다부제나 일부다처제는 외부세계와의 접촉이 어려운 척박한 땅인 고지에서 유목민들이 생존의 한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된 독특한 풍습이다.
따라서 티베트족의 이름은 혈연에 바탕을 둔 성(姓) 개념은 없고 이름만이 있는데 이름마저도 단순해 구별이 어려울 때는 이름 앞에 늙고 젊음, 출생지, 생김새의 특징 등을 추가하여 이름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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