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북방민족은 동이겨레였다 3부

늠내 화랑 2014. 8. 7. 12:52

 

 

북방민족은 동이겨레였다 3부

 

유라시라대륙 동서방으로 활발한 교류를 촉진시켰던 북방 유목민이였던

흉노족 중 북흉노가 1세기 말 멀리 중앙아시아 초원으로 떠나 버리자 흉노의 본거지이던 몽골 고원은 일시적으로 공백지대가 되었다.

그리하여 흉노의 지배를 받았던 여러 유목 집단이 초원을 차지하기 위해 각축전을 벌렸고 결국 선비족이 패권을 차지하게 되었다

 

선비족에 대한 중국 기록은 춘추 시대의 '국어'에 처음 나타난다.

- "주나라 초기에 남쪽 오랑캐인 초나라가 또 다른 오랑캐인 선비와 함께 회맹에 참여하지 않았다 "라고 기록한 부분이다.

'후한서'에는 선비와 오환을 모두 동호(번조선)의 후예라 했다.

 

이를 볼 때 선비족은 고조선에 속한 족속 가운데 하나였고 선비족의 발상지를 대선비산으로 꼽았는 데 산 이름에서 선비족이라는 족명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대흥안령 일대가 대선비산이라는 사실은 1980년에 중국학자가 대흥안령 북단 알선동 동굴 벽에서 북위 시대의 석각 축문을 발견함으로써 입증하였다.

원래 선비는 '사비' 혹은 '시비'로 발음되었고 시베리아는 '선비리아'라고 해석한 북방민족사 전문가 주쉐위안의 말이다

 

선비족의 기원은 고조선에 속한 동북지방이었던 것이다.

선비족은 2세기 중반에 '단석괴'라는 영웅 밑에서 여러 부족이 하나의 국가로 통합되었다

흉노가 약화된 틈을 타서 선비 제국은 북으로 바이칼호수, 서쪽으로 신장의 일리 강, 동쪽으로 만주 일대에 걸친 옛 흉노 지역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단석괴 이후 순식간에 여러 집단으로 분할되었다 그런데 당시 한나라가 망하고 나서 동탁ᆞ원소ᆞ조조ᆞ유비 등 군웅이 패권을 놓고 다투던 삼국시대와 그 뒤를 이은 위진 제국(220~317)이 붕괴하여 중원이 혼란에 빠지자 선비족은 그 틈을 이용하여 대거 북중국으로 밀고 들어갔다... 탁발ᆞ모용ᆞ우문ᆞ단ᆞ걸복 등 선비족의 여러 부가 이때 거의 남하하여 5호 16국 시대가 시작되었다.

 

탁발부는 대국을 세웠고, 모용부는 전연ᆞ후연ᆞ서연ᆞ남연 등을 세웠다

또 산서 지역의 흉노는 한ᆞ전조ᆞ후조 등을 세웠다.

이 가운데서 탁발부의 대국(315~376)이 다른 국가들을 모두 정복하고 북중국을 통일하였다. 이 나라가 북위(386~534)이다.

북위는 후에 동위와 서위로 분열되었는 데 그 이름이 다시 북제와 북주로 바뀐다. 이 북주의 귀족인 수국공 양견이 패권을 잡고 나라 이름을 바꾸어 수나라가 탄생하였다.

수나라는 다시 당나라로 이어지므로 수ᆞ당의 기원은 바로 선비족인 탁발씨인 것이다.

5호16국 시대에 선비족을 중심으로 한 북방민족은 중원 본토 진출과 동시에 한반도로도 많이 몰려 내려왔다.

서울대 김호동교수는 북방유목민의 일부가 4~5세기 신라에 정착하여 대형 목관분 무덤에서 중앙아시아의 문화 기류를 느끼게 하는 유물이 대거 발견되었다

 

흉노와 선비족이 일으킨 이동의 파도는 유럽에 서로마제국의 멸망을 가져오고 중국에 북방민족이 중원을 장악한 5호16국 시대를 열었다.

또 한반도와 왜국 땅에 기마민족의 정권을 성립시켰다..

 

결론은 동북아의 중심 단군조선의 문화적 자양분을 흡수하며 동북아의 북방에서 뻗어 나간 유목민의 대이동이 유라시아 대륙의 역사를 크게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