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

[스크랩] 삼국지 전략전술....

늠내 화랑 2012. 1. 19. 23:08

삼국지 전략전술



가도벌괵(假途伐?):약자의 심리를 찌른다.


'가도벌괵'이란 길을 빌려서 괵나라를 친다는 뜻인데, 춘추 시대 우와 괵 두 나라는 서로 이웃 나라로서, 모두 진(晋)나라와 접경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진나라는 일찍부터 이 두 나라를 정복하려는 야심이 있었다. 진왕은 순식(荀息)의 전략을 이용하여 먼저 우공(虞公)에게 좋은 말과 보옥을 보내서 우나라를 매수하고 진나라가 길을 빌려 괵나라를 칠 것이라는 것을 믿게 하였다. 이렇게 해서 괵나라가 망하게 되자, 우나라도 곧 이어 멸망하게 되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적과 자기 나라 사이에 낀 약소국이 만약 적의 침공을 받게 되면 이쪽에서 곧 군사를 동원, 위력을 보이며 구원해 주지 않으면 안된다. 곤란에 직면한 약소국에 대해서는 입으로만 말하고 실제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어느 날 진(秦)나라의 사신이 조나라에 와서 말했다.


"우리 두 나라가 협동하여 이웃 연나라를 칩시다. 성공하기만 하면 당장 연나라 영토의 반을 떼어 주겠습니다."


이 제의를 기꺼이 받아들인 조나라 왕이 군사를 동원하려 하자 한 신하가 나서서 간했다.


"연나라를 치게 되면 미처 식사도 끝나기 전에 진나라의 군사가 우리 나라를 덮치게 될 것입니다."


이웃 나라끼리인 조나라와 연나라가 협동하여 견제하고 있으므로 강대국인 진나라도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것인데, 만약 한쪽 나라가 힘을 잃게 되면 나머지 나라도 쉽게 진나라의 밥이 되고 말 것이다.


어떠한 책략도 상대가 먼저 그것을 간파해 버리면 쓰지 않는 것만 같지 못하다. 따라서 책략이란 고도의 '머리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가도벌괵'의 책략이 실패한 경우이다.


삼국 시대 오나라의 주유는 남군(南郡)을 총령하게 되자, 더욱 마음에 유비를 칠 일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형주를 차지할 욕심으로, 유비에게 서천을 치러 갈 테니 형주에 길을 내 달라고 했다. 그러나 이 계략을 눈치챈 제갈량에 의해 무산되고 말았다.


가치부전(假痴不癲):못난 소처럼 행동한다.




--------------------------------------------------------------------------------


 


'가치부전'이란 어리석은 체하면서도 미치지는 않는다는 뜻으로, 여기서 어리석은 체한다 함은 귀머거리나 벙어리 흉내를 내거나 모른 체하는 것을 말한다. 미치지 않는다는 것은 공연히 동하지 않고 조용히 있다는 것을 뜻한다.


전체적인 의미는, 바보짓을 하는 사람은 겉으로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이지만 내심은 매우 냉정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히려 우둔한 체하면서 행동하는 것이 좋고 총명한 척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 침착한 행동으로 조금이라도 기밀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 흡사 겨울 뇌운(雷雲)이 힘을 길러 때를 기다리고 있듯이……



삼국 시대, 사마의(司馬懿)는 노쇠하여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위장함으로써 정적(政敵)인 조상(曹爽)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고 마침내는 그를 죽이는 데 성공했다.



'손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슬기롭게 싸워서 승리를 거두는 자는 그 지모로 이름을 얻으려 하지 않으며, 또 그 용맹으로써 공로를 내세우려 하지 않는 법이다."



어느 날 왕과 대신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그 때 국경 부근에서 적의 횃불이 오르고 적이 내습해 왔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왕은 당황하여 바둑돌을 내던지고 중신들을 소집하려고 했다. 그러자 대신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왕을 제지하면서,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그 횃불은 이웃 나라 왕이 사냥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하면서 바둑을 계속했다.



왕은 반신반의하면서 다시 바둑을 두기 시작했으나 마음이 불안하여 안절부절못했다.



한참 후에 국경에서 전령(傳令)이 달려와, 적이 기습한 것이 아니고 실은 이웃 나라 왕이 사냥을 하고 있는 것을 잘못 보고했다고 알려 왔다. 왕은 놀라운 표정으로, "그대는 어떻게 그것을 알고 있었소?" 하고 물었다. 대신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저는 이웃 나라에도 정보망을 가지고 있어서, 오늘 그 나라의 왕이 사냥을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왕은 감탄하기를 마지않았다. 그러나 그후 왕은 그 대신을 경계하여 결국 조정에서 내치고 말았다.



이 고사에는 두 가지의 문제점이 있다. 한 가지는 그 대신이 적국의 사정에 대한 얘기를 구태여 할 필요 없이 그것이 우연의 일치처럼 꾸몄으면 어리석은 왕의 경계심을 사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다른 또 하나는 능수능란한 대신을 잘 다룰 능력이 없는 무능한 왕이 유능한 신하를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거안사위(居安思危):편안할 때 위험함을 미리 생각한다.




--------------------------------------------------------------------------------


 


'거안사위'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알려준다. 편안할 때 항상 일어날 수 있는 위험과 재난을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경각심을 가지고 있어야 비로소 준비가 있게 되며, 준비가 있으면 돌발적인 재난을 면할 수 있게 된다.



춘추시대 송나라․제나라․진(晋)나라․위나라 등 12개 나라가 연합하여 정나라를 공격한 적이 있었다.



정나라는 당황하여 12개 나라 중에서 제일 큰 나라인 진나라에 화해를 구하였다. 진나라가 이에 동의를 표시하자 기타 11개 나라도 공격을 중지하였다.



정나라는 진나라에 감사를 드리기 위하여 많은 예물과 저명한 악사 3명, 갑사까지 딸린 전차(戰車)와 가타 전거 100승, 가녀 16명, 그리고 종경 등 악기를 보내어 주었다.



진왕은 예물을 보자 매우 기뻐하며 가녀의 절반을 그의 공신 위강에게 주면서, "그대가 이 몇 년 동안 나를 위하여 계책을 내고 많은 일들을 순조롭게 처리하여 마치 음악과 같이 잘 어울리고 절주가 맞았으니 참으로 마음 든든한 일이오. 지금 우리 둘이 함께 한바탕 즐겨 보기로 하오." 그러나 위강은 진왕이 나누어 주는 것을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 기회를 빌려 진왕에게 한 차례의 충간을 올렸다. 이때 위강이 한 말은 '좌전' 양공 11년에 기록되어 있는데, 대체적인 뜻은 이러하다.



"우리 나라의 일들이 순리롭게 처리된 것은 우선 대왕의 공로이고 다음은 동료들이 일심 협력했기 때문인데 소신 같은 개인이 무슨 공로가 있겠습니까? 바라옵건대 대왕께서는 안락을 누릴 때 국가의 많은 일들을 아직도 계속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항상 잊지 말아 주십시오. '서경'에 이르기를 '편안할 때 위험함을 생각해야 하나니, 생각하면 준비가 있게 되고 준비가 있으면 후환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소신이 감히 대왕에게 드립니다."



격안관화(隔岸觀火):강 건너 불구경한다.


 


--------------------------------------------------------------------------------

 

 


'36계' 제9계에는 이 책략을 이렇게 해석하였다. 적 내부의 모순이 격화되고 혼란이 일어나 폭란이 생기기를 가만히 기다려야 한다. 적은 분열되어 서로 원수가 되며 마침내는 멸망을 자초하고 만다. 이것은 바로 부드러운 수단으로써 유리한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 책략을 운용함에 있어서의 요건은 적의 내부가 혼란해질 때 경솔히 접근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적들이 일치 단합하여 반격을 해 올 수도 있다. 말하자면 산에 앉아 범싸움을 구경하는 태도를 취해야만 한다.



'삼국지 연의'에는 조조가 하북을 평정할 때 두 차례나 격안관화의 계책을 써서 작은 대가로 큰 승리를 얻는 이야기가 나온다.



원소가 창정 대전에서 참패를 당한 후 마음이 우울하여 병들어 죽게 되었다. 죽기 전에 원소는 유자(遺子) 원상을 계승자로 삼고 대사마로 임명하였다.



조조는 이때 투지가 한창 왕성하여 친히 대군을 거느리고 원씨 형제를 토벌하고 일거에 하북을 평정하려고 기도하였다.



조조의 군사는 파죽지세로 여양을 점령한 다음, 곧장 기주성 아래에 이르렀다. 그러자 원상․원담․원희․고간 등 4로 인마가 합력하여 힘껏 사수하였다.



조조는 연이어 몇 차례 공격을 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이때 모사 곽가가 계책을 드려 말하기를, "원씨가 큰아들을 폐하고 작은아들을 세웠기 때문에 형제간에 권력 싸움이 일어날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입니다. 그런데 지금 형세가 급하니 서로 구하고 돕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예 군사를 돌려 남쪽으로 가서 유표를 치며 원씨 형제의 변을 기다리는 것만 못할까 봅니다. 변이 생긴 다음 기주를 친다면 일거에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조조는 그의 말대로 가후를 남겨 여양을 지키게 하고 조홍으로 관도를 지키게 한 다음, 자신은 곧 군사를 이끌고 유표를 치러 갔다.



과연 조조가 철수하자 장자 원담이 곧 원상과 계승권을 쟁탈하기 위하여 크게 싸우면서 서로 참살하기 시작하였다. 원담은 원상을 이길 수 없게되자 조조에게 사람을 보내어 구원을 청하였다.



조조는 이 기회를 타서 다시 북진하여 먼저 원담을 죽여 버린 다음, 원희․원상을 차례로 패배시키고 일거에 하북을 점령하였다.



조조가 두 번째로 격안관화의 책략을 쓴 것은 하북을 점령한 후이다. 당시 싸움에 패한 원희․원상은 요동으로 도망하여 공손강에게로 갔다. 하후돈 등 측근들은 조조에게, "공손강이 오랫동안 굴복하지 않았는데 지금에 와서 원희․원상이 또 가담하였으니 장차 우리의 큰 후환이 될 것입니다. 공손강이 아직 군사를 일으키지 않은 틈을 타서 속히 가서 친다면 요동을 가히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조조는 웃으며 말했다.



"제공의 호위를 빌릴 필요도 없을 것 같소. 며칠 후면 공손강이 두 원씨의 머리를 가져올 것이오." 여러 장수들은 모두 이를 믿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지 않아 공손강이 과연 사람을 보내어 원희․원상의 머리를 가져왔다. 여러 장수들이 모두 크게 놀라 조조의 귀신같은 혜안에 감복하여 마지않았다.



조조는 도리어 크게 웃으며, "과연 봉효(곽가)의 짐작을 못 벗어나는군." 하고 말하며 곽가가 죽기 전에 조조에게 남겨준 편지를 꺼내었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듣건대 원희․원상이 요동에 가서 가담했다 하니 명공께서는 절대 군사를 쓰지 마십시오. 공순강은 일찍부터 원씨들이 요동을 병탄할까봐 두려워하였는데 이번에 두 원씨가 가서 가담하였으니 반드시 이를 의심할 것입니다. 만약 군사로 치신다면 그들은 힘을 합해 항거할 것이나, 늦추어 준다면 공손강과 원씨는 반드시 서로 도모하려 할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자연적인 이치입니다."



원래 원소가 살았을 때 항상 요동을 병탄할 마음을 품고 있어 공손강은 원씨 가족들을 뼈에 사무치게 미워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원씨 두 형제가 와서 탁신하니 공손강은 그들을 없애버릴 생각을 품었는데, 조조가 혹시 군사를 끌고와서 요동을 칠까 두려워 두 사람을 이용하여 자기를 돕게 하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공손강은 원희․원상이 요동에 이르자 즉시 그들을 만나보려 하지 않고 먼저 사람을 보내어 조조군의 동정부터 탐지하게 하였다.



세작이 와서 "조조는 역주(易洲)에 군사를 둔쳐 놓고 있는데 요동으로 들어올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하고 회보하자 공손강은 즉시 원희․원상의 머리를 베어 조조에게 바쳤던 것이다. 이리하여 조조는 칼날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였다.


  고 육 계(苦 肉 計):내 몸을 상하게 하여 거짓을 진짜로 믿게 한다.


 


--------------------------------------------------------------------------------

 

 


사람은 누구나 자기 몸을 상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러므로 만약에 상처를 입게 된다면 그것을 대단한 사실로 받아들인다. 이 점을 이용하여 거짓을 진실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고육계의 핵심이다.



삼국 시대 적벽 대전이 시작되기 전의 어느 날, 무고한 죄로 참수된 위나라 장수 채모의 종제이며 수군부장(水軍副將)인 채중(蔡中)․채화(蔡和) 두 형제는 조조에게 원환을 갚기 위해 오나라로 투항해 왔다고 울면서 호소했다.



오나라의 대도독 주유는 이들을 기꺼이 맞아들이면서도 그들이 첩자로 온 것임을 간파하고 있었다.



며칠 뒤 오나라의 군사 작전 회의에서 모의에 능한 장수 황개(黃蓋)는 화평론을 고집하다가 드디어 주유의 비위를 거슬러 목을 베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앞으로 항복이라는 말을 입밖에 내는 자는 가차없이 목을 베리라." 라는 오왕 손권의 엄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장수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중에는 감녕(甘寧)처럼 목숨을 걸고 그를 변호하는 등 모두가 입을 모아 그를 변호했기 때문에 마침내 감형되어 태형 백 대의 형에 처해졌다.



항개의 살가죽은 터져 유혈이 낭자하였다. 피투성이가 된 그의 몸둥이가 진지에 있는 그의 막사로 옮겨졌을 때 그는 이미 정신을 잃고 있었다. 그를 문병간 부장 노숙(魯肅)은 참상을 보자 못해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며칠 후 황개의 참모인 감택은 밀서를 갖고 조조에게 투항했다. 그 밀서에는 "부대를 이끌고 투항하겠다"고 쓰여 있었다. 물론 조조는 이를 의심했으나 그때 마침 채중․채화 형제의 보고서가 도착하여 황개의 밀서 내용을 진실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감택은 조조의 지시를 받고 진지로 돌아와서 황개와 은밀히 의논하여 "뱃머리에 파랑색 깃발을 단 배가 가까이 가면 우리 부대인 줄 아시오"라는 내용의 밀서를 다시 조조에게 보냈다.



드디어 결전의 때가 왔다. 오나라 군사는 수륙 양면에서 한구(漢口) 부근까지 진출, 돌격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21일, 화선대(火船隊)를 지휘하여 오나라 군사의 선두에 선 황개는 해가 지기를 기다려 조조에게 다음과 같은 밀서를 급히 보냈다.



"주유의 감시가 심해서 탈출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후방에서 식량선이 도착하여, 나에게 그 지휘를 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이때를 이용하여 오늘밤 이경(二更)에 청룡기를 뱃머리에 달고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만재한 식량선과 강동에서 이름난 장수들의 목을 선물로 가지고 가겠으니 기쁘게 받아 주십시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주유의 전군은 전진을 개시했고, 오왕 손권이 이끄는 본진은 그 뒤를 따랐다. 때마침 달은 휘영청 밝았으나 강 위는 밤안개가 짙게 깔려 있었고 동남풍이 세차게 불고 있었다.



수군의 본진에 있으면서 달빛 아래 출렁이는 강상을 바라보고 있던 조조는 이윽고 약속대로 황개의 부대가 오는 것을 보고, "과연 내 뜻대로 되는구나." 하고 크게 기뻐하였다.



그런데 아무래도 수상쩍었다. 만약 황개의 배가 식량을 실었다면 흘수(吃水:배가 수면에 뜨는 정도)가 깊이 잠겨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너무 얕고 그 속력이 너무 빨랐다. "멈춰라!" 하고 조조가 명령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바람을 타고 불을 뿜는 선단은 성난 파도처럼 수상 요새를 향해 돌진해 들어왔다.



그때 조조의 배는 쇠줄로 연결되어 있어서 미처 피할 수가 없었다. 불길은 삽시간에 다른 배로 옮겨붙어 막을 길이 없었다. 이런 대혼란 속에 주유의 수군이 돌격해 왔다.



"물러나라! 물러나라!"



조조의 눈에는 육상과 해상을 막론하고 무섭게 타오르는 불길이 보일 뿐이었다. 그는 측근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도망을 갈 수는 있었으나 처참한 참패였다.



이리하여 조조의 천하 재패의 대야망은 한 가닥 꿈이 되어 강상에 짙게 깔린 안개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와 동시에 그것은 황개의 고육계가 대성공을 거두는 순간이기도 했다.

 

공 성 계(空 城 計):성을 비우는 계략.

 


--------------------------------------------------------------------------------

 

 


 방비가 허술할 때는 차라리 무방비한 것처럼 보여라. 그렇게 하면 적은 더욱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된다. 적은 대군이고, 이쪽은 아주 적은 병력일 때 이 계략을 쓰면 이쪽 전술을 적이 알지 못하게 된다.


'삼국지' 촉지(蜀志) '제갈량전'에 이렇게 쓰여 있다.


양평관에 주둔하고 있던 제갈량은 위연(魏延)에게 군사를 지휘하여 동쪽으로 향하도록 하였다. 양평관 수비 병력은 불과 1만이었다.


한편 사마의는 20만 대군을 이끌고 위연과는 다른 방향에서 양평관을 공략해 왔다. 60리 상거에서 척후를 놓아 정찰케 하였더니, 제갈량은 성안에 있고 수비 병력은 얼마 안된다는 보고였다.


제갈량 쪽에서도 사마의의 대군이 접근해 오고 있음을 알고 위연의 군사와 합류하려 했으나 떠난 지 오래되어 때는 이미 늦었다. 장병들은 모두 대경실색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러나 제갈량은 홀로 태연하게 전군에 명하여 깃발과 장막을 거두고 자기 위치를 떠나지 말고 엄명했다. 이러서

거기에 사방의 성문을 활짝 열어놓고 깨끗이 청소까지 시켜 놓았다.


사마의는 제갈량이 지략에 뛰어남을 알고 있었으므로 이것은 틀림없이 어딘가에 복병이 있을 것이라 믿고, 군사를 근방에 있는 산속으로 일단 후퇴시켰다.


다음 날 제갈량은 박장대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마의는 나를 아주 주의깊은 사람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복병이 있는 줄 알고 산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사마의는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알고 땅을 치며 분통해 했다.

 

공심위상(攻心爲上):마음을 공격한다.

 


--------------------------------------------------------------------------------

 

 


'공심위상'이라는 말은 '양양기'에서 처음 볼 수 있다. 건흥 3년(기원 225년), 제갈량이 남정(南征)하려 떠날 때, 마속이 몇십 리를 전송하였다. 제갈량이 말했다.


"우리가 여러 해를 함께 일을 해 왔는데 오늘 더욱 좋은 가르침이 없겠소?"


이에 마속이 대답했다.


"남쪽의 소수 민족이 멀고 험한 것을 믿고 불복한 지 이미 오랩니다. 비록 오늘 격파한다 하여도 내일이면 또 불복할 것입니다. 그 동안 공께서 북벌에 온 힘을 다하니 그들은 관리들의 속이 허하고 겁이 많은 줄 알고 이렇게 빨리 반란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 무리를 몽땅 죽여 후환을 없애자면 어질지 못한 일이고, 또 창졸히 해낼 수도 없는 일입니다. 대저 군사를 쓰는 법에 마음을 치는 것이 상책이고 성을 치는 것이 하책이며, 마음으로 싸우는 것이 상책이고 군사로 싸우는 것이 하책인가 합니다. 그러니 공께서는 그 마음을 정복하는 것이 옳을까 합니다."


마속의 말을 들은 제갈량은 찬탄을 금치 못하면서 말했다.


"유상(마속)은 내 폐부를 아는구나."


이러한 분석은 문제의 핵심을 꿰뚫어 본 것으로서, 높이 서서 멀리 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촉나라에 의한 천하통일 전략면에서 볼 때도 서남을 평정하는 것은 한 차례의 군사적인 승리를 거두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서남을 하나의 안정된 후방으로 만듬으로써 앞으로 전 병력을 중원에 집중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바로 마속이 지적한 바와 같이 군사력에만 의거하여 서남의 맹획을 이긴다면 중원의 전쟁이 불리하여지기만 하면 서남은 다시 반란을 일으키게 될 것이 분명했다. 제갈량은 이러한 방침을 세우고 그것을 굳게 믿었기에 맹획을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 놓아주는 이른바 칠금칠종의 귀신같은 용병을 연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관문착적(關門捉賊):퇴로를 차단하고 잡는다.

 


--------------------------------------------------------------------------------

 

 


'관문착적'이란 문을 닫고 도적을 잡는다는 것으로, 약한 적에게는 포위 섬멸의 계략을 쓴다. 원뜻은 도적이 물건을 훔치러 들어오면 문을 잠가야 잡히게 된다는 뜻이다.


약한 적은 포위해서 완전 섬멸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만약에 최후의 발악을 하는 적을 놓쳐 이를 너무 깊숙히 쫓아갔다가는 오히려 역습을 당할 수 있다.


'오자(吳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최후의 발악을 하는 적 한 사람이 넓은 들판에 숨었다고 하자. 여기에 비록 천명이 쫓아간다 해도 조마조마한 쪽은 쫓는 쪽이다. 왜냐하면 숨어 있는 적이 언제 어디서 나타나서 덮쳐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에 죽음을 각오한 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는 천 명의 군사까지도 두려움에 떨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교왕과정(矯枉過正):굽은 것을 펴려면 곧은 한계를 지나야 한다.


 


--------------------------------------------------------------------------------

 

 


'교왕과정'이란 말은 일찍이 '월적서'에서 볼 수 있는데 '교와과직'이라고 하였다. '염철론'에도 이 말이 있는데 '교왕과자직'이라고 하였다. 그러다가 '한서'에서부터 '교왕과정'이라고 하였다.



삼국시대 한나라의 실권을 장악하여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한 조조도 어릴 적에는 아주 못된 불량 소년이었다. 돈 많고 권세 있는 집 자식으로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어 오직 방탕을 일삼던 망나니 조조에게 장래를 점치게 하는 변신의 기회가 온다. 지금 같으면 군대에 갈 나이인 20세 때 수도 경비 대장으로 임명된다.



그의 소행으로 봐서는 당치도 않은 자리지만, 태위를 지낸 아버지 조숭의 후광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대장으로 임명되자 조조는 딴 사람처럼 변해 즉각 수도인 낙양(洛陽)의 4대문을 철저히 보수하고는 다섯 가지 색을 칠한 몽둥이를 만들어 성문의 좌우에 10개씩 세워놓았다. 그리고는 그 동안 뇌물을 받고 적당히 눈감아 주던 야간 외출을 엄격히 금지 심키고 위반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모조리 처형했다.



이리하여 몇 달이 지났다. 조조의 추상같은 영이 서민들 사이에 널리 전해져 범법자가 자취를 감추게 될 즈음이었다.



당시 황제가 총애하는 환관에 건석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이 자가 바로 황제를 둘러싸고 권세를 휘두른 환관 그룹인 십상시(十常侍)의 중심 인물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자의 아저씨가 금지령을 어기다가 적발됐다.



'제까짓 조조 따위가 나를 감히 어찌하랴." 하고 그는 제 조카의 권세를 믿고 오히려 거드름을 피웠다.



그런데 조조는 끌려온 건석의 아저씨를 즉석에서 처형해 버렸다. 나이 20에 벌써 장래 천하를 경륜하는 기린아의 면모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온 장안은 벌벌 떨고, 그로부터 영을 어기는 자는 하나도 없었다.



한편 십상시의 무리들은 이를 갈았다. 그러나 법이 있고 법대로 처리한 것이니, 아무리 황제를 둘러싸고 권세를 부리는 그들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거니와, 또 그런 틈새를 줄 조조도 아니었다.



건석 등은 전술을 바꿔 이번에는 조조를 칭찬하고 추켜세우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돈구현의 지사로 임명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외지로 쫓아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주머니에 있는 송곳은 언젠가는 뚫고 나오는 법이다. 그만한 인물이 언제까지나 지방에서 썩을 리가 없었다. 임명된 그 해 그는 다시 낙양으로 돌아오는데, 그 무렵 환관들의 횡포를 보다 못한 대장군 두무와 태부인 진번이 쿠데타를 일으키려다가 정보가 새어 환관들에게 몰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조조는 이 사건을 문제삼아 황제에게 상소를 했다. 그러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조조는 그후로도 수삼차 상소를 했지만 이미 아래 위가 썩을 대로 썩은 조정은 날로 어지러워져서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조조는 이미 대세를 바로잡을 수 없음을 깨닫고 다시는 상소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조조에게는 제2의 인생이 싹트기 시작한다.



일찍이 조조는 사람을 잘 볼 줄 안다는 허자장(許子將)을 찾아간 일이 있었다. 그때 허자장은 조조를 보고, "태평한 시대라면 유능한 신하(能臣)가 될 것이고 어지러운 세상이라면 간사한 영웅(英雄)이 될 것이다." 라고 평했다고 한다.



이 예언이 바로 맞은 것이다. 그런 면에서 조조의 인물 형성도 그 시대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구호탄랑지계(驅虎呑狼之計)

 

 

 


--------------------------------------------------------------------------------

 

 <'이호경식지계'를 이용하여 여포와 유비를 갈라놓고 서로 싸우게 만들려 했으나 유비가 받아들이지 않자 순욱이 재차 내놓은 계책이 구호탄랑지계이다.>


 

그때 조조가 순욱에게,

"그 계책이 틀어질 모양이니 어찌하면 좋소?"


"그러면 또 한가지 계책이 있는데, '구호탄랑지계(驅虎呑狼之計)'가 있습니다."


조조가 물었다.


"그것은 어떤 계책이오?"


"비밀리에 사람을 원술에게 보내, '유비가 남군을 치겠다는 표문을 올렸다.'고 알리면 원술은 필시 노하여 유비를 치려고 할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유비에게 원술을 치라는 조칙을 내리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 둘이 맞붙어서 싸우게 되면 여포는 반드시 다른 맘을 먹고 유비를 공격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구호탄랑지계' 즉 호랑이가 늑대를 집어삼키는 계략입니다."


조조는 매우 기뻐하며 먼저 사람을 원술에게 보내 유비의 표문을 알리고 이어 황제의 조서를 유비에게 내려보냈다.

 

금선탈각(金蟬脫殼):원형을 그대로 두고 알짜를 빼낸다.


 


--------------------------------------------------------------------------------

 

 


글자의 원뜻은 매미가 허물을 벗는다는 것으로, 진지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위세를 보임으로써 우군에게는 두려워하거나 염려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고, 적에게는 침공할 용기를 갖지 못하도록 한다. 그리고 이쪽에서는 은밀히 주력을 딴데로 옮김으로써 적을 어리둥절하게 한다는 계략이다.



'금선탈각'은 항우(項羽)에게 성을 포위당한 유방(劉邦)의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그는 항우군에게 성을 포위당해 꼼짝도 못하고 항복하는 수밖에 없없다. 그러나 항우에게 잡히는 몸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한 꾀를 생각해내고, 동쪽 성문으로 부녀자들을 나가게 하였다. 그러자 적병들이 구경하려 우루루 몰려든 틈을 타서 서쪽 문으로 탈출했다. 항우가 성안에 들어왔을 때는 이미 유방은 도망을 치고 난 뒤였다.


 

금적금왕(擒賊擒王):장수를 잡으려면 먼저 그 말을 쏜다.

 


--------------------------------------------------------------------------------

 

 


'금적금왕'이란 원래 적을 잡으려면 먼저 임금을 잡으라는 뜻으로, 두보(杜甫)의 시 '전출새'에 나오는 말이다.


"사람을 쏘려거든 먼저 그말을 쏘고, 적을 잡으려거든 먼저 그 왕을 잡으라."


적의 주력을 격파하고 그 근거나 두목을 잡아 버리면 적의 전체 병력을 와해시킬 수 있다. 이것은 용이 바다를 벗어나 육지에서 싸우면 고전하게 되는 이치와도 같다.


당나라 숙종 때, 장순(張巡)은 윤자기(尹子奇)와 싸워 적진으로 쳐들어가 바로 적장의 깃발이 있는 데까지 이르렀다. 적진은 혼란에 빠져 장순은 적장 50여 명과 군졸 5천여 명을 베어 죽였다.


그런데 정작 윤자기를 죽이려 했으나 도무지 눈에 뛰지 않았다. 그는 군사들에게 화살 대신 볏짚으로 만든 화살을 쏘게 했다. 그런 화살에 맞은 적들은 장순 쪽 군사들이 이미 화살이 떨어진 줄 알고, 이 사실을 알리러 급히 윤자기에게로 달려갔다.


이렇게 해서 윤자기가 있는 곳을 알게 된 장순은 남제운(南齊雲)으로 하여금 활을 쏘도록 명령했다. 그가 쏜 화살은 어김없이 윤자기의 왼쪽 눈에 꽂혀 자칫하면 사로잡힐 뻔했다. 윤자기는 참패하여 퇴각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려면 오직 한 군데에다 전력을 집중해야 하는데 그 지향점은 적의 요점이나 약점이라야 한다. 요점이란 그곳을 뺏으면 적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곳이며, 약점이란 공격하기 쉬운 곳을 말한다.

 

난득호도(難得糊塗):바보짓하기 어렵다.


 


--------------------------------------------------------------------------------

 

 


청나라 때의 서화가이며 문장가인 정섭의 자는 극유이고 호는 판교였다.



그는 "총명하기 어렵고 바보짓하기도 어려운데 총명하면서도 바보가되기는 더욱 어렵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고 사람이 너무 밝으면 벗이 없다." 어떤 때는 지둔한 척하는 것이 오히려 너무 민감한 것보다 더욱 유리하다.


당랑포선 황작재후(螳螂捕蟬 黃雀在後):대세를 통찰한다.


 


--------------------------------------------------------------------------------

 

 


원뜻은 연가시가 매미를 잡으려는데 꾀꼬리가 뒤에 있다는 뜻으로, 한나라 유향의 '설원․정간편'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동산에 나무가 있고 거기에 매미가 있는데, 매미는 높이 앉아서 슬피 울며 이슬을 먹으면서 뒤에 연가시가 있는 줄을 모르고, 연가시는 또 몸을 굽혀 매미를 잡으려 하면서 그 옆에 꾀꼬리가 있는 줄을 모르고, 꾀꼬리는 또 목을 늘여 연가시를 쪼으려 하면서 자기의 밑에 탄환이 있는 줄을 모른다. 이 삼자는 눈앞의 이익을 얻기 위하여 그 뒤에 후환이 있는 것을 돌보지 아니한다."



이 이야기는 저치․군사․외교 등에 널리 인용되거나 또는 응용되는 것으로서, 고금의 통치자들이 전략을 세울 때 각 방면의 요소들을 골고루 돌보고 이해를 세심하게 잘 따져보게 하는 교훈이 되고 있다.



'삼국지 연의'에 보면 조조가 유비․손권의 연합군과 적벽에서 결전하기 전야에 서량의 마등․한수가 기회를 타서 중원을 공격할 까봐 근심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래서 조조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서서를 파견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산관으로 가서 마등․한수의 침입에 대비하게 했다.



또 유비가 병마를 거느리고 서천을 취하려 할 때였다. 조조가 돌연 오나라를 향하여 대규모의 공격을 가하니, 손권은 편지를 써서 유비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손권을 구해 주지 않을 경우, 입술이 없으면 이빨이 시린 국면이 되어 나중에는 조조에게 각개 격파되는 것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고, 그렇다고 오나라를 구원하느라면 서천을 취할 수 있는 유리한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이었다.



제갈량은 전반 국면을 통찰하고 즉시 마초에게 글을 띄워 그로 하여금 조조의 배후를 공격함으로써 오나라의 위급을 구해 주었으며, 유비는 계속 서천으로 쳐들어갈 수 있었다.



그후 이번에는 조조가 대군을 거느리고 서천을 치자 제갈량은 유비에게 권고하여 강하․장사․계양의 세 고을을 오나라에 되돌려 주는 대가로 오나라로 하여금 조조의 후미를 치게 함으로써 서천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런 것들은 모두 눈앞의 이익만을 고려할 것이 아니라 전반 국면의 추세를 보면서 적을 이길 책략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대용약겁(大勇若怯):참으로 용감한 사람은 도리어 겁내는 듯하다.


 


--------------------------------------------------------------------------------

 

 


송나라 소식이 쓴 '구양수가 벼슬 떠나는 것을 축하한다'라는 글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대단히 용감한 사람은 도리어 겁내는 듯하고 대단히 지혜로운 사람은 도리어 어리석은 듯하다."



담량이 있으면서도 나타내지 않는 것은 담량이 있다는 것을 설명해 줄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그 사람이 깊은 지모와 원대한 목표가 있음을 말해 준다. 바로 이러한 겁기와 나약성으로 은폐되어 있는 용기가 왕왕 성공할 가능성이 더욱 많은 것이다.



유비가 소패성에서 여포에게 패한 후 몸둘 곳이 없어 하는 수없이 조조의 수하에 탁신하였다.



후에 조조는 유비를 허창으로 데려갔는데, 목적은 유비를 꼼짝 못하게 했다가 나중에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을 모르지 않는 유비가 자기 마음속에 큰 뜻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후원에 채전을 일구어 놓고 열심히 물주며 가꾸었다.



그런데 어느 날 조조가 갑자기 유비를 연희에 참석하라고 청하였다. 술이 반 취하였을 때 갑자기 검은 먹구름이 뭉게뭉게 일어나더니 폭우가 쏟아지려고 하였다.



조조가 하늘의 번개를 가리키며, "용이 능히 커지고 작아지며 오르기도 하고 숨기도 하니 사람과 비기면 한번 떨쳐 구천에 오르는 절세의 영웅과 같지 않소." 조조는 말을 마치고 한동안 하늘을 바라보다가 유비에게 물었다.



"금세에 영웅이 누구라고 생각하오?"



"원술․원소․유표 등이 아닐지……"



"가슴에는 큰 뜻을 품고 배에는 깊은 모략을 감추며 우주의 기틀을 싸고 천지의 뜻을 삼키는 자라야 비로소 영웅이라 할 수 있지요."



유비가 물었다.



"누가 그런 영웅입니까?"



조조는 손으로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유비를 가리키고, 이어서 자신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지금 천하의 영웅으로는 오직 공과 내가 있을 뿐이오."



유비는 조조가 자기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큰 뜻을 꿰뚫어 보았는가 싶어 깜짝 놀라 수저를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 때 마침 뇌성벽력이 울리며 큰비가 퍼부었다. 조조가 유비를 쳐다보며 어찌하여 수저를 떨어뜨렸냐고 묻자 유비는,



"성인이 말하기를 '우레가 울부짖고 바람이 세차면 반드시 변이 있다'고 했는데,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조조는, "우레란 천지의 음양이 부딪치는 소리인데 무엇이 그렇게 놀라울 것이 있겠소?"



유비가 말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우렛소리를 두려워하여 그 소리만 들으면 몸을 숨기까지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조조는 마음속으로 냉소라며 유비는 겁많은 무용지인이라고 치부해 버렸다.



그후 유비는 수하 장수인 관우와 장비를 보고 말하였다.



"내가 후원에 채소를 심은 것은 조조가 나를 무용지인으로 알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조조가 나를 가리켜 영웅이라 하는구나. 그래서 우렛소리에 깜짝 놀라는 척 수저를 떨어뜨린 것이었지."



그후 유비는 일군을 빌려 원술을 치러 가겠다고 하니, 조조는 의심하지 않고 허락해 주었다. 유비는 밤을 도와 말안장을 얹고 병장기를 수습하여 장군인을 차고 군사를 재촉하여 길을 떠났다.



관우가 장비가 이번 출전은 왜 이렇게 황급히 서두느냐고 유비에게 묻자 유비가 대답했다.



"지금의 내 형세가 조롱 속의 새이고 그물 안의 고기가 아닌가. 이번이 길이 고기가 바다에 들어가고 새가 구름을 뚫고 하늘을 날아오르는 것인데 어찌 서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이제 다시는 조조의 절제를 받지 않으리라."



그때 조조의 모사 곽가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급히 조조를 찾아보고 간하였다.



"유비는 영웅의 기개가 있고 또 깊이 민심을 얻었으니 남의 밑에 오래 있을 사람이 아닌 데다가 그 속마음을 알 길이 없습니다. 오늘 그에게 군사까지 주시니 범에게 날개를 더해 준 것이 아닙니까."



"내가 보건대 유비는 한가하면 채소나 심고 우레 따위를 무서워하는 무용지인인데 무슨 근심할 것이 있겠소?"



라고 대답하면서도 조조가 곰곰 생각해보니 유비에게 군사를 내어준 것은 아무래도 잘못한 것 같았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은 후였다.



이렇게 조조가 유비를 놓아줌으로써 후에 삼국 정립의 형세가 되었거니와, 유비는 겁기로 자기의 용맹을 감추어 끝내 패업을 이룩했던 것이다.


대지약우(大智若愚):크게 지혜로운 사람은 오히려 어리석은 듯하다.


 


--------------------------------------------------------------------------------

 

 


'노자'는 "대단히 곧은 사람은 도리어 비굴해 보이고 대단히 교묘한 사람은 도리어 졸렬해 보이며 대단히 말을 잘하는 사람은 도리어 말을 더듬는 것 같다"고 하였다.



또 송나라의 소식은 "대단히 용감한 사람은 도리어 두려워하는 듯하고 대단히 지혜로운 사람은 도리어 어리석은 듯하며 지극히 귀한 사람은 초헌면류관이 없어도 영화롭고 지극히 인자한 사람은 양생을 하지 않아도 장수한다"고 하였다.



원래 지모가 뛰어나 사람은 오히려 어리석은 척한다. 이것은 내심의 큰 포부를 감추기 위하여, 또는 어떠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일부러 무능한 척하며 상대로 하여금 방심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기원 239년에 위나라 황제 조예가 병으로 죽자 겨우 8살밖에 안되는 조방이 왕위에 오르고, 사마의는 아무런 실권도 없는 태부가 되었다. 그리하여 병권은 송두리째 대장군 조상에게로 돌아갔다.



조상이 조정을 제 마음대로 하자 사마의는 이로 하여 그와 갈등이 생기었다. 병권을 되뺏아 오기 위하여 사마의는 고의로 늙고 병든 척하면서 잠시 재간을 숨기니, 조상은 그것을 진실로 알고 조금도 방비하지 않았다.



그후 위나라 가평 원년 정월에 사마의는 조상이 조방을 호위하여 고평릉에 가서 제를 지내고 돌아오는 틈을 타서 거짓 태후의 칙지를 전하고 성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사도 고윤을 파견하여 조상의 군영을 접수하게 하고 연후에 조방에게 표를 올려 조상의 죄상을 낱낱이 고하였다. 조방은 어쩔 수 없이 조상을 면직시켰다.



사마의는 또 군대를 보내어 조상의 집을 포위하고 모반죄로 조상과 그 도당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사마의는 그때로부터 조정 대권을 혼자 틀어쥐었다.



 

도회지술(韜晦之術):자기 재간을 감춘다.


 


--------------------------------------------------------------------------------

 

 


'도회'란 자기의 재간을 감추어 남들의 이목을 속이는 것을 말한다. '도'의 원뜻은 활을 넣어 두는 주머니로서, 들어간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회'는 암흑 또는 은회의 뜻을 가지고 잇는데 회월이라고도 한다. 음력으로 월말은 달이 자취를 감추어 암흑한 날이 되기 때문이다.



자기 본래의 면모를 숨기기 때문에 자기를 보전하기가 쉽다. 이렇게 되면 합당한 환경에서 상대방이 경계하지 않을 때 그 예정한 기도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도회지술은 "현명한 사람은 바탕을 드러내지 않고, 바탕을 드러내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 아니다"는 속담과 뜻이 아주 가깝다.



이 성구는 실력이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겸손하다는 도덕적인 면의 의미를 강조한 것이지만, 도회지술은 난세의 호신술을 반영한 것이다.



은나라 주왕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주연을 벌이면서 오늘이 며칠인지 날짜 가는 것도 몰랐다. 그가 좌우 대신들에게 물었지만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사람을 보내어 왕궁에서 대현인이라고 소문난 기자(箕子)에게 물었다.



기자는 옆에 있는 시종에게 탄식하며 말했다.



"한 나라의 임금이라는 사람이 날짜도 모르니 세상이 변하기는 변하여야 하겠다. 그렇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다 날짜를 모른다는데 만약 나만 안다고 한다면 모두 나에 대하여 경계심이 생길 것이니, 내가 위험하게 되겠지."



말을 마친 기자는 날짜를 물으러 온 심부름꾼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도 취해서 날짜를 잊어버렸다."



 

만천과해(瞞天過海):하늘을 속여 바다를 건너다.


 


--------------------------------------------------------------------------------

 

 


'만천과해'의 원뜻은 황제를 속여 무사히 바다를 건넌다는 뜻으로, 의역하면 상대 심리의 맹점을 찌르라는 것이다. 스스로 방비가 완벽하다고 여겨 적을 깔보는 것은 패전의 지름길이 된다.



북해 태수 공융(孔融)이 적에게 포위되었을 때였다. 태사자(太史慈)는 포위망을 돌파하여 원병을 청하러 가야하는 사명을 띠고 있었다.



그는 활과 과녁을 두 기사에게 들리고 성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성안에 있는 군사나 성밖에 있는 적병들이 이를 보고 모두 깜짝 놀랐다.



그러나 태사자는 태연히 말을 끌고 성 가까이에 있는 언덕에 과녁을 세우고 활쏘기 연습을 시작했다. 이윽고 연습이 끝나자 그는 다시 성안으로 돌아왔다.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이렇게 활쏘기 연습을 거듭했다. 그러자 성밖에 있는 적병들 중에는 그것을 구경하는 자도 있고, 드러누워 낮잠을 자는 자도 있었다.



사흘, 나흘 그는 변함없이 이렇게 활쏘기를 계속하자, 적은 이제 그에게 아무런 관심조차도 갖지 않게 되었다.



그때를 틈타 태사자는 갑자기 말 위에 올라 채찍을 휘두르며 비호처럼 적의 포위망을 뚫었다. 적들이 속았구나 하고 손을 쓰려 했을 때 그는 이미 멀리 가버린 후였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또 있다.



삼국 시대 오나라의 손책(孫策)이 수일을 연하여 회계성을 쳤으나 성은 좀처럼 깨어지지 않았다. 성벽은 높고 해자는 또한 넓고 깊었다. 손책이 무리를 모아 놓고 성 칠 일을 의논하니, 군중에 함께 따라와 있던 그의 숙부 손정(孫靜)이 계책을 말했다.



"성이 원체 견고하고 왕랑이 또한 죽기로써 지키는 터이라, 이대로 쳐서는 깨뜨리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이제 회계땅의 전량(錢糧)이 태반이나 사독에 있고, 그곳이 여기서 불과 수십 리니, 먼저 그곳을 점거하는 것이 어떨까? 이것이 이른바 '공기무비(攻其無備)요 출기불의(出其不意)'라, 그 방비 없음을 치고, 예상치 못한 때에 나아간다는 것이 아니겠느냐."



손책은 크게 기뻐하였다.



"숙부님의 묘계로 족히 적을 깨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즉시 각문에 영을 내려 불을 밝히며 기호(旗號)를 많이 세워 의병(擬兵)을 삼게 하고, 밤을 이용하여 에움을 푼 다음 사독으로 가기로 했다.



그때 한 장수가 말했다.



"주공께서 대군을 거두시어 떠나는 것을 알게 되면, 적이 필연코 성을 나와 뒤를 쫓을 것이니 기병(奇兵)을 쓰시는 것이 마땅할까 합니다."



"내 이미 준비를 하여 놓았네. 회계성은 오늘밤 안으로 우리 장중에 들어오게 될 걸세."



손책의 군마가 물러갔다는 첩보를 받은 회계성의 장수 왕랑은 무리들과 함께 성루로 올라갔다. 성밖을 두루 살펴보니, 성 아래에 연기와 불이 함께 일어나며 무수한 정기(旌旗)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왕랑이 마음에 의심하기를 마지않을 때, 부장 주흔이 말했다.



"손책이 겁을 집어먹고 군사를 거두어 달아나는가 봅니다. 그래서 정기를 휘날려 우리를 의심케 하는 것이니, 지금 곧 군사를 내시어 뒤를 치도록 하십시오."



이때 한 장수가 말했다.



"손책이 이번에 간 것이 혹시 사독을 치기 위함이나 아닐까요. 일군을 따로 뽑아 뒤를 치는 것이 좋겠습니다."



왕랑은 드디어 뜻을 정하였다.



"사독은 곧 우리의 둔량처(屯糧處)이니 아무래도 방비를 엄히 해야만 하겠소."



왕랑의 군사는 남으로 사독을 향해 급히 뒤를 쫓아 20여 리를 갔다. 때는 초경이 가까운데, 갑자기 밀림속에서 북소리가 크게 울리며 횃불이 일시에 일어났다.



왕랑의 군사들이 깜짝 놀라 급히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려 할 때, 한 장수가 창을 빗겨 잡고 말을 내달아 나오니 그는 바로 손책이었다.



이 싸움에서 왕랑은 크게 패하여 마침내 성을 버리고 도망치고 말았는데, 이는 바로 상대를 속여 그 약점을 누르고 때를 보아 기습하여 전승을 거둔 예이다.



 

무중생유(無中生有):없어도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

 

 


위장한 모습으로 적을 속임에 있어서 한없이 속이는 것이 아니라, 허(虛)로부터 실(實)로 바꾸어 적을 착각시키며, 크고 작게 가장한 모습으로 진짜 모습을 감추는 것이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것은 분명히 상대를 속이는 것이다. 속임수는 길게 가지는 못하고 언젠가는 적에게 들키게 마련이므로, 없는 상태를 끝까지 그대로 두어서는 안된다.



당나라 때 영호조(令狐潮)가 옹구를 포위했다. 성을 수비하고 있던 장순(張巡)은 군사들에게 명하여 허수아비 천 개를 만들게 하고 여기에 검정옷을 입혀 줄에다 매달아서 밤에 성벽에서 밑으로 내려보냈다.



영호조의 군사들은 사람이 내려오는 줄 알고 일제히 활을 쏘아댔다. 이래서 장순은 수십만개의 화살을 얻을 수 있었다.



그후 장순은 이번에는 진짜 사람을 성벽 밑으로 내려보냈다. 영호조의 군사들은 또 허수아비가 내려오는 줄 알고 비웃을 뿐, 싸울 준비를 하지 않았다.



이 틈을 이용하여 장순은 5백 명의 결사대를 내려보내 영호조의 진지를 습격, 영호군을 대파하였다

 

문치무공(文治武功):문덕으로 다스리고 무위로 공을 세운다.


 


--------------------------------------------------------------------------------

 

 


'한비자․내저실하'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공자는 문치무공의 정신으로 노나라의 백성들로 하여금 길에서 남이 떨어뜨린 물건을 줍지 않게 하였으며, 국력은 날이 갈수록 더욱 강성해지게 하였다."



공자는 "문관도 반드시 무력을 길러야 하며 무관도 반드시 문덕을 닦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 양자는 상호 의존하고 상호 촉진하는 것이므로 어느 하나도 버릴 수 없는 것이다.



기원전 500년, 공자는 노정공을 배행하여 제경공과 동맹을 맺으러 제로변계의 겹곡산으로 가게 되었다. 노정공은 두뇌가 비교적 단순하여 무력 강화 조치를 취할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공자는 노정공에게 문사를 볼 때에도 반드시 무력을 준비해야 하며, 문무지사가 서로 갈라질 수 없는 도리를 설명하였다. 그리고는 송양공이 무력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패권을 잃은 예를 말한 다음, 좌우 사마에게 군사를 거느리고 수행하게 하라고 하였다.



회맹 지점에 이르러 공자는 제나라의 많은 부대가 주위에 주둔해 있는 것을 탐지하고, 좌우 사마에게 경각심을 높이어 한시라도 싸울 준비를 할 것을 명령했다. 공자는 또 대부 자무에게 병차 300승을 거느려 회맹 지점에서 10리 떨어진 곳에 영채를 세우라고 명령하였다.



그때 제나라의 대부 이미는 제경공에게 이렇게 말했다.



"공자는 예만 알고 용맹이 없으며 또한 싸울 줄도 모르니, 내일 회맹에서 우리는 300명의 태이인(소수 민족)을 악공으로 분장시켰다가 그들이 준비가 없는 틈을 타서 노나라의 군신들을 모조리 붙들고 수종들을 죽여 버리면 노나라의 운명은 우리 손에 들어올 것입니다."



이튿날 제나라와 노나라의 양국 군신 4명이 단에 올라 회맹(서로 만나 맹세하는 일)할 때 제경공은 300명의 태이인이 앞으로 나와 본토의 음악을 울리게 했다.



노정공은 깜짝 놀라 낯색이 변하였으나 공자는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공자는 먼저 제경공더러 음악을 걷어치우게 했다. 제경공은 사태를 짐작하고 태이인들을 나가게 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공자는 또 제경공에게 노정공을 모욕한 악대의 대장을 법에 의하여 처벌할 것을 요구하였다. 제경공이 동의하지 않자, 공자는 대노하여 칼을 짚고 눈을 부릅뜨며 말하였다.



"두 나라가 좋게 지내면 형제나 마찬가지인데 노나라의 집법관이면 곧 제나라의 법관이나 같은 것이다."



공자는 손을 들어 좌우 사마를 큰소리로 부르니 두 장군이 나는 듯이 단에 올라와 남녀 악대 중에서 대장을 각각 하나씩 뽑아 당장에 목을 쳐버리니 나머지는 질겁하여 달아나고 말았다.



회맹은 무의미하게 끝나고 말았다. 제경공은 몹쓸 의견을 내놓은 대부 이미를 호되게 꾸짖고 나서, 양국간의 우의를 위하여 그전에 빼앗은 노나라의 땅을 모두 돌려주었다.



 

  미우주무(未雨綢繆):비가 내리기 전에 낡은 문을 손질한다.


 


--------------------------------------------------------------------------------

 

 


명나라 때 주백로의 '치가격언(治家格言)'에 이런 구절이 있다.



"비가 온 후에 문을 수리하고 목마른 다음에야 우물을 파려 하지 말라."



옛말에 "배불러도 간량을 가지고, 개인 날에도 우산을 지니라"는 속담은 세인이 다 아는 바다.



고명한 책략가 치고 높이 서서 멀리 내다보고, 앞서 획책하고 후에 행동하며, 우환을 미연에 방지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맹자․공손축'에 의하면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제후 장상들이 국가가 태평 무사할 때 미연에 문을 수리하는 준비 작업을 할 줄 모르면서 향수(享受)만 추구하고 안일만 탐내는 것은 기실 화를 자초하는 것이다."

미 인 계(美 人 計):미인을 쓰는 계략.

 


--------------------------------------------------------------------------------

 

 


병력이 강대하고 그 지휘자가 뛰어난 장수라면 싸워서는 안된다. 오히려 이쪽에서 일시적이나마 순응하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적에게 순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전국 시대의 6개국처럼 진나라에 국토를 진상하는 방법은 적의 세력만 강대하게 해 주기 때문에 가장 좋지 않은 방법이다.


또 송나라가 요․금나라에게 그랬듯이 돈이나 비단을 헌납하면 적의 재력이 불어나므로 이것도 또한 좋지 않은 방법이다.


그러나 미인계에는 이러한 약점이 없다. 월왕 구천(勾踐)이 오왕 부차에게 그랬듯이 미인계를 써서 부하들의 불만을 자극함으로써 질 것을 이기게, 약한 것을 강하게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삼국지에 유명한 일화가 있다. 후한 말엽 한나라의 실권을 장악한 동탁에게, 사도 왕윤(王允)은 가기(歌妓) 초선을 보내어 여포(呂布)와 동탁을 이간질시켜, 여포로 하여금 동탁을 죽이게 하는데 성공했다.


진(秦)나라 목공(穆公) 때의 일이다. 서쪽의 이민족인 융(戎)이 강대해지자, 위협을 느낀 목공은 융 왕실에 아름다운 무희(舞姬) 16명과 함께 솜씨 좋은 요리사를 보냈다.


융왕은 이를 기뻐하여, 낮 밤을 가리지 않고 춤과 좋은 음식을 즐기며 주색에 빠져 들어갔다. 좌우의 신하가 진나라의 침략을 염려하여 충간하면 융왕은 대노하여 활로 쏘아 죽이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얼마 후 진나라가 쳐들어 왔을 때 융왕은 술통 옆에 취하여 곯아 떨어져 있다가 생포되고 말았다.


그는 생포될 때까지도 진나라의 침략이 있으리라는 것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생포가 된 뒤에도 취하여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고 한다.


'한비자'에 이런 기록이 있다.


"진(晋)나라 헌공(獻公)은 우․괵 두 나라를 치기 위해 먼저 명마와 보석과 미녀 16명을 보내, 군주의 마음을 사로잡아 국정을 혼란케 했다."


 

반 간 계(反 間 計):반목시키고 이간시키는 계략.

 


--------------------------------------------------------------------------------

 

 


간(間:첩자 또는 간첩)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서 '손자'는 이것을 오간(五間)이라 이름하고 있다.


향간(鄕間:적국 사람을 이용함), 내간(內間:적국의 관리를 이용함), 반간(反間:적국의 첩자를 역이용함), 생간(生間:이쪽 사람을 적국에 잠입시켜 몰래 상황을 탐지 보고케 함), 사간(死間:적의 간첩에게 거짓 정보를 흘려 적을 혼란에 빠트림)의 다섯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손자'가 가장 중요시한 것은 반간이다.


'간(間)'이란 적이 서로 의심하여 믿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반간(反間)이란 우리 쪽을 이간시키려는 적의 음모를 이용하여 거꾸로 적을 이간시키는 것을 말한다.


전국 시대 연나라의 소왕(昭王)이 죽은 뒤에 왕위를 이어받은 혜왕(惠王)은 태자 때부터 장군 악의와 뜻이 맞지 않았었다.


제나라의 명장 전단(田單)은 이러한 갈등 관계를 이용하여 첩자를 연나라로 잠입시켜 이런 유언비어를 퍼뜨리게 했다.


"악의는 혜왕의 미움을 받아 혹시나 죽음을 당할까 두려워 제나라를 공략한다는 구실로 제나라 군사와 연합하여 연나라의 왕이 되려고 노리고 있다. 그런대 아직까지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아 즉묵(卽墨) 공략을 지금까지 늦추고 있는 것이다. 지금 제나라가 가장 염려하고 있는 것은 연나라가 다른 장군을 파견시켜 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즉묵은 당장 함락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 유언비어를 그대로 믿은 연나라 혜왕은 악의를 파면시키고 후임에 장군 기겁을 파견했다. 이렇게 해서 악의는 조나라로 망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그 후 기겁(騎劫)은 제나라 군에 대패하여 연나라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


이 밖에 삼국시대에도 오나라 장군 주유(周瑜)는 조조가 보낸 첩자를 이용하여 조조측 장군을 이간시킨 일이 있다.


제갈공명도 "적이 이쪽을 속이려 들면 이쪽에서 계략을 쓰기가 쉽다"고 말하고 있다.

 

반객위주(反客爲主):주객을 전도시킨다.

 


--------------------------------------------------------------------------------

 

 


'반객위주(反客爲主)'란 손님이 주인으로 바뀐다는 뜻으로, 때를 보아 실력을 강화하고 남의 군대를 겸병하여 객군을 주군으로 바꾸는 계략을 말한다.


'삼국지'에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촉나라의 전략가 법정(法正)이 황충(黃忠)에게 작전 계획을 설명했다.


"하후연(夏侯淵)은 경박한 사나이입니다. 무용뿐이지 계략이 없습니다. 군사를 격려하여 진지를 구축해 가면서 한 걸음씩 전진하여 그를 유인하면 반드시 포로로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객을 바꾸어 주가 되는 계략입니다."


황충은 이 반객위주의 계략에 따라 진지를 구축해 가면서 며칠 동안 쉬었다가 또 전진하고 했다.


하후연은 이 소식을 듣고 황충을 공격하려 했다.


"이건 반객위주의 계략입니다. 지금 공격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싸우면 반드시 패하게 될 것입니다."


장합이 한사코 말렸으나 하후연은 끝내 듣지 않았다.


과연 하후연은 황충에게 유인되어 마침내 함정에 빠져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반객위주라는 말의 본뜻은 주인의 대접이 서툴러 오히려 손님이 대접을 한다는 뜻이다.


 

방압득봉(放鴨得鳳):새우를 미끼로 해서 도미를 잡는다.

 


--------------------------------------------------------------------------------

 

 


'방압득봉'이란 오리를 풀어 봉을 당겨온다는 뜻으로, 보잘것없는 미끼로 큰 잉어를 낚는 것을 말한다.


삼국 시대 촉나라와 위나라가 싸울 때였다. 위나라의 태수 마준은 하후무가 남안성에서 촉나라의 제갈량에게 포위되어 곤경에 빠져 있다는 보고를 들었다. 그는 문무 제관을 모으고 말했다.


"하후 부마로 말하면 곧 금지옥엽의 몸인데, 만일에 소우한 바 있으면 대죄를 면치 못할 터라, 대체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 모두들 어찌할 바를 몰라 망설이고 있는데, "하후 부마께서 심복 장수 배서를 보내왔습니다." 하고 보한다.


이윽고 배서가 부중(府中)으로 들어와, 공문을 마준에게 전한 다음, "태수께서는 지체없이 군사를 거느리고 남안성의 포위를 풀어주십시오." 하며, 총총히 말을 마치고 돌아갔다.


마준은 더 지체할 수 없어, 서둘러 기병(起兵)하려고 할 때 갑자기 한 사람이 밖에서 나타나며, "태수께서는 제갈량의 계교에 빠졌습니다." 하고 소리쳤다. 사람들이 바라보니, 성은 강(姜)이고, 이름은 유(維), 자는 백약(伯約)이었다.


"요사이 듣건대, 제갈량이 하후무를 깨트리고 남안성을 물샐 틈 없이 포위하고 있다는데, 또 배서로 말하자면 한낱 무명 하장(無名下將)이라 일찍이 본 적조차 없는 사람입니다. 이로써 미루어보면, 이 사람은 바로 촉장이 거짓으로 배서라 일컫고 태수를 속여 성밖으로 나오게 한 후, 그 빈틈을 타서 근방에 매복했던 일군으로 우리 천수성을 빼앗으려는 계책임이 틀림없습니다." 듣고 나자 마준은 무릎을 치며 크게 깨달았다.


"백약이 일러주지 않았더라면 간계(奸計)에 빠질 뻔하였구려!"


강유는 웃으며, "태수께서는 안심하십시오. 저에게 일계(一計)가 있으니, 가히 제갈량을 사로잡고, 남안의 위태로움을 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윽고 강유는 계교를 말하였다.


"제갈량이 반드시 성의 뒤에다 군사를 매복시켰다가 우리 군사가 속아서 성밖으로 나가면 그 빈틈을 타서 엄습할 것입니다. 태수께서 저에게 정병 3천만 주시면 요로에 매복하고, 태수께서는 뒤따라 발병(發兵)하되 성을 멀리 나가지 않고, 한 30리쯤 갔다가 돌아오십시오. 제가 불을 올려 신호할 것이오니, 그때에 전후로 협공한다면 대승을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갈량의 계교는 과연 강유가 짐작한 바와 다름이 없었다. 원래 제갈량은 일군을 산벽 속에 매복케 하였다가 천수성의 인마가 비울 때를 노리어 치게 했던 것이다.


이렇게 상대방의 책략이 간파된 이상, 승패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싸움에 패한 제가량은 군사를 거두어 영채로 돌아와서도 그의 머리에는 강유 생각밖에 없었다. 얼마 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제갈량이 물었다.


"강유의 어미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


"기현(冀縣)에 살고 있습니다."


듣고 나자 제갈량은 한 장수를 불러, "그대는 일군을 이끌고 허장성세(虛張聲勢)하며 기현을 빼앗을 듯이 하다가, 만약에 강유가 오고든 성으로 들어가게 놓아 두라." 하고 명령했다.


위나라의 첩자가 이 사실을 천수성으로 전하되, 촉병(蜀兵)이 기현을 치러 떠났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강유의 두 눈으로 주르르 눈물이 흘렀다. 뭇 사람들이 강유의 심중을 헤아리지 못하여 의아해 하자, 강유는 울음섞인 목소리로 마준에게 고하였다.


"용서하십시오. 저의 어미가 지금 기현에 있기 때문에 걱정이 되어, 눈물이 나왔습니다. 바라건대 저에게 일지군을 빌리시면, 기성도 구할 겸 노모를 모실까 합니다."


워낙 효성이 지극하기로 이름난 강유인지라, 아무도 그의 말에 두 말이 없었다. 마준은 강유로 하여금 3천병을 거느리고 기현으로 가게 하였다.


강유는 군사를 재촉하여 노모가 살고 있는 기현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렸다. 도중에 촉군이 나타나 싸움이 벌어지는가 했더니 곧 달아나고 말았다.


강유는 그대로 군사를 몰고 성으로 들어가자, 성문을 굳게 닫고 군사를 시켜 엄히 지키게 한 후 자기는 노모가 거처하는 집으로 달려갔다.


그 사이에 제갈량은 사람을 남안군으로 보내어, 사로잡아 둔 하후무를 데려오게 하여 한 마디 물었다.


"네 죽음이 두렵지 않느냐?"


하후무는 황급히 절하며, 목숨만 살려 달라고 엎드려 빌었다. 제갈량은 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지금 강유가 기성을 지키고 있는데, 글을 보내 말하기를, 오직 그대만 놓아준다면, 나와서 항복하겠다고 한다. 그대 생각은 어떤가? 내 이제 그대의 목숨을 살려 보낼 것이니 강유를 항복하게 하겠는가?" 하고 물었다. 이것은 물론 제갈량이 꾸며낸 거짓말이엇다. 그러나 하후무는 놓아준다는 말에, "네, 틀림없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제갈량은 사람을 시켜 새 옷 한 벌을 가져오게 하여 하후무에게 입히며, 다시 말에 안장까지 얹어 주어, 혼자서 돌아가게 하였다.


이리하여 제갈량의 계략에 빠져 진퇴양난이 된 강유가 마침내 항복을 하게 되자, 제갈량은 강유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다정하게 말했다.


"내가 모려를 나온 이래로 널리 현자(賢者)를 구하여, 평생 배운 바를 전하고자 하였으되,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사람을 얻지 못하여 자못 초조함을 느꼈더니, 이제 그대를 만났으니, 소원이 이루어지려나 보오."


그러자 뭇 장수들이 말했다.


"그러면 이제 하후무를 뒤쫓아가 사로잡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는 위왕의 부마가 아닙니까." 제갈량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하후무 하나쯤 놓아주는 것을 마치 오리 한 마리 놓아주는 거나 다름없게 여기는데, 항차 이번에 우리가 강백약(姜伯約)을 얻었으니, 어찌 봉(鳳)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고 거듭 껄껄 웃었다.


부저추신(釜底抽薪):적의 기세를 꺾어야 한다.


 


--------------------------------------------------------------------------------

 

 


힘으로는 대항할 수 없어도 적의 기세를 꺾을 수는 있다. 즉, 유(柔)하게 하는 것으로 능히 강(剛)함을 이기는 방법으로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부저추신'이란 솥 밑의 장작을 빼낸다는 뜻으로, "장작을 꺼내 물이 끓는 것을 그치게 하고, 풀을 먼저 베고 그 뿌리를 뽑는다"에서 나온 말이다. 즉, 적의 계략을 근본적으로 부수어 버리라는 뜻이다.



후한 초에 오한(吳漢)이 대사마였을 때, 한밤중에 적이 진지를 습격해 온 일이 있었다.



그 때 온 부대가 당황하여 우왕좌왕하는데, 오직 오한만은 태연히 누운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군사들은 이러한 태연스런 오한의 태도를 보고 곧 평정을 되찾았다.



뒤이어 오한은 지체없이 정예부대를 가려 뽑아 밤을 이용, 반격을 감행하여 적을 무찔렀다. 이것이 직접 적과 부닥치지 않고 계략으로 적의 기세를 꺾는 방법이다.

비득불용(非得不用):득이 없으면 군사를 쓰지 않는다.


 


--------------------------------------------------------------------------------

 

 


'비득불용'은 만약 군사를 써도 얻는 것이 없거나 이길 수 없으면 행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전쟁을 신중하게 대하는 자세이다.



전국 시대 조나라 명장 이목은 흉노군에 대비하여 안문 일대에 군사를 둔쳐 놓고 "득이 없으면 군사를 쓰지 않는다"는 방침에 다라 군사를 훈련시키고 적정을 수집하되 군졸들은 성밖에 못 나가게 하였다.



그는 끈기 있게 시기를 기다리다 군사를 쓸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계책을 써서 적들을 일거에 대패시켰다. 흉노군은 그후 10여 년 동안 조나라의 변경을 침범하지 못하였다.


  비리부동(非利不動):이익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

 

 


'손자 병법' 공편에는 "고명한 임금은 비리부동해야 한다. 이익이 없으면 동하지 않고, 수확이 없으면 군사를 쓰지 않고, 위험이 핍박하지 않으면 싸움을 하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사기' 권73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진나라의 소양왕은 백기를 대장으로 하여 조나라의 도읍 한단을 치게 하였다.



백기는 진나라가 비록 장평에서 승리하기는 했지만, 자기 군의 희생도 절반이나 되고 국내가 텅 비었기 때문에 다시 싸움을 벌이면 불리하다고 생각하여 결연히 대장직을 사임하고 말았다.



소양왕은 왕흘에게 군사를 거느리고 조나라를 치게 명령했으나 오랫동안 공격해도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소양왕은 다시 백기를 대장으로 나오라고 하였다.



그러나 백기는 병을 칭탁하고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서, "대왕께서 저의 권고를 듣지 않더니 오늘 어떻게 되었습니까?" 라고 말하였다.



소양왕은 대노하여 그에게 비록 병중이지만 출정하라고 엄명을 내렸다. 백기는 엄숙하게 말하였다.



"신이 군사를 거느리고 조나라를 친다고 해도 틀림없이 패할 것이니 역시 죄를 짓게 될 것이고, 만약 신이 출정을 거절하면 대왕에게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확실히 조나라를 칠 시기가 아니므로 응당 군사를 쉬게 하고 백성을 돌보면서 제후들의 변을 방비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므로 신은 차라리 지금 이 자리에서 대왕에게 죽더라도 수치스러운 대장은 되지 않겠습니다."



소양왕은 끝내 백기의 간언을 듣지 않았다. 그는 이해를 따르지도 않고 고집스레 기병했다가 참혹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이것은 "이익이 없으면 동하지 말라"는 원칙의 반례인 것이다.


 

비위부전(非危不戰):위급하지 않으면 싸우지 않는다.


 


--------------------------------------------------------------------------------

 

 


이것도 역시 '비득불용'과 마찬가지로 싸움을 신중히 한다는 뜻이다. 위급한 상황에 이르러 달리 어찌할 수 없는 때가 아니면 싸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위부전'의 전제는 물론 국가의 이익이다. 국가의 이익에 부합되면 싸우고 부합되지 않으면 중지해야 한다.



'투필부담'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무릇 군사를 일으켜 싸운 것은 모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목적은 국가의 화란의 뿌리를 뽑고 민중의 폭란을 평정하기 위한 것이지, 민중을 참살하고 혼란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사면초가(四面楚歌):상대를 고립시킨다.

 


--------------------------------------------------------------------------------

 

 


'사면초가'란 사면에서 모두 초나라 노래를 부른다는 뜻으로, 세인이 다 아는 공성계(攻城計)의 하나이다. 전거는 초․한이 서로 다투던 해하 싸움에서 나왔다.


'사기․항우 본기'에 의하면 항왕의 군대는 해하에 둔치고 있었는데, 병사는 적고 양식이 다한 데다 한군과 제후들의 군사들이 여러 겹으로 포위하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한군은 사면에서 초나라 노래를 불렀다. 항왕은 크게 놀라 "한나라가 벌써 초나라를 다 점령했는가? 무슨 초나라 사람이 이렇게 많은가?"하고 탄식하였다.


한신은 '사면초가'의 방법으로 초나라 군사들로 하여금 싸움을 싫어하고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계략을 썼던 것이다.


그리하여 군심이 흩어져 뿔뿔이 도망치고 항왕이 아끼는 심복 정예 부대인 8천 자제도 애간장이 다 끊어지는 돗하여 싸울 생각이 사라졌다. 몇 년 동안이나 항우를 따르던 장군들도 슬그머니 떠났고 항우의 숙부 항백도 가만히 달아나고 말았다.


항우는 사면초가 속에서 우희와 이별하고 오강(烏江) 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니 초나라도 따라서 망하고 말았다. 이것은 한신이 채용한 심리전이 성공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삼국지 연의'에는 오나라의 여몽(呂蒙)이 형양 전투에서 사면초가의 계책을 써서 관우(關羽) 군중의 장수와 병사의 가속들로 하여금 산 위에서 높이 외치게 하여 군심을 동요시킨 사실을 서술하였다.


"형주 사병들의 형제가 서로 부르고 부자가 서로 찾아 외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군심이 변하여 모두 그 소리에 따라 달려갔다. 관우가 호통쳐도 불러 세우지 못하니 부하는 겨우 300여 명이 남았다."


위풍이 천하에 떨친 관우도 항우와 마찬가지로 무리가 배반하고 친인들이 떠나는 외롭고 구슬픈 사람이 되고 말았다.


 

상루추제(上樓抽梯):다락 위에 올려놓고 사다리를 치운다.

 


--------------------------------------------------------------------------------

 

 


'상옥추제(上屋抽梯)'와 같은 말로서, 상대를 이익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 작은 이익으로 유도만 하고 수단을 쓰지 않는다면 적은 주저하여 움직여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다락 위에 올려놓고 사다리를 치워 버리는 계략을 쓰려면 먼저 사다리를 단단히 걸쳐놓고 그것을 상대에게 똑똑히 보여 상대가 완전히 믿도록 해야 한다.


'상루추제'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적군을 유인한 다음 그 퇴로를 차단하여 격멸한다. 둘째는 스스로 퇴로를 끊고 배수진을 친 다음 필사적인 각오로 분전케 한다. 셋째는 자기쪽만 유리한 데로 가고 상대방은 오지 못하게 한다.

 

상옥추제(上屋抽梯):지붕에 오르게 한 다음 사다리를 치운다.

 


--------------------------------------------------------------------------------

 

 


'손자․구지편'에는 "군사를 일으켰을 때 이미 높은 데 올랐으면 사다리를 치워 버려야 한다"고 하였다.


'삼국지․촉서․제갈량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후한 말엽 유표는 후실 자식인 유종을 사랑하고 장자 유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위험을 느낀 유기는 제갈량에게 자기의 안전을 기할 방법을 가르쳐 줄 것을 요구했지만, 제갈량은 남의 가사(家事) 문제라 하여 이를 거절하였다.


하루는 유기가 제갈량을 청하여 후원에서 산책하며 구경하다가 함께 높은 다락에 올라 연석을 차려 놓고 먹는 사이에 유기는 가만히 사람을 시켜 사다리를 치워 버리게 한다음 제갈량을 향해 말했다.


"이제 위로는 하늘에 오를 수없고 아래로는 땅에 내릴 수 없습니다. 선생님께서 입으로 하신 말씀은 내 귀로 들어올 뿐입니다."


진퇴양난이 된 제갈량은 더 이상 피하지 못하고 춘추 시대 진헌공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공자께서는 신생(申生)과 중이(重耳)의 이야기도 듣지 못했습니까. 신생은 안에 있다가 죽고 중이는 밖에 나가 있어서 화를 면하였으니, 공자는 하루 바삐 형주에서 떠날 방법을 찾으십시오."


유기는 문득 깨닫고 곧 아버지에게로 가서 자기를 강하로 파견하여 줄 것을 간청하여 지방의 수비군 사령관으로 나가게 되었다. 이리하여 권력 내부의 암투를 피하고 재앙을 면할 수 있었다.


사람을 얼러 높은 곳에 오르게 한 다음에 사다리를 옮겨 버리면 물러날 길이 없게 되어 하는 수 없이 토실(吐實)하게 마련이다.


 

선모후사(先謨後事):앞서 꾀하고 후에 착수한다.


 


--------------------------------------------------------------------------------

 

 


'고금도서집성' 병략부에서 '강태공은 가히 출병하여 상나라를 토벌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답하여 말하기를, "앞서 꾀하고 후에 착수하는 자는 흥하고, 앞서 착수하고 후에 꾀하는 자는 망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모든 영역에 적용될 수 있는 기본 원칙으로서, 어떤 행동이든지 반드시 충분한 준비가 있는 기초 위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원전 1068년 주무왕 희는 맹진에서 군사를 일으킨 후 강태공 등 여러 모신들의 지혜를 모아 상나라를 멸망시킬 준비를 착착 진행시키고 있었다.



그에 앞서 주무왕의 아버지 주문왕도 이미 상나라를 칠 준비를 하였기에 주문왕이 죽었을 때는 상나라를 멸망시킬 시기가 이미 성숙되어 있었다.



주나라는 이미 3분 천하에서 그 2를 차지한 상조의 서부에서 가장 강대한 제후국이었다.



강태공은 일찍이 문왕에게 말하기를,



"매가 새를 공격할 때는 몸을 낮추고 날개를 접으며, 맹수가 짐승을 덮칠 때는 머리를 낮추고 몸을 구부려 엎드리는 법입니다. 성인이 큰 일을 하려 하면 반드시 어리석은 기색을 보여야 합니다." 라고 하면서, 문왕에게 상나라를 칠 시기를 노리되 행동하기 전에는 아무 일도 없는 듯이 하여 상대방이 주의하지 않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



주나라 무왕 11년(기원전 1066년), 무왕은 상나라의 주왕이 직간한 죄로 숙부인 비간을 살해하고 심장까지 꺼내 버렸다는 보고를 들었다. 뿐만 아니라 주왕은 그의 서형인 기자가 자기의 잔혹 음탕한 데 대하여 불만을 품었다고 하여 감금하고, 그의 또 다른 서형인 미자도 나라 형편이 위험한 것을 보고 여러 차례 간하였지만 주왕이 듣지 않자 떠나 버리고 말았다는 보고를 받았다.



무왕이 강태공에게 물었다.



"어질고 능한 자가 망하니 상나라를 칠 수 있지 않겠소?"



강태공이 대답했다.



"앞서 꾀하고 후에 착수하는 자는 흥하고 앞서 착수하고 후에 꾀하는 자는 망합니다. 하나라 때의 조례는 끝맺을 때가 되었고 겨울의 얼음은 풀릴 때가 되었습니다. 기회는 얻기 어렵고 놓치기 쉬운 것입니다."



무왕은 드디어 그해 정월에 전차 3백승, 용사 3천명, 갑사 4만 5천명을 거느리고 각 제후국들과의 맹진에서 회맹하였다.



2월 5일, 목야에 군사를 벌여 놓고 무왕은 주왕의 죄를 성토하고 사졸을 고무하였다. 목야 한 차례 싸움에서 몇십만의 상나라 군대는 와해되어 뿔뿔이 도망하였다.



주왕은 녹대에 올라 스스로 불에 타죽고 말았으며 상왕조 600여 년의 통치는 이로써 끝났다.



 

 

선발제인(先發制人):선수를 써서 상대방을 제압한다.

 


--------------------------------------------------------------------------------

 

 


'사기․항우 본기'에 의하면 기원전 209년 9월에 진승과 오광이 기의(起義) 하였다. 회계의 수장 은통도 승세하여 군사를 일으켜 탈권해 보려고 항우의 숙부 항량을 찾아가 말하였다.


"지금 진조(秦朝)의 기력이 다하여 장강 북안에서는 이미 힘있는 세력들이 분분히 일어났다고 하오. 내가 듣자니 앞서면 남을 제어하고 뒤떨어지면 남의 제재를 받게 된다고 하오."


항량과 하우도 언젠가 기의하려고 생각했지만 은통의 부하가 되기는 싫었다. 그들은 밀모하여 은통을 죽인 다음 은통의 대인(大印)을 가지고 회계군 8천여 인을 휘하에 장악하였다. 그리고는 "진나라를 뒤엎고 초나라를 복구하자"는 기치를 높이 들고 기의하였다.


'한서․항적전'에도 "선수를 쓰면 남을 제압하고 후수를 쓰면 남의 제재를 받는다"는 말이 있다.


'좌전․선공 12년'에 이렇게 적혀 있다.


"내가 먼저 손을 써 적을 타격 할지언정 적이 앞서 손을 써서 나를 치게 해서는 안된다. 먼저 손을 써서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은 적의 기도를 타파할 수 있다. 그러므로 먼저 손을 써야한다."


나폴레옹이 자신의 전승(戰勝) 경험을 총결산할 대 득의양양하게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나는 남들이 미처 깨닫지도 방비할 수도 없을 때 나는 무엇을 말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를 잘 알고 있었다.


 

선성탈인(先聲奪人):먼저 성세를 올려 상대방의 기를 꺾는다.

 


--------------------------------------------------------------------------------

 

 


'좌선․선공 12년'의 기록에 의하면 진(晋)나라 군대가 정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초나라 군대와 충돌했을 때 손숙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병서에 이르기를 남보다 앞서 이기려면 단번에 상대방의 기를 꺾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 말이 후에 와서 "먼저 성세를 올려 상대방의 기를 꺾어야 한다"는 말고 되었다. 뜻인즉 우선 자기의 성세를 올려 상대방을 위압하거나 여론상에서 한 발 앞서 주도권을 쟁취하라는 것이다.


'좌선․소공 21년'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화추․장갈 등은 송나라의 동성 남문을 점령하고 진나라에 있던 화정 등도 소식을 접하자 즉시 올라왔으며 화등은 오나라의 군사를 빌려 와서 접응하였다.


송원공은 송나라의 옛성 상림문에 군사를 파견하여 지키게 하고, 제나라의 대부 오지명도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송군을 도와 방어에 임하였다.


복이라는 송나라 대부가 말했다.


"병서에 이르기를 만약 빨리 이기려면 단번에 상대방의 기를 꺾고 천천히 이기려면 상대방의 사기가 떨어지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오나라의 군대가 고생스럽게 와서 아직 쉬지 못한 틈을 타소 진공하지 않고 무얼 합니까? 만약 그들이 진지에 들어가서 안정되고 강화된다면 화씨의 사람이 많아지고 형세가 커져서 이기기가 쉽지 않을 것이니, 그때에 가서는 후회해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이 의견은 즉시 받아들여져서 제․송 두 나라가 협력 진격하여 화씨와 오나라 군대를 대패시키고 말았다.


 

성동격서(聲東擊西):동쪽에서 소리지르고 서쪽을 친다.

 


--------------------------------------------------------------------------------

 

 


전한(前漢) 경제 때 오․초 등 분봉된 왕족 7국이 영합하여 반란을 일으켰는데, 한나라 장군 주아부(周亞夫)는 성루를 고수하여 결코 밖으로 쳐 나가지 않았다.


오나라 군사가 성의 동남쪽을 공격할 움직임을 보이자, 그는 곧 성의 서북쪽 수비를 단단히 하라고 명령했다. 이를 보고 수행 군사가 의아하여 물었다.


"적이 동남쪽을 치려는데 장군께서는 어찌하여 서북쪽의 수비를 명령하십니까?"


그러나 주아부는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후에 과연 오왕은 주력 군사로 서북쪽을 공격해 왔는데 미리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공격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것은 지휘자가 침착 냉정하여 적에게 속지 않은 하나의 예이다.


또 후한 말기, 주준(朱寯)이 완성(宛城)에 있는 황건군(黃巾軍)이 공격했을 때의 일인데, 그는 적정을 살필 수 있도록 우선 성밖에 작은 동산을 쌓았다.


그리고는 북을 치며 군사들이 성의 서남쪽을 공격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황건군이 당황하여 우루루 서남쪽 수비로 몰렸다. 이것을 바라보고 있던 주준은 친히 주력군 5천을 이쓸고 성의 북쪽을 불의에 공격하여 완성을 빼앗았다. 이것을遁 황건군의 지휘자가 혼란하여 급변하는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예이다.


이상의 두가지 예로 보아 "동쪽에서 소리지르고 서쪽을 치는"계략을 운용하려면 먼저 적측 지휘자의 머리가 혼란에 빠져 있는지의 여부를 알고 난 후에 결정해야 한다.


적의 의지가 혼란되어 있지 않다면 오히려 패배를 맛볼 수 있다. 이것은 모험적인 계략이다.


 

 

소리장도(笑裏藏刀):적을 방심시킨다.


 


--------------------------------------------------------------------------------

 

 


'소리장도'는 웃음 속에 칼을 감춘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싱글벙글하지만 내심은 음험하다.



겉으로는 웃음으로 상대를 방심시키는 한편, 은밀히 적극적으로 준비하여 시기가 오면 불의에 공격을 한다.



'손자'는 이렇게 말했다.



"적의 대응이 겸손한 태도로 나오는 것은 실은 이 쪽으로 공격을 가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인 약속도 없이 화해를 말해 올 때는 실은 딴 데 겨냥하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적이 상냥하게 나오거나 달콤한 말을 걸어오는 것은 이쪽을 속이려는 속셈을 나타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송나라의 조위(曹瑋)는 위주의 자사였다. 그의 군율은 매우 엄해서 서하인(西夏人)들은 몹시 그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부장들을 모아놓고 주연을 열고 있었는데, 돌연 수천 명의 군사들이 반란을 일으켜 서하로 도망쳐 버렸다. 많은 장수들은 깜짝 놀라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두려워했으나 오직 조위만은 태연하게 담소하면서 평소와 같이 이렇게 말했다.



"염려 마라. 그들은 내 명령에 의한 것이니라."



이 말을 전해들은 서하의 왕은 송나라 군사들이 도망쳐 온 것은 그 뒤에 간계가 숨겨져 있는 것으로 알고 그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말았다. 이것은 조위의 임기응변의 모략이었다.



지백(智伯)이 위(衛)나라를 치기 위한 사전 공작으로 말 4백 필과 백옥(白玉) 한 개를 위왕에게 선물했다.



위왕은 크게 기뻐하며 군사들을 모아놓고 축하를 했으나, 남문자(南文子)만은 근심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위왕이 의아하여 물었다.



"대국이 큰 호의를 보여주었는데 그대가 근심스러워하는 것은 대체 무슨 까닭이오?"



남문자가 대답했다.



"공이 없는데도 주는 상(賞)이나 노고를 들이지 않았는데도 주는 예물은 그 속에 독이 들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4백 마리의 말과 한 개의 구슬은 마땅히 소국이 취해야 할 예(禮)입니다. 그럼에도 대국이 그렇게 호의를 보이고 있으니 군주께서는 이 점을 잘 생각하십시오."



위왕은 그 말의 뜻을 깨닫고 한층 국경의 방비를 강화하도록 했다.



그후 지백이 군사를 이끌고 위나라의 국경까지 쳐들어 왔다가 위나라 국경의 방비가 엄한 것을 보고 철수하며 말했다.



"위나라에 현인(賢人)이 있어서 이쪽의 계략을 미리 알아버렸구나."



 

수도보법(修道保法):길을 닦고 법칙을 확보한다.


 


--------------------------------------------------------------------------------

 

 


'수도보법'이란 사전에 각 방면으로부터 꼭 이길 수 있는 길을 닦아, 즉 조건을 구비하여 자기를 보전함으로써 전면적인 승리를 쟁취하는 전쟁 법칙을 말하는 것이다.



손빈은 이렇게 말했다.



"도를 아는 자는 위로는 하늘의 도를 알고 아래로는 땅의 도를 알고 안으로는 민심을 알고 밖으로는 적정(敵情)을 알며 진(陳)에 임하면 팔진법을 알아야 한다. 승리할 수 있으면 싸우고 승리할 수 없으면 싸우지 않는 사람이 바로 뛰어난 지휘자이다."



어느 날 한고조 유방은 한신에게 권하여 같이 여러 장수들을 평가해 보라고 했다. 장수들은 제각기 점수가 달랐다.



고조가 물었다.



"짐은 몇 사람의 군사를 거느릴 만한가?"



"폐하께서는 십만 군의 장수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어떤가?"



"신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고조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그대는 어찌하여 짐에게 사로잡혔는가?"



"폐하께서는 병사의 장수가 될 그릇은 아닙니다만, 장수의 장수가 될 그릇을 가지셨습니다. 이 점이야말로 신이 폐하의 포로가 된 이유입니다. 이는 하늘이 점지한 능력이라 인간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수상개화(樹上開花):위엄있게 보이도록 한다.

 


--------------------------------------------------------------------------------

 

 


'수상개화(樹上開花)'란 나무 위에 꽃을 피운다는 뜻으로, 남의 병력을 빌려 적을 굴복시키는 책략을 말한다. 원래의 뜻은 그 동안 피지 않던 나무에 뜻밖에도 꽃이 피었다는 뜻인데 "쇠나무에서 꽃이 핀다"에서 나온 말이다.


부대의 다른 국면을 뻗쳐 유리한 진형을 만들면 비록 병력이 약하다 하더라도 진용을 강대한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


옛날 싸움에서는 선봉(先鋒)이라는 것이 있는데, 여기서 봉이란 창끝, 즉 무기의 끝에 붙어 있는 뾰족한 금속 부분을 말한다.


중국 군대에는 전통적으로 선봉이라고 하는 특별 정예 부대가 있다. 이것은 우수한 자들만 골라 특별 훈련을 실시하고 또 우수한 장비로 무장시킨 호랑이 부대이다.


주장(主將)은 기회를 엿보아 이를 결전장에 투입하여 적의 진지를 돌파한다. 그렇게 하면 이제까지 기가 죽어 있던 일반 부대도 갑자기 의기가 충천하여 선봉이 뚫어 놓은 곳으로 돌입해 간다.


이 선봉을 일반 부대의 선두에 세움으로써 전군의 전력을 폭발시키는 것--이것이 재를 뿌려 고목나무에 꽃을 피우는 수상개화이다. 그런데 주장이 무모하면 뜻밖의 피해를 보는 경우도 없지 않다.


 

순수견양(順手牽羊):작은 실수를 찌른다.

 


--------------------------------------------------------------------------------

 

 


'순수견양'은 손에 잡히는 대로 양을 끌고 간다는 뜻인데, 한 가지 일에만 열중하지 말고 널리 눈을 돌려 이용할 수 있는 이익을 모두 이용하라는 말이다. 아무리 작은 이익이라도 무시할 수 없다. 티끌모아 태산이 된다는 말이다.


명심할 만한 충고이지만 이 계략에는 위험이 따른다. 그것은 사소한 이익에 눈이 어두워 본래의 목적에 소홀해지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말이다.


'삼국지'에 따르면 후한(後漢)의 헌제는 역신들의 난동 때문에 장안으로 납치되어 연금 상태에 있었다. 그는 학대에 못 이겨 몰래 탈출, 낙양으로 도망가다가 도중에 도적 기마대에게 쫓기게 되었다.


헌제는 수레를 타고 있었는데 수레와 그를 추격하는 기마대와는 속력에 차이가 있었다. 쫓기고 쫓기다가 어느덧 곧 붙잡히게 되었다. 그때 헌제를 시종하던 늙은 신하 동승이 소리를 질렀다.


"갖고 있는 패물이나 돈을 있는 대로 길바닥에 버려라!"


함께 달리던 사람들은 목숨이라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지니고 있던 패물이나 입고 있던 옷을 벗어 길바닥에 던지고, 황후까지 패물을 있는대로 길바닥에 버렸다.


맹렬하게 뒤쫓아 오던 도적들은 추격을 멈추고 급히 말에서 내려 서로 앞을 다투어 땅위에 흩어져 있는 보화들을 줏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이에 당황한 도적의 대장이 소리소리 지르며 이를 제지하려 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1년 내내 목숨을 걸고 일해도 손에 넣을 수 없는 값진 물건들이 늘려 있는데 그걸 버리고 헌제를 쫓을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도적은 닥치는 대로 양(羊)을 끌어가기는 했지만 진짜로 중요한 것은 잃고 만 것이다.

 

쌍관제하(雙管齊下):두 가지 방법으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한다.


 


--------------------------------------------------------------------------------

 

 


장조는 당나라 때 오군 사람으로, 소나무나 돌․산․물을 잘 그리는 화가였다. 그는 회화 예술에서 독창적인 방법과 독특한 풍격을 지니고 있었으며, 당송 회화사에서 일정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당나라 현종 때 그는 일찍이 검교사부원외랑을 지내다가 후에 강등되어 장안을 떠나 무릉군 사마가 되었다.



송조 때 곽약허의 '도화견문지'에 보면 장조는 회화 창작에 뛰어난 재주가 있어, 능히 두 손으로 두 붓을 쥐고 동시에 두 개의 소나무를 그리는데, 한 붓이 그린 것은 윤함춘택하여 생기가 넘치고, 다른 한 붓이 그린 것은 참담하기 가을빛 같아 초졸하고 메말랐다.



부동한 형상은 한가지로 생동하여 그의 쌍관제하의 본령은 사람들로 하여금 탄복하지 않는 사람이 없게 하였다.



두 개의 붓으로 동시에 시작하여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것을 '쌍관제하'라고 한다.



이 말은 후에 하나의 성어로 되어 무릇 두 가지 방법을 동시에 쓰거나 혹은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때 '쌍관제하'라고 하게 되었다.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어떤 때는 학문에 의거해야 하고 어떤 때는 무력을 쓰기도 한다. 즉, 정치 수단뿐만 아니라 경제․군사․외교 등의 수단도 써야 한다.



어떤 일을 하든지 모두 하나의 방식에 완전히 의거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두 다리 걷기'방법을 채용하라는 뜻이다.



 

 

안불망위(安不忘危):안정할 때 위험함을 잊지 않는다.


 


--------------------------------------------------------------------------------

 

 


'이․계사' 하권4에는 "군자는 안정하여도 위험함을 잊지 않고, 생존하여 있으면서도 망하는 것을 잊지 않으며, 다스려져도 혼란한 것을 잊지 않는다. 그래야만 능히 몸이 안전하고 나라를 보전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쓰여 있다.



또 '백전기법' 망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안정할 때 위급함을 잊지 말고 태평할 때 난리를 잊지 말라는 것은 성인의 지극한 타이름이다. 천하가 무사하다고 무력을 없애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일단 불한당이 일어나면 무엇으로 막겠는가. 반드시 안으로는 문덕을 닦고 밖으로는 무력을 엄히 기르며 외교를 중시하면 실책함이 없을 것이다."



기원전 221년, 제나라가 망하고 제왕 전건은 포로가 되었다. 진시황은 그를 공(共)으로 쫓아보냈는데 얼마 못 가서 그곳에서 죽고 말았다.



제나라가 망한 주원인은 제왕이 장기간 무력을 기르지 않고 현 상태에 만족하면서 안일 만 추구한 것이었다.



제왕 전건은 40여 년의 재위 기간에 어릴 때는 국사를 군왕후에게 맡겨 처결하면서 중원에 대한 겸병(兼?) 전쟁에 대해 무관심하였으며, 그저 제후들간에 친교만 있으면 곧 나라를 보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군왕후가 죽은 뒤에도 제왕 전건은 여전히 얼떨결에 세월을 보내었다. 제나라 조정의 뜻있는 사람들이 사직을 위하여 무력을 길러 나라의 위세를 떨쳐야 한다고 권고하였으나, 그는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진나라 대군이 국경을 넘어 들어오자 어쩌지 못하고 붙잡혀 나라를 망친 임금이 되었으며, 모멸과 수치의 기둥에 못 박히고 말았다. 전쟁을 잊으면 꼭 위험하다는 것은 제왕이 우리에게 남겨준 커다란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암도진창(暗渡陣倉):우회 작전을 취한다.

 


--------------------------------------------------------------------------------

 

 


'암도진창'은 본래 잔도 보수가 끝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몰래 딴 길을 택하여 돌아서 진창으로 건너갔다는 뜻이다.


삼국시대 위나라 장수 등애는 백수(白水)의 동쪽 강언덕에 군사를 주둔시켰다. 3일 후 촉나라의 강유(姜維)도 요화 장군에게 명하여 백수 남쪽 강언덕에 군사를 진출시켜 진지를 구축했다.


등애가 모든 장수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강유의 부대가 갑자기 나타났다. 우리쪽 군사는 그다지 많지 않다. 전쟁의 상도로 봐서는 당연히 그는 다리를 놓기 전에 먼저 강을 건너 공격해 올 것이다. 그런데 아직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보면, 우리 군사의 퇴로를 차단하고 우리를 견제하기 위해 일부러 요화를 시켜 진격하게 한 것이다. 그 사이 강유는 스스로 대군을 이끌고 동쪽에서 조성(?城)을 습격할 것이 틀림없다."


이렇게 말하고 그날 밤으로 지름길을 이용하여 군사를 급히 조성으로 보냈다.


과연 강유는 강을 건너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등애의 대군이 먼저 와 있었으므로 조성은 함락되지 않았다. 이것은 강유가 은밀히 진창으로 건너는 계략의 운용에 서툴렀고, 등애 쪽은 강유의 계략을 재빨리 간파했기 때문이었다.


 

 

애병필승(哀兵必勝):비분한 군대가 이긴다.


 


--------------------------------------------------------------------------------

 

 


'손자병법․작전편'에는 "적을 죽이는 자는 노하여야 한다"고 하였고 '백전기법․노전'에는 "무릇 적과 싸울 때는 반드시 군사를 격려하여 분노케 한 다음에 출전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기원전 279년, 제나라의 전단(田單)이 즉묵에서 연나라군에게 포위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는 연군을 무찌를 일련의 전략을 세웠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애병지계'였다.



그는 선전하여 말하기를, "나는 연군이 우리 제나라 군사를 포로로 잡은 후 코를 베어 버리고 그들을 공격 부대의 맨 앞에 세우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데, 만일 그렇게 되면 즉묵은 곧 격파되고 말 것이다."



연군은 이 말을 듣고 과연 그렇게 하였다. 명령을 내려 포로들의 코를 몽땅 베어버린 다음, 공격 부대의 맨앞에 세웠다.



성중의 군민들은 포로가 된 군사들이 모두 코가 베인 것을 보고 전례없이 본노하여 결사적으로 성을 고수하여 굴복하지 않았다. 전단은 또 간자(간첩)을 파견하여 이렇게 말하도록 했다.



"나는 연나라 군대가 즉묵성 밖의 묘들을 파헤치는 것이 가장 두렵다. 만약 그렇게 되면 성중의 군민들은 모두 마음이 얼어붙어 투지를 잃고 말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연나라 장군 기겁은 명령을 내려 묘를 파헤쳤을 뿐만 아니라 해골들을 불태워 버리며 제나라 사람들에게 빨리 투항하라고 핍박하였다.



성중의 군민들은 이 광경을 보고 비통하여 눈물을 흘리며 의분에 넘쳐 연군과 사생결전을 벌일 결심을 하였다.



전단은 군민들의 드높은 사기를 보고 가히 결전의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는 군민들을 이끌고 대거 반격하여 연군을 대파하고 일거에 제나라의 실지를 수복하였다.

 

연 환 계(連 環 計):적이 스스로 얽히게 해 놓고 그 다음에 친다.


 


--------------------------------------------------------------------------------

 

 


적의 병력이 강대할 때는 정면에서 대결해서는 안된다. 계략을 운용하여 먼저 적끼리 서로 견제하도록 해서 그 힘을 빼야 한다. 이 경우 주장의 지휘가 교묘하고 자쥬자재로 군사를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연환의 계략'이란 적들끼리 서로 밀고 당기도록 하여 행동력이 약해지면 공격을 하는 계략이다. 처음 공격에서 적을 신경질적으로 지치게 하고 다음에 공격하는 두 가지 공격을 종합해서 잘 운용하면 아무리 강적이라도 이를 격멸시킬 수 있다.



송나라의 명장 필재우(畢再遇)는 유적지계(誘敵之計)를 써서 적이 공격해 오도록 유인하는 데 명수였다. 진격하다가는 후퇴하고, 후퇴하다가는 다시 진격하여, 이렇게 집요하게 적을 골탕먹였다.



해질 무렵에 그는 향료를 섞어서 삶은 콩을 땅바닥에 뿌려놓고 싸움을 거는 척 하다가 다시 후퇴해 버렸다. 적은 쏜살같이 추격해 왔다. 그런데 그들의 말은 이미 허기가 져 있었다.



콩냄새를 맡은 말들은 모두 정신없이 그걸 먹기 위해 아무리 채찍질을 해도 꼼짝하지 않았다.



이 때 필재우는 전 병력을 동원하여 폭풍처럼 역습했다. 승부는 뻔한 일이었다. 이것이 연환계의 운용이다.



삼국지에는 이런 얘기가 나온다.



적벽 대전 직전, 조조는 방통(龐統)에게 육상 진지와 수상 진지를 안내해주고 그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방통은 장기전에는 무엇보다도 당병들의 건강이 중요한다고 말하면서,



"환자는 없는지요?" 라고 넌지시 물었다.



온갖 질병이 득실거리는 곳에서, 더욱이 장기간에 걸친 비위생적인 수상 집단 생활을 계속해 온 터라 조조군에게는 많은 환자가 생겼고, 조조 자신도 그걸 몹시 걱정하고 있던 중이었다.



"뭔가 좋은 방법이 없겠소?"



그러자 방통이 대답했다.



"장병들이 모두 너무 오래 수상 생활을 해 왔고, 육지를 밟지 않은 게 탈이지요. 그렇지만 적을 눈앞에 두고 배를 비운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니, 수상 진지를 육지처럼 만드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큰 배 30척과 중간 배 50척을 쇠줄로 한데 묶어 그 위에다 넓은 판자를 놓아 한 척의 큰 배처럼 만든다면 장병들은 마치 육상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어서 건강 회복에도 좋을 듯 싶습니다. 또 풍화가 있어도 거뜬히 돌진할 수 있으니 보잘것없는 오나라 군선쯤이야 단번에 격퇴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조조는 크게 기뻐하며 곧 군중에 있는 대장장이를 총동원하여 쇠줄을 만들게 하여 병선들을 연결시켰다. 배가 한데 모아지고, 게다가 그 위에 판자가 깔렸으니 웬만한 파도에도 배가 흔들리지 않아 모두들 좋아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훗날 이것이 조조에게 참패를 안겨주는 원인이 되었는데, 그것이 주유의 화공을 성공시키기 위한 계략인 줄을 조조는 몰랐던 것이다.



 

와신상담(臥薪嘗膽):풀섶에 눕고 쓸개를 핥다.


 


--------------------------------------------------------------------------------

 

 


춘추 시대 강남의 오․월 두 나라는 세세 대대로 원수여서 싸움이 그치지 않았다. 오왕 부차가 즉위하자 오나라는 또 군사를 일으켜 월나라를 쳤다.



당시 오나라 국도는 오이고 월나라의 국도는 회계였다.



두 나라는 고성 일대에서 싸움을 벌였는데, 결과는 월나라가 대패하였다.



월왕 구천은 대부 문중을 오나라의 백비에게 보내어 화해를 구하게 하였다. 백비는 문중이 가져온 황금과 백옥 등 진귀한 예물이 많은데다 또 미녀까지 있으니 아주 득의하여 곧 함께 가서 오왕을 보았다.



문중은 오왕에게 월왕이 오나라의 신하가 되는 것을 진심으로 원하며 월나라의 땅까지도 오나라에 합병하기를 원한다고 말하였다. 오왕은 이에 동의하여 예물을 받은 후 월왕 구천으로 하여금 오나라로 와서 자기를 모시라고 하였다.



그후의 일에 대해 '사기․월왕 구천 세가'와 오월춘추'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월왕 구천은 국사를 문중과 다른 대신들에게 맡기고 자기는 아내와 함께 대부 범려를 데리고 회계를 떠나 오나라로 갔다.



오왕 부차는 구천 부부를 합려 묘(합려는 부차의 아버지로서 얼마 저 오․월전에서 패하여 죽었다) 옆의 돌방에서 말을 먹이게 하였다. 범려도 그들 부부와 함께 잡일을 하였다.



구천은 부차를 위하여 3년이나 말을 먹여 주면서 항상 몸을 삼가고 모든 언짢은 일들을 참고 견디었다.



오왕 부차가 매번마다 수레에 앉아 나갈 때면 구천은 수레를 매고 말을 끌면서 아주 각근히 시중을 들었다. 그 사이 문중도 국내에서 종종 백비에게 예물을 보내주어 백비는 항상 오왕 앞에서 구천을 위하여 좋은 말을 해 주었다.



한번은 오왕이 병들어 몸져 누웠을 때 구천은 백비와의 관계를 통하여 오왕의 침궁에 들어가 친히 시중을 들기도 하였다.



오왕 부차는 매우 감동되어 병이 나은 후 곧 구천 부부와 범려를 석방하여 월나라로 돌아가게 하였다.



구천은 월나라에 돌아오자 고생을 참고 분발하여 나라를 다시 세울 것을 결심하였다. 그는 문중으로 정치를 다스리게 하고 범려로 군사를 훈련하게 하며 전국 백성들에게 분발하여 강성을 도모하자고 호소하였다.



그는 십년간 생육을 장려하고 재물을 모으며 동시에 교육을 진흥하고 군민을 훈련하니, 이것이 이른바 '십년생집 십년교훈'으로서 십년 후에 오나라를 칠 계획이었다.



구천은 자기의 투지를 견지하기 위하여 조금도 편한 생활을 하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 요도 깔지 않고 풀을 깔았으며 또 쓸개를 준비하여 밥먹기 전이나 앉아서 휴식할 때면 반드시 쓴맛을 보곤 하였다. 이것을 바로 와신상담이라고 한다.



과연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아 십년이 되기도 전에 월나라는 국력을 회복하고 강대해졌다. 그리하여 몇 싸움에 월나라는 번번이 오나라를 이기었다.



그후 또 몇 년이 지나 마침내 구천은 문중․범려와 함께 친히 대군을 영솔하여 오나라를 공격하였는데, 오나라 군대는 패하여 백비는 투항하고 부차는 자살함으로써 오나라는 망하고 말았다.



그후 '와신상담'과 '십년생집 십년교훈'은 스스로 격려하며 힘쓰고 분발하여 재기를 도모함으로써 부끄러움을 씻고 원수를 갚는다는 격언이 되었다. 역시 사람들은 실패나 좌절을 당한 후에야 더욱 큰 힘이 생겨나게 되는가 보다.



 

용적위아(用敵爲我):적을 나를 위하여 이용한다.


 


--------------------------------------------------------------------------------

 

 


적이 있기만 하면 무조건 철저히 없애버리려는 것은 본능에 의하여 행동하는 사람의 졸렬한 방법이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정치 책략가들은 그 정치적 수요로부터 출발하여 어떤 경우에는 고의로 일정한 양의 반대파를 남겨 놓았는데, 이러한 책략은 깊이 음모해 볼 만한 것이다.



'전국책'에 의하면 한나라 재상 공숙과 한왕의 애자 기슬이 대립되어 서로 반목하였다. 결국 기슬이 실세(失勢)하여 외국으로 망명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공숙은 그래도 마음을 놓을 수 없어 기슬이 망명하기 전에 자객을 보내어 그를 암살하려 했다. 그러자 한 모사가 권고하였다.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태자 백영은 지금 당신을 비상하게 중히 여깁니다. 이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바로 기슬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슬을 제어하여야 하기 때문에 비로소 당신이 중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만약 죽어 버리면 당신도 반드시 경시를 받게 됩니다. 오직 기슬이 있어야 태자에게 두려움이 있게 되고, 그래서 당신도 중히 여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적의 역설적인 존재 가치이며 동시에 적의 역량에 대한 적극적인 이용이다. 적은 물론 적으면 좋겠지만 적의 존재 가치를 다각도로 냉정하게 분석 계산하여 역량을 균형시키고 원활하게 자기의 책략에 조정하여야 한다.



 

원교근공(遠交近攻):멀리 있는 적은 사귀고 가까운 적은 공격한다.


 


--------------------------------------------------------------------------------

 

 


지형상의 제약을 받을 때에는 가까이 있는 적을 공격하는 것이 유리하며, 먼데 있는 적을 공격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은 경우가 흔히 있다. 불은 위로 타오르고 물은 밑으로 흐른다. 같은 적이라도 대책은 달리해야 한다.



이 '원교근공'책은 전국 시대 위나라의 범수(范紙)가 주장한 대외 전략으로서, 당시 진(秦)나라는 국력을 믿고 멀리 있는 강국 제나라와 대결하려 했다.



그러자 범수는 이웃에 있는 한(韓)나라와 위나라를 놓아두고 제나라를 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며 이렇게 간했다.



"대왕께서는 멀리 교섭하고 가까운 것을 쳐야 합니다. 그래야만 한 치의 땅을 얻어도 대왕의 것이 될 것이며 한 자의 땅을 얻어도 역시 대왕의 것이 될 것입니다."



범수는 전국 시대 위나라 사람으로 자는 숙(叔)이며 장록(張祿)이라고 이름을 바꾼 적도 있었다. 진(秦)나라로 들어가서 소왕(昭王)을 설득하여 전권을 휘두르고 있던 외척을 몰아내고 상국에 올랐다.



원교근공의 계략을 써서 여섯 대국을 차례로 멸망시켜 진나라로 하여금 천하를 통일케 하였다.


위위구조(圍魏救趙):분산시켜 놓고 친다.


 


--------------------------------------------------------------------------------

 

 


병력이 집중되어 있는 적을 치기보다는 적을 분산시켜 놓고 치는 편이 좋다.



일찍이 손자(孫子)는 전기(田忌)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헝크러진 실을 풀려면 억지로 잡아당기면 안됩니다. 요소를 찌르고 혀를 찔러 상대의 방비나 세력을 깨뜨려 버리면 자연히 해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위나라의 공격을 받고 수도인 한단을 포위당한 조나라는 제나라에 구원을 청하였다.



제나라의 현신 단(段)이 제왕에게 진언했다.



"위나라가 한단을 함락시켜 그 세력이 강해지면 제나라도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



이 진언에 따라 급히 출병한 한단 교외에까지 군사를 진출시켰다. 바야흐로 한단을 포위하고 있는 위나라 군사의 배후를 치려는 제왕에게 다시 단이 간했다.



"조나라를 돕는 것도 제나라를 위태롭게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방비가 허술한 남쪽 위나라의 책원지 양양을 공격케 했다.



제나라 군사가 양양을 공략하고 있는 동안에 한단이 함락됨으로써 조나라의 전력도 약해지고, 양면에 걸쳐 싸운 위나라도 역시 지쳐 있었다.



제나라는 일거양득, 더욱이 별로 전력을 소모하지도 않고 이웃에 있는 두 강국의 위협을 한꺼번에 제거할 수 있었다.


욕금고종(欲擒故縱):잡으려면 먼저 놓아준다.


 


--------------------------------------------------------------------------------

 

 


추격이 너무 지나치면 적의 반격을 받는다. 쫓겨가는 적은 그 세력이 이미 약해져 있는 것이다. 적은 놓치지 않을 정도로 그 뒤를 쫓아야 한다. 너무 바짝 몰아 붙여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상대방의 힘을 소모시키고 그 투지를 와해시켜 지리멸렬해지기를 기다렸다가 붙잡도록 해야 한다. 천천히 대응하고 세심하게 실행하여 적을 와해시켜야만 우리 쪽에 피해가 적고 유리하다.



여기서 놓아준다는 것은 적을 내팽개쳐 버린다는 뜻이 아니라, 뒤를 쫓는 방법을 다소 느슨하게 하라는 뜻이다.



궁구(窮寇), 즉 궁지에 몰린 적은 쫓지 말라고 손자(孫子)가 말한 것도 바로 이런 뜻이다.



쫓지 말라는 것은 뒤를 쫓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너무 지나치게 적을 몰아붙이지 말라는 뜻이다.



중국의 삼국시대 제갈량이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 놓아주는 이른바 칠종칠금의 계략을 썼는데, 이것은 곧 그렇게 함으로써 적장 맹획(孟獲)의 뒤를 쫓아, 그때마다 지역을 넓혀 간다는 계략이었다.



일곱 번 놓아주는 그의 속셈은 영토의 확대에 있었던 것이며, 맹획을 하나의 본보기로 하여 다른 민족들을 항복시켜 나갔던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대도강(李代挑?):오얏나무가 복숭아나무를 대신하여 죽다.


 


--------------------------------------------------------------------------------

 

 


이 말은 서한의 무명씨가 지은 '계명편'에서 볼 수 있다. 거기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복숭아나무는 우물 옆에 자라고 살구나무는 그 옆에서 자랐다. 벌레가 와서 복숭아나무 뿌리를 먹으니 살구나무가 가슴을 뻗치고 서서 복숭아나무를 보호하려 하였다. 나무도 서로 몸바쳐 구하려 하는데 형제가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이대도강'은 남을 대신하여 과오를 지거나 남을 위하여 수고하는 것 또는 갑으로 을을 대신하는 일종의 책략이다.



전쟁에서 국부적 이익을 희생하여 전반 국면의 주동을 바꾸는 것, 갑을 버리고 을을 취하는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구체적인 예로는 고대의 손빈이 말달리기를 할 때, 하등말로 상대방의 상등말과 겨루어 한 판을 진 다음, 자기의 상등말로 상대방의 중등말을 이기고 자기의 중등말로 상대방의 하등말을 이기는 것이 그것이다.



또 '삼국지'의 주유가 고육계(苦肉計)로 황개를 때릴 때 하나는 때리려 하고, 하나는 맞기를 소원한 것도 모두 이대도강의 성공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대도강'의 책략을 운용함에 있어서의 관건은 득실을 잘 계산하고 획책을 잘 하는 데 있는 것으로서, 간단하게 승부의 차수를 비교해서는 안 된다. 최후의 승리를 누가 쟁취하는가를 보아야 한다.



 

 

이덕위본(以德爲本):덕으로 근본을 삼는다.


 


--------------------------------------------------------------------------------

 

 


'논어' 위정편에 의하면 공자는 말하기를 "도덕으로 나라를 다스리면 마치 북극성처럼 일정한 위치에 있어도 다른 별들이 모두 그를 에워싸고 돌게 된다"고 하였다.



무릇 불패의 위치에 서 있는 사람들은 많은 요소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이덕위본을 견지하는 것이야말로 제일 중요한 요소의 하나로 간주하였다.



진나라 문공(文公)이 원(原)이라는 곳을 칠 때, 군사들에게 7일 동안에 성을 함락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7일이 지나도 떨어지지 않자 군사들에게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정세를 탐지하러 갔던 첩자가 돌아와서 문공에게 보고했다.



"원은 곧 항복을 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막료 장수들도 모두 원이 항복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였으나 문공은,



"신의야말로 나라의 보배이다. 원을 얻고자 보배를 잃어서는 안된다."



라고 하며 끝내 군사를 거두었다.



다음해에 문공은 다시 군사를 일으키며, 이번에는 반드시 원을 쳐서 깨뜨리겠다고 맹세했다. 원의 군사들은 그 말을 듣고 모두 항복하였다.



또 위나라도 그 소식을 전해 듣고, 문공은 정말 신의를 지키는 사람이라고 하여 그들도 마침내 귀속하였다. 흔히 '원을 공격하여 위를 얻었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독공독(痢攻毒):독으로 독을 친다.


 


--------------------------------------------------------------------------------

 

 


'이독공독'은 원래 의학상의 용어이다. 의미는 독약으로 독증을 치료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후에 책략 용어로 인용되어, 악인으로 악인을 다스린다든가 나쁜 방법으로 나쁜 방법을 대처한다는 비유로 되었다.



즉, 원수로 원수를 대처하고, 원수의 손을 빌려 원수를 제압하며, 비열한 수단으로 비열한 수단을 대처한다는 것이다.



'동주 열국지'에 진문공(晋文公)이 책략으로 화를 면한 이야기가 나온다. 진문공은 국군(國君)이 된 지 얼마 안되어 진회공(晋恢公)의 옛 신하인 여성․각예가 불을 놓아 궁실을 태워 버리려고 기도하였다.



이 음모를 진문공의 원수인 사인피가 알게 되었다. 사인피는 사사로운 목적으로 이를 진문공에게 알려주었다. 진문공은 이로 하여 준비가 있게 되었고, 따라서 여성과 각예의 음모는 분쇄되었다.



그러나 여․각의 도당들이 많았기 때문에 여․각이 죽은 후 그들은 황황 불안해 하면서 각종 요언을 퍼뜨려 진나라의 안위를 크게 위협하였다.



진문공이 바로 이 일을 근심하고 있을 때 두순이라는 자가 찾아왔다. 이 사람도 진문공의 원수였다.



"큰 죄인인 저를 등용하여 쓰기만 하신다면 진문공은 옛 원한을 따지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고 인심도 곧 안정될 것이니 저를 써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진문공은 그의 말대로 성을 돌아본다는 구실로 행차를 할 때 두순으로 하여금 자신의 옆에서 배행하게 하였다. 여․각의 도당들은 두순이 진문공에게 특채된 것을 보고 안심하게 되었도 요언도 점차 그쳐 진나라도 차츰 안정되었다.



 

이우위직(以迂爲直):굽은 것으로써 곧은 것을 이루다.


 


--------------------------------------------------------------------------------

 

 


'손자 병법․군쟁편'에서는 "군사를 씀에 있어서 어려운 것은 굽은 것으로 곧은 것을 이루고 재앙을 이로운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우위직, 즉 우회함으로써 곧게 가는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고명한 책략가들에게 있어서 목적 달성을 위한 상용적 수단이다.



동쪽으로 가려 하면서 서쪽으로 떠나며, 빨리 가려 하면서 천천히 둘러가는 것은 표면상으로 보면 목표와 멀어지는 것 같지만 기실은 곧은 길을 가는 것이 된다.



기원 263년 9월에 위나라 군대가 두 갈래로 나뉘어 촉나라를 공략할 때였다. 진서장군 종회는 위군의 주력을 거느리고 한중으로 쳐들어가 양평관을 따라 곧게 내려감으로써 검각을 일거에 탈취하고, 이어서 성도를 위협하려고 기도하였다.



그러나 촉장 강유가 험요한 지리 조건을 이용하여 완강하게 항거하는 바람에 종회의 부대는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쌍방이 검각에서 대치하게 되었다.



종회가 검각에서 몇 차례 접전을 벌였으나 성공하지 못하게 되자 정서장군 등애는 음평으롤부터 작은 길로 덕양정을 거쳐 부성을 치자고 건의했다.



부성은 검각에서 서쪽으로 400여 리나 되고 성도까지 이르자면 그곳에서 또 300여 리를 더 가야 했다.



검각을 지키는 강유가 부성을 구하러 간다면 종회는 싸우지 않고 검각을 점령할 수 있는 것이고, 만일 강유가 부성을 구하지 않는다면 부성을 일거에 빼앗을 수 있는 것이었다.



마침내 등애는 정예 부대 1만 명을 이끌고 산을 파서 길을 내고 나무를 찍어 다리를 놓으며 700여 리를 전진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천병마냥 갑자기 부성에 나타났다.



표면상으로 보면 등애는 굽은 길을 간 것 같지만 기실은 촉나라의 주력을 에돌아 곧게 간 것이 되었으며, 그리하여 일거에 촉나라를 멸망시킬 수 잇었던 것이다. 이것은 이우위직의 계략으로 성공한 가장 훌륭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일대로(以逸待勞):편안함으로 피로한 상대를 기다린다.


 


--------------------------------------------------------------------------------

 

 


'손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미리 전장에 나가 적을 기다리고 있으면 쉬운 싸움을 할 수 있으나, 뒤늦게 전장에 나가 허둥지둥 응전을 하게 되면 힘든 싸움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싸움을 잘 하는 자는 교묘히 적을 섬멸하며 적에게 당하는 일이 없다."



독일의 유명한 전략가 클라우제비츠도 "방어는 공격보다도 더 견고한 전투 방식이다"라고 말하고 있듯이 방어하는 쪽이 편하고 안전한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고로 방어만으로 싸움에 이긴 예는 없다. 이론과 실제가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방어 쪽이 정신적으로 위축되어 소극책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손자도 "가까운 것으로써 먼 것을 기다리고, 편안함(逸)으로써 피로함(勞)을 기다리며, 배부름(飽)으로써 배고픔(飢)을 기다리는 것이 곧 힘을 다스리는 자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정대화(以靜待譁):진정된 것으로 들뜨기를 기다린다.


 


--------------------------------------------------------------------------------

 

 


'손자 병법' 군쟁편에는 자기쪽의 진정된 것으로 상대의 들뜬 것을 이기라고 하였다.



진정되어 침착하고 안정된 태세로 기회를 노려 들뜨고 조급하고 불안하며 불안정한 상대를 공격하라는 것이다.



기원 617년, 즉 수양제 13년에 이세민은 곽읍 전투에서 송로생의 정병 2만이 곽읍에 둔치고 나오지 않자, 건성과 함께 수십기를 거느리고 성을 포위하는 태세를 보이고 채찍을 들어 군기를 가리키며 큰소리로 욕설을 퍼부었다.



"일군의 대장이 되어 아녀자처럼 겁을 집어먹고 싸우려 하지 않다니, 참으로 쥐새끼 같은 놈이로구나!"



송로생은 대노하여 2만 정병을 이끌고 성을 뛰쳐나왔으나 결국 계책에 떨어져 대패하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안정된 것으로 조급하고 들뜬 것을 이긴 실례의 하나이다.



경황하면 꼭 실책이 생기게 마련이다. 임금의 마음이 흔들리면 신하들의 마음이 흔들리고, 대장의 마음이 흔들리면 군심이 흔들리게 된다.



자고로 책략가들은 모두 흔들림이 없는 것을 수양의 중요한 근본으로 삼았다.



 

이치대란(以治待亂):엄정하게 다스려진 것으로 혼란하기를 기다린다.


 


--------------------------------------------------------------------------------

 

 


'손자 병법' 군쟁편에는 "엄정하게 다스려진 것으로 혼란하기를 기다리고 조용한 것으로 떠들어대기를 기다리는 것이 곧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고 하였다.



'치(治)'란 매우 광범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나라가 다스려지면 안정을 구할 수 잇고 군대가 다스려지면 승리를 얻을 수 있으며 자신이 다스려지면 인격 수양을 기할 수 있다.



기원전 564년 진락공 때 진나라는 나라가 잘 다스려져 백성들은 태평성대를 누렸다. 진나라가 정나라를 토벌했을 때 정나라는 초나라에 구원을 청하였다.



초나라 군대는 주야로 행군하여 진나라 군대가 준비 없는 틈을 타서 밤중에 기습을 감행, 수비대가 영채를 나올 사이도 없게 만들려고 하였다.



그러나 진나라 군대는 불리한 형세에도 조금도 혼란에 빠지지 않고 침착하게 영내의 부엌과 우물을 메우고 대열을 지어 진세를 펼치고 3분4군의 방법으로 초나라 군대와 싸워 오히려 초나라 군대를 극도로 피로하게 만들었다.



초공왕은 원래 불의에 습격하여 진나라 군대를 혼란에 빠뜨리려고 했던 것인데 도리어 진나라 군대에 의하여 어이없게 무너지고 말았다.



 

 

이호경식계(二虎競食計):라이벌끼리 싸움을 붙인다.


 


--------------------------------------------------------------------------------

 

 


한(漢)나라의 실권을 틀어쥔 조조는 후당에 연석을 크게 배설하고 수하의 문관․무장들을 모아 상의했다.



"근자에 들으니 여포가 유비에게로 가서 몸을 의탁하고 있다고 하는데, 만약에 이 두 사람이 동심 협력하여 군사를 일으켜 와서 범한다면 실로 심복지환(心腹之患)이라, 공들은 무슨 묘계가 없겠소?" 말이 떨어지자 맹장 허저가 나섰다.



"저에게 정병 5만만 빌려 주시면 유비와 여포의 머리를 베어다 승상께 바치겠습니다."



순욱이 웃으며 말했다.



"장군이 용맹은 남에게 뛰어나지만 어찌 계책을 쓸 줄 아시겠소." 한 마디 하고, 이어서 조조에게 말했다.



"이제 민심이 안정되지 못하였으니 군사를 일으키는 것은 온당치 않습니다. 저에게 한 계교가 있으니 '이호경식계(二虎競食計)'라, 이제 유비가 비록 서주를 점거(占據)하고는 있으나 아직 조명(詔命)은 얻지 못한 터이니, 승상께서는 조명을 주청하여 유비로 서주목(徐州牧)을 삼으시고, 다시 한 통의 밀서를 보내시어 여포를 죽이라고 하십시오. 유비가 여포를 없애고 보면 그의 형세가 몹시 외로워질 것입니다. 그런데 또 만약 일을 이루지 못하고 보면 여포가 또 반드시 유비를 죽이고 말 것이니, 이것이 곧 '이호경식계'라는 것입니다."



조조는 그의 말을 좇아, 즉시 조명을 주청하여 유비로 의성정후(宜城亭侯) 서주목을 삼고, 사자에게 또 따로이 한 통의 밀서를 주어 서주로 내려보냈다.



유비는 성밖까지 나가서 황제의 사자(使者)를 맞아들였다. 주아(州衙)로 돌아와 은명(恩命)을 배사하고, 곧 연석을 배설하여 환대하니, 석상에서 사자가 말했다.



"군후(君侯)께서 이번에 이 은명을 받으시게 된 것이 누구의 힘인 줄 아십니까. 실은 조승상께서 힘써 천거하셨기 때문입니다." 현덕이 자리에서 일어나 칭사하고 나자, 사자는 품에서 밀서를 내어 그에게 주었다. 유비는 보고 나자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며, "생각해 하오리다." 간단히 한 마디 하고는 다시 잔을 들어 술을 권했다.



이날 연석을 파하자 유비는 사자를 관역(館驛)으로 인도하여 편히 쉬게 한 후, 곧 무리들을 모아 이 일을 상의하였다.



조조가 밀서를 보내서 여포를 죽이라 하였다는 말을 듣자, 수하의 맹장 장비가 곧 나서서 한 마디 했다.



"여포로 말하면 본래 의리가 없는 놈이니 죽인들 무슨 상관이겠소." 그러자 유비가 말하였다.



"제가 형세가 궁해서 나에게 온 터에 내가 그를 죽인다면 이도 역시 의롭지 못한 일이 아니겠느냐."


"마음도 참 착하십니다. 그런 놈 죽이는 거쯤 어때서 그러십니까."



장비는 재삼 권하였으나 유비는 듣지 않았다.



이튿날 마침 여포가 찾아왔다. 유비는 곧 청하여 들이니 여포는 하례 인사를 드렸다.



"이번에 공이 조정의 은명을 받으셨단 말씀을 듣고 특별히 하례하러 왔습니다."



바로 그때 장비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청상(廳上)으로 뛰어 올라와 다짜고짜로 여포를 치려 했다. 유비는 깜짝 놀라 황망히 그의 칼 든 팔을 덥석 잡으며 소리를 가다듬어 꾸짖었다.



"이놈, 네 이게 무슨 짓이냐!"



여포는 얼떨결에 자리에서 뛰어 일어나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놀라기보다도 오히려 어찌 된 까닭을 몰라,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아아니, 장군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는 거요?"



유비는 얼른 대꾸를 하지 못하는데, 장비가 곧이곧대로 대답했다.



"조조가 너를 의리 없는 놈이라고 우리 형님더러 잡아 죽이라고 했다."



장비가 소리를 크게 지르니, 유비는



"듣기 싫다. 어서 물러가거라. 썩 나가지 못하겠느냐!"



연방 꾸짖어 물리치고,



"장군, 안으로 들어갑시다."



유비는 여포를 청하여 후당으로 들어갔다. 서로 자리를 나누어 앉자, 여포가 곧 입을 열어 물었다.



"대체 어찌 된 일이오? 조조가 뭐 공더러 나를……"



유비는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고,



"내가 말씀을 하오리다. 이번에 실은 조조가 밀서를 보내 왔는데 그 밀서에 나더러 장군을 죽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는 곧 품에서 조조의 글을 꺼내어 여포에게 보여주었다. 여포는 보고 나자 얼굴빛이 홱 변하였다. 그는 불안과 공포를 이기지 못하여,



"공은 그래 나를 죽이시려오?"



한 마디 묻는 그 목소리조차 떨려 나왔다. 유비는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장군을 죽일 마음이 있다면 이 밀서를 보이겠소."



여포는 유비의 손을 덥석 잡았다.



"이것은 조조 도적놈이 우리 두 사람을 불화하게 만들려고 낸 꾀요."



유비는 위로하였다.



"장군, 아무 염려 마시오. 조조가 이런 글을 보냈다고 내가 어찌 불의(不義)한 짓을 하겠소. 그저 나를 믿으시오."



"정말 고맙습니다."



여포는 짐짓 고마움을 표했으나, 그 뒤로부터 기회만 노리고 잇다가 끝내는 유비의 서주성을 빼앗아 버리고 말았고, 나중에는 여포도 조조에게 사로잡혀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일전쌍조(一箭雙雕):화살 한 대로 두 마리를 잡기.


 


--------------------------------------------------------------------------------

 

 


광무제 건무 5년(기원 129년)에 한나라 장수 경감이 군사를 이끌고 기의군 수령 장보를 쳐서 기의군의 40여 개 영채를 빼앗고 제남을 공점하였다.



이 때 장보는 극현을 서울로 하고 동생 장란을 파견하여 정병 2만을 거느리고 서안을 지키게 하는 한편, 여러군의 태수들로 하여금 만여 명의 군사를 모아 가지고 임치를 지키게 하였다.



두 성은 겨우 40여 리의 거리를 두고 있었다. 경감군은 두 성의 중간에 있는 화중을 점령하였다.



서안은 성이 작아도 견고하고 장란의 군대는 매우 정예하다는 것과, 임치는 크기는 하지만 여러 군의 태수와 군대가 모인 것이어서 군령이 통일되지 못하여 비교적 쉽게 빼앗을 수 있다고 영감은 생각했다.



그리하여 경감은 성동격서의 책략을 쓰기로 하고 5일 후에 서안을 공격한다고 떠들썩하게 공개하여 사람마다 모두 다 알게 하였다.



5일 후 경감은 밤중에 명령을 내려, 날이 밝을 때까지 임치성에 이르러 전력을 다해 임치를 치게 하였다.



어러 장수들이 그 연유를 몰라 물으니 경감은 이렇게 대답했다.



"서안의 수비군은 우리들이 서안을 친다는 말을 듣고 밤낮으로 준비하며 시각마다 우려하고 있는데 무슨 여유가 있어서 구원하러 오겠소. 이와는 반대로 임치의 적들은 우리가 서안을 치는 줄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르면 조금도 준비가 없어 어쩔 줄 모를 것이니, 우리는 하루도 못 걸리어 점령할 수 있소. 임치를 점령하고 보면 서안은 고립될 것이고, 또 서안과 극현도 멀리 떨어져 있어 장보도 감히 어쩌지 못할 것이오. 우리는 가히 하나를 쳐서 둘을 얻을 수 있소."



경감은 군사를 휘몰아 동쪽으로 가서 반나절도 안되어 임치를 점령하였다. 서안 수장 장란은 임치가 점령당했다는 말을 듣고 위험을 느낀 나머지 부대를 거느리고 서안에서 철수하고 말았다.


  장계취계(將計就計):상대방의 계책을 이용하여 자기의 계책을 쓴다.


 


--------------------------------------------------------------------------------

 

 


'병경백자․차조'에는 "계책이 없을 때는 적의 계책을 빌려야 한다""남의 재간을 내 재간으로 만들고 남의 계책을 이용하여 내 계책을 성공시킨다. 즉, 적의 지모를 빌리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장계취계에 대한 가장 적절한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기원 219년 조조의 부장 조인이 촉나라 장수 관우에게 번성에서 포위를 당했을 때였다.



오나라의 손권은 조조에게 사람을 보내어 은밀히 말하기를, 지금 강릉과 공?나 두 성을 쳐서 번성의 포위를 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면서, 비밀을 지켜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조조는 고의로 손권의 편지를 조인의 부하들과 성을 에워싸고 있는 관우의 부하들에게 슬그머니 공개하였다.



그러자 포위된 조조의 부대들은 사기가 크게 오르는 반면, 관우는 유예미결하게 되었다. 마침내 손권의 부대가 강릉․공안 두 성을 치자 관우는 패배하고 말았다.



손권은 조조로 하여금 관우를 붙들어 놓게 한 다음, 강릉과 공안을 빼앗으려 했는데, 조조가 손권의 계책을 미리 알고 그것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번성의 포위를 풀었던 것이다.



이 책략의 전제는 반드시 적의 기도를 완전히 파악한 기초 위에서 적의 계책 위에 자기의 계책을 이용하여 실행하는 것이다.



 

  장기취계(將機就計):기회를 이용하여 계책을 쓴다.


 


--------------------------------------------------------------------------------

 

 


장(將)은 이용한다는 뜻이고 기(機)는 기회 또는 시기를 말하며 계(計)란 계교 또는 책략을 가리키니, 장기취계란 기회를 잘 이용하여 계책을 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계책을 쓸 좋은 기회는 조금만 늦추면 사라지고 말기 때문에 추호의 유예나 망설임도 있어서는 안 된다.



삼국 시대 위나라의 조조가 남양성의 장수(張繡)를 칠 때였다. 원소(袁紹)가 군사를 일으켜 허도를 범하려고 하자 조조는 마음이 황황하여 그날로 회군할 차비를 차렸다.



첩자가 나는 듯이 이를 장수에게 알리자 장수는 곧 군사를 휘몰아 그 뒤를 쫓으려 하였다.



그러나 가후가 고개를 모으며 내저었다.



"쫓지 마십시오. 쫓았다가는 반드시 패할 것입니다."



장수가 그 말에 주저하는 빛을 보이자 다른 무리들이 권하였다.



"아니오, 쫓읍시다. 오늘 쫓지 않았다가는 영영 기회를 잃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글세……"



"아니오, 이번에 뒤를 쫓기만 하면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빨리 쫓읍시다."



장수도 한편 생각하니 이번에 쫓으면 반드시 이길 것만 같아서, 군사 만여 명을 인솔하고 곧 조조의 뒤를 쫓았다.



십여 리를 가니 조조의 후대가 저만치 보였다. 장수는 그대로 군사를 휘몰아 그 뒤를 급히 쳤다.



그러나 조조 군사의 형세가 만만치 않아 한바탕 싸움에 크게 지고, 장수는 패군을 수습하여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장수가 가후에게 말했다.



"공의 말을 듣지 않았다가 과연 이처럼 낭패를 당하였소그려."



가후는 말했다.



"곧 군사를 정돈해서 다시 한 번 쫓아가 보십시오."



"지금 마악 패하고 돌아온 길인데 또 쫓아가 보라구요? 이번에야말로 쫓아갔다가는 또 패할 것이 아니겠소?"



장수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으나, 가후는 빙그레 웃으며 장담을 했다.



"이번에는 쫓아만 가시면 반드시 크게 이기실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거든 내 머리를 베십시오."



장수는 가후가 그렇듯 장담하는 것을 보고 다시 군사를 거느리고 그 뒤를 쫓았다.



조조 군사가 과연 크게 패하여 거마치중(車馬緇重)을 길에다 어지러히 내어버리고 서로 앞을 다투어 달아났다.



당수는 분발하여 그 뒤를 더욱 급히 쫓아 대승을 거두고 돌아오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심히 의아하여 가후에게 물었다.



"처음에 우리가 정병(精兵)을 가지고 적의 퇴병(退兵)을 쫓으려 했을 때 공은 반드시 패할 것이라 했는데, 이번에는 패졸로 승병을 쫓으면 반드시 이길 것이라 하더니, 과연 두 번 다 공의 말씀과 같았소. 이것은 대체 어인 까닭입니까?"



가후가 대답했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조조 군사가 비록 황황히 돌아가기는 하지만 반드시 맹장과 정병을 뒤에 두어 추병을 방비하려 할 것이니, 우리 군사가 비록 정예하다고는 하지만 도저히 그들을 당하지는 못할 것이므로 패할 줄 알았던 것입니다. 또 이번에는 조조가 그렇듯 서둘러서 퇴병하는 것은 반드시 허도에 무슨 일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라, 이미 우리 추병을 쳐서 물리친 뒤에는 경거(輕車)로 속히 돌아가기만 꾀할 것이고 다시 아무 방비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다시 쫓기만 하면 반드시 이길 것이므로 저는 목을 걸고 이길 것을 장담한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모두들 탄복하여 마지않았다.


장수선무(長袖善舞):팔소매가 길면 춤추기 좋다.


 


--------------------------------------------------------------------------------

 

 


"팔소매가 길면 춤추기 좋고 돈이 많으면 장사하기 좋다"는 말은, 춤을 추는 사람은 팔소매에 의거하기 때문에 팔소매가 길면 나풀나풀 날려서 자태를 아름답게 연출할 수 있고, 장사를 하는 사람은 밑천에 의거하기 때문에 밑천이 많으면 그 일도 용이하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은 '사기․범수 채택전'에 인용되어 있는데, 범수와 채택은 전국 말기의 유명한 두 인물이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소위 '변사'로서 말을 잘 하였다. 전국 시대에 변사가 적지 않았지만, 어찌하여 이 두사람이 능히 왕의 신임을 얻고 재상까지 될 수 있었을까?



범수와 채택은 뛰어난 무도자에게 아름다운 춤옷이 있고 유능한 상인에게 많은 밑천이 있는 것처럼 변사인 그들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더욱 뛰어난 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치 무대에서 활약하려면 풍부한 학식과 영민한 두뇌를 구비하여야 하고, 군사 분야에서 종횡하려면 위로는 천문을 알고 아래로는 지리를 알아야 하며 밖으로는 적정을 알고 안으로는 민심을 알아야 한다.


장욕약지 필고강지(將欲弱之 必固强之):약하게 하려면 강해지게 한다.


 


--------------------------------------------------------------------------------

 

 


이것은 생금하기 위해 먼저 고의로 놓아주는 것과 비슷하다. '노자․도덕경'에 "모이려면 벌려야 하고, 약해지게 하려면 먼저 강해지게 해야 하며, 덜어 버리려면 먼저 더해주고, 빼앗으려면 먼저 주어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그 뜻은 적이 아직 강성할 때나 혹은 적의 흉악한 면모가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거나 또는 세인들이 미처 간파하지 못하였을 때는 급히 적과 맞딱뜨려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때를 기다리며 준비를 하고 적의 의지를 교만 방종하게 하면서 적이 나태하고 해이해지기를 기다려, 세인들이 더욱 똑똑히 깨닫고 우방들이 적극적으로 지지할 때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주 시대의 정장공이 언에서 공숙단을 이긴 이야기는 유명하다. 정장공은 그의 이복 동생인 공숙단이 내응외합하며 정권을 찬탈하려는 기도를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는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땅을 주어 성을 쌓게 하는 등 공숙단의 일련의 준비를 은근히 도와주면서 짐짓 모른 척하였다.



그의 어머니 강씨는 정장공을 향하며 공숙단에게 영지를 봉해줄 것을 요구하였다. 공자 여는 반대하였지만 정장공은 이를 일축하였다.



"모친이 그렇게 할 것을 희망하는데 요구를 만족시켜 드리지 않으면 편안할 수 없다."



측근에서 공숙단이 군사를 모으고 말을 사들이며 병졸을 훈련시키고 있다고 보고하면,



"공숙단이 정나라를 위하여 병마를 조련하는데, 이 어찌 수고가 많고 공로가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있으랴."



라고 하였다.



또 공숙단이 경성 부근의 작은 성을 점령하였다고 알리자 공자가 나서 정장공에게 출병하여 토벌하자고 했으나 그는 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의롭지 못한 일을 많이 하면 반드시 스스로 죽는다. 군자는 오직 기다릴 뿐이다."



마친매 공숙단과 그 어머니의 음모가 완전히 폭로된 다음에야 정장공은 비로소,



"이제 그들을 처단하지 않을 수 없다."



하고 단호하게 말하였다.



그리고는 치밀하게 준비해 두었던 대로 공숙단과 그 어머니 강씨가 거사할 때 가감한 조치를 취하여 공숙단의 탈권 음모를 좌절시켰다. 공숙단은 이국으로 쫓아 버리고 강씨는 성영에 유폐하였다.



 

장욕취지 필고예지(將欲取之 必姑豫之):가지려면 먼저 주어야 한다.


 


--------------------------------------------------------------------------------

 

 


'전국책․위책 1'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다.



"주서(周書)에 이르기를 패하게 하려면 먼저 도와주고, 가지려면 먼저 주어야 한다."



이것은 잠시 양보하면서 때를 기다리는 책략이다. '한비자․설림'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춘추 말기의 진(晋)나라에서는 조․위․한․지․범․중행 등 6개 가족의 세력이 제일 컸는데, 이를 '6경'이라 부르기도 했다. 범․중행 두 집이 겸병된 후 지백은 위나라의 선자에게 영지를 요구하였다. 위선자는 그 자리에서 거절하였다.



그러자 위선자의 모사 임장이 계책을 드려 말하였다.



"정면으로 지백의 요구를 거절하지 말고 그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는 단맛을 보고 나면 틀림없이 오만해져서 더욱 욕심이 생겨 계속 손을 내밀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른 대부들도 필경 불만을 가질 것이니 그때에 가면 각 집이 연합하여 오만 방자한 지백을 견제하게 될 텐대, 그의 목숨이 어찌 그냥 보전될 수 있겠습니까?"



위선자는 임장의 계책에 따라 일부의 땅을 떼어 지백에게 주었다. 그후 지백은 과연 조․위․한의 반격을 받고 위선자는 실지를 수복했을 뿐만 아니라 더욱 많은 땅을 나누어 가지게 되었다.



 

제복중상(制服中像):중상을 제어한다.


 


--------------------------------------------------------------------------------

 

 


만약 아무런 정신적 준비와 방위적 대비가 없을 때 모략 중상의 화살에 맞으면 후회막급이다. 그러므로 미리 그것에 대처할 준비를 하여야 한다.



진나라는 줄곧 한나라의 군사 요지인 의양을 손아귀에 넣으려고 하였다. 진왕은 이 임무를 감무에게 맡겼다. 감무로 하여금 위나라 군대와 연합하여 한나라를 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작전 지역이 여러 나라의 이익과 세력에 연계되어 있어 그 관계가 매우 복잡하였다.



진나라 대부의 권력을 쥔 자들은 많은 나라와 제각기 이해 관계가 얽혀 있었다. 그래서 감무는 자신에 대한 중상이 생길 것을 근심하였다.



진군이 공격을 개시하기 전에 감무는 휴양에서 진왕을 배알하고, 진왕이 그에 대하여 진정으로 신임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는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기로 하였다.



"이번 작전은 쉬운 일이 아닌데다 한번 출진하면 밖에서 분망할 것입니다. 권력있고 세력있는 중신들이 중도에 나서 작전을 저지시킬 수도 있고 소신까지 중상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대왕이 소신에 대한 신임이 변하지 않을까 근심됩니다."



라고 감무가 말하였다. 이 말을 들은 진왕은,



"나는 장군을 굳게 믿을 것이며, 절대로 다른 사람의 중상을 곧이듣지 않을 것이오."



라고 맹세하였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휴양지세'이다.



과연 5개월이 지나 적의 성을 아직 함락도 하지 못했는데 진나라 중신들이 모두 들고 일어나 감무를 중상하였다. 진왕은 즉시 감무를 불러들이고 공격을 중지하라고 명령하였다.



진왕의 말이 끝나자 감무가 말했다.



"대왕께서는 휴양에서 하신 맹약을 잊었습니까?"



진왕은 즉시 모든 것을 깨닫고 계속 공격하라고 하였다. 오래지 않아 의양은 곧 함락되었다.



 

조호리산(調虎離山):적을 꾀어낸다.


 


--------------------------------------------------------------------------------

 

 


'손자'는 성을 공격하는 것은 하책(下策)이라고 말하고 있다. 무턱대고 공격만 하는 작전은 스스로 실패를 불러올 뿐이다.



적이 유리한 지형을 차지하고 있는 이상, 그것을 뺏으러 들어서는 안된다. 하물며 적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고 병력도 많을 경우에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후한 말기, 우후의 군사가 진창(陳倉) 효곡에서 강족(羌族)의 저지를 받게 되었다. 더 이상 전진할 수 없게 된 우후는 구원병을 청하고 그들이 도착하면 전진을 계속하겠다는 포고문을 내걸었다.



강족은 이 기미를 알고 구원병이 오기 전에 패를 나누어 근방 고을을 습격, 재물을 약탈하게 했다.



이렇게 강족이 군사를 분산시키는 것을 본 우후는 즉시 군사를 몰아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루 백리 이상이나 전진해 갔다. 거기에 쉴 때마다 군사들에게 명하여 밥짓는 곳을 두 배로 만들어 날마다 군사가 불어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이것을 본 강족은 구원병이 온 걸로 알고 아예 공격을 포기하였고, 우후는 봉쇄를 뚫고 강족을 대파하였다.



이때 우후가 구원병의 도착을 기다렸다가 전진한다고 포고문을 낸 것은 강족을 꾀어들여 분산시켜서 재물을 약탈하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밤낮으로 군사를 강행군시킨 것은 강족으로 하여금 피곤하게 만들기 위해서였고, 또 밥 짓는 것을 두 배로 늘려간 것은 강족을 현혹시켜 구원병이 온 것으로 착각시키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좌향기리(坐享其利):앉아서 이익을 본다.


 


--------------------------------------------------------------------------------

 

 


정치․군사 등 여러 영역에서 어떤 때는 자기가 친히 나서서 크게 싸울 필요도 없이 모순을 잘 이용하기만 하면 앉아서 이익을 보는 때가 있다.



종회와 함께 두 길로 나누어 촉나라로 쳐들어간 위나라 장군 등애는 성도를 손아귀에 넣고 나자 스스로 면죽성에다 축대를 모으고 전공(戰功)을 표창하며 은근히 모반할 뜻을 품었다.



이를 알게 된 위나라 대장군 사마소는 크게 당황하여 가충과 더불어 의논했다.



"등애가 마침내 자기의 공로만 믿고 교만하여 제멋대로 행사하려 드니, 앞으로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는가?"



가충이 아뢰었다.



"명공(明公)께서는 종회를 시켜서 막아내게 하십시오."



듣고 보니 가장 근사한 방법이었다.



사마소는 마침내 가충의 의견에 따라 조서를 내려 종회를 사도(司徒)로 삼고 위관으로 양로군마(兩路軍馬)를 감독케 함으로써 종회와 함께 등애를 살피어 그 변절함을 막게 하였다.



그러나 종회도 또한 이미 마음이 굳어 있었다. 그도 이번 기회에 촉나라를 항복 받고 스스로 홀로 서기를 도모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눈엣가시가 등애였다. 등애는 일군을 거느리고 음평을 넘어 촉나라의 수도를 먼저 점령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종회는 한 계교를 꾸몄으니, 등애가 조정에 보내는 표문을 도중에 빼앗아 오도록 하여, 등애의 필법(筆法)을 교묘하게 본떠 한두 글자를 고쳐 말투를 심히 거만하게 만들고 내용만은 조금도 손을 대지 않았다.



과연 등애의 표문을 읽고 나자 사마소는 그의 교만 무례함에 크게 노하여 즉시 사람을 종회의 군전(軍前)으로 보내어 그로 하여금 등애를 거두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는 일방으로 3만 대병을 거느리고 위왕과 함께 친정(親征)의 길에 오르기로 하였다.



이를 보자, 측근이 의아하여 물었다.



"종회의 군사가 등애의 군사보다 여섯 배나 더 많아 종회로 하여금 등애의 군사를 거두게 해도 충분한데, 하필 명공께서 몸소 가실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제야 사마소는 웃으면서 한 마디 하였다.



"내 이번 걸음이 등애 한 사람 때문이 아니라, 실상은 종회를 단속하려는 것이지…"



사마소가 위왕과 함께 친정 길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자 깜짝 놀란 종회는 서둘러 참모들을 불러 등애의 군사를 거둘 의논을 하니, 한 사람이 방법을 말하였다.



"우선 감군 위간을 보내어 등애의 군사를 거두게 하여 봅시다. 등애가 위관을 죽이려 들면, 반정(反情)이 드러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때엔 장군께서 마음놓고 기병(起兵)하여 치십시오."



종회는 곧 영을 내려 위관으로 하여금 성도(成都)로 나아가 등애를 체포하게 하였다.



"조서를 받들고 등애를 거두노라!"



바람같이 등애의 부중(府中)에 나타난 위관은 무사들을 꾸짖어, 순식간에 등애를 결박하여 함거에다 실었다.



이 놀라운 광경에 부중의 장리(將吏)들은 비로소 정신이 버쩍 나서, 각기 손에 잡히는 무기를 들고 빼앗으려고 덤벼들었다. 그때 먼지가 뽀얗게 일어나며, 종회의 대병이 짓쳐오자, 겁을 먹은 무리들은 사방으로 달아나고 말았다.



나는 듯이 달려온 종회는 말에서 내려 부중으로 들어오다가, 등애가 결박을 당하여 함거에 갇혀 있음을 보자, 채찍을 들고 등애의 머리를 후리쳤다.



"이놈! 송아지나 먹이던 놈이 감히 모반을 하다니!"



종회는 욕설을 퍼붓고 다시 두어 차례 채짹으로 등애를 쳤다.



종회는 눈엣 가시였던 등애를 잡자 크게 마음이 기뻤다. 득의만면하여 큰소리로 말하였다.



"내 오늘에야 비로소 평생 소원을 풀었구나!"



이 때부터 종회는 본격적으로 모반할 일을 진행시켜 나갔다.



이러한 기미를 눈치챈 군사들이 마침내 들고일어났다. 자칫 모반에 가담했다가는 삼족이 죽음을 당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종회의 부중 밖으로는 사면에서 불길이 일어나고 군사들은 문을 깨트려 열고 아우성치며 몰려들었다.



종회는 드디어 칼을 뽑았다. 앞서 오는 군사부터 차례로 맞아, 순식간에 대여섯을 찔러 죽였다. 그러나 빗발치듯 날아오는 난전(亂箭)은 마침내 종회를 그냥 두지 않아, 그는 너무도 허황하게 거꾸러지고 말았다.



등애의 부하들은 종회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그들은 장안으로 압송 중인 등애를 데리러 길을 떠났다. 이 일을 재빨리 위관에게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다. 위관은 깜짝 놀라며 말하였다.



"내가 등애를 잡았으니, 이대로 둔다면 나야말로 목이 열 개라도 살아 남지 못하겠구나…"



옆에서 듣고 있던 호군 전속(田續)이 말했다.



"장군은 염려 마십시오. 제가 등애를 처치하겠습니다."



전속이 잠시 쉬지 않고 말을 달려 면죽성에 다다르고 보니, 마침 먼저 도착한 등애의 부하들이 그를 함거에서 나오게 하고 성도로 떠나려는 참이었다.



등애가 바라보니, 다른 군사 아니고 저희 본부병이었기 때문에 아무런 준비도 갖추지 않고 마음놓고 있다가, 군사들이 가까이 이르자 등애는 한마디 물었다.



"어인 군사들이 이렇듯 바삐 오느냐?"



전속은 아무 말 하지 않고, 갑자기 칼을 뽑아 등애의 머리를 후리쳤다. 너무나 뜻밖의 일이라 등애는 몸을 피할 겨를도 없이 어처구니없게 죽이고 말았다.



이렇게 사마소는 화근이 될 뻔했던 종회와 등애를 이간시켜 서로 싸우게 함으로써 별로 힘들이지 않고 두 사람을 모두 제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주위상계(走爲上計):도망가는 것이 상책이다.


 


--------------------------------------------------------------------------------

 

 


후퇴하여 적을 피하고 물러남으로써 기회를 보아 적을 공격한다. 이것은 정상적인 용병 법칙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적의 병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하여 이쪽에 승산이 없을 때에는 투항하거나, 강화를 맺거나, 퇴각하는 세 가지 길밖에 없다. 투항은 전면적인 실패지만, 퇴각은 실패가 아니라 승리에로의 열쇠가 될 수도 있다.



왕경칙(王敬則)은 '남제서(南齊書)'에서 "단공(檀公)의 36책, 도망치는 것이 가장 상책이다"라고 말하였는데, 여기서 비롯되어 '삼십육계 주위상계'라고 흔히 말해진다.



그러나 괜히 도망만 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 도망하게 되면 적어도 당장은 승리를 단념하고 그때까지의 모든 노력을 헛된 것으로 만들게 되므로, 싸움에서 도망간다고 하는 것은 사실 바람직하지 못한 전법이다.



예로부터 병가에서는 '도망'에 대하여 언급한 사람들이 많다.



"도망치는데 그를 쫓을 수 없는 것은 그의 행동이 민첩하기 때문이다."(孫子)



"강하면 이를 피하라."(孫子)



"이쪽은 이웃나라의 도움을 받고, 큰 나라가 도와주는 나라가 적일 때는 피하는 데 주저치 말라. 가망이 있으면 공격하고, 가망이 없으면 이를 피해야 한다."(吳子)



"이길 것 같지 않으면 빨리 도망가라. 도망갔다가 되돌아오는 것은 될 수 있는 대로 빨라야 한다."(吳子)



"병가에서 이르기를, 끌어당겼다가 피하라고 하였다. 적이 나보다 먼저 선수를 치는 것을 방비하기 위해서다."(李衛公問答)



송나라의 필재우가 금나라와 싸웠을 때, 금나라의 병력은 강대하고 송나라 군사는 불과 얼마 되지 않았었다.



그래서 필재우는 어느 날 밤 전군 후퇴를 결심했다. 깃발이나 장막 등은 그대로 고스란히 두고 미리 염소를 잡아다가 거꾸로 매달아 염소 발이 북에 닿도록 해 놓았다.



거꾸로 매달린 염소는 괴로운 나머지 발을 동동 굴리는 바람에 그것이 북에 닿자 둥둥 하고 북이 울렸다.



금나라 군사들은 밤낮없이 북소리를 듣게 되어 설마 필재우가 철수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며칠이 지나서야 겨우 눈치를 채게 되었을 때는 이미 송나라 군이 멀리 철수하고 난 뒤였다.

 

  주졸보차(?卒保車):졸을 주고 차를 보전한다.


 


--------------------------------------------------------------------------------

 

 


본래는 장기의 전술 용어이다. 이 말은 이미 사회의 여러 영역에 광범하게 응용되고 있다. 그 의미는 전반 국면의 이익을 위하여 어떤 경우에는 부분적인 이익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이에 대하여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듯하다.



예컨대 어부가 낚기 위하여 미끼를 아까워하지 않는 것이라든가 상인이 고객을 끌기 위하여 먼저 먹어 보고 사게 하는 것, 전략가가 전술상의 이유로 작전을 바꾸는 것 등이다.



조그마한 이익을 위해 목숨을 잃고 조그마한 손해를 보고 낯색이 변하는 그러한 사람들은 큰 인물이 될 수 없음은 물론, 거의 십중팔구 실패하게 마련이다.



"두 가지 손해를 서로 가늠하여 그가 배운 것을 잃는다"는 것, 즉 궁(宮)의 안전을 위하여 차나 말을 잃을 수 있고, 차를 지키기 위해서는 졸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상매괴(指桑罵槐):넌지시 경고를 발한다.


 


--------------------------------------------------------------------------------

 

 


강자가 약자를 굴복시키는 방법 중에 경고의 방법이 있다. 웬만한 강경책이면 상대의 지지를 얻을 것이고, 과감한 수단을 쓰면 상대를 굴복시킬 수 있다.



'지상매괴'란 뽕나무를 가리키며 회나무 흉을 보는, 즉 직접적으로 상대를 비판하지 않고 제삼자를 비판함으로써 자기가 뜻하는 바를 간접적으로 상대에게 전하는 방법이다.



다시 말해서 직접 본인에게 명령하는 대신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자기 의사와의 일치를 꾀하는 것이다.



거기다 전황이 긴박해지면 더욱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니, 명령을 생명으로 하는 군대에서도 여간해서는 명령이 지켜지지 않는다. 이럴 때는 명령보다도 정보가 더 효과적이다.



1905년 봉천(奉天) 회전에서는 각 군의 진격이 시원치 않아 곤경에 빠져 있던 만주군 총사령부의 다나카 참모는 각 군에 대해,



"다른 부대들은 모두 전선에서 잘 싸우고 있다."



라고 하는 거짓 정보를 유포함으로써 각 군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고 독전에 성공했던 것이다.



 

진정지곡(秦庭之哭):상대방을 감동시킨다.


 


--------------------------------------------------------------------------------

 

 


'진정지곡'의 원뜻은 진나라 조정에서 통곡한다는 것이다.



오자서와 신포서는 원래 매우 친밀한 벗이었다. 초나라의 평왕이 오자서의 부형(父兄)을 살해하자, 오자서는 오나라로 도망하여 반드시 초나라를 멸망시켜 부형의 원수를 갚을 것을 맹세하였다.



신포서는 개인적인 원한으로 나라를 배반하지 말라고 권고하였으나 오자서는 듣지 않았다.



신포서가 말했다.



"만약 자네가 꼭 초나라를 멸망시키겠다면 나는 꼭 초나라를 부흥시키겠네."



두 사람은 이 때부터 친구의 관계를 단절하였다.



후에 오자서는 오나라의 공자를 도와 정권을 탈취하고 그로 하여금 오나라의 왕이 디게 하였다. 그리고는 초나라의 내정이 혼란한 틈을 타서 오왕을 책동하여 군사를 일으켜 초나라를 쳤다.



그때 초나라의 평왕은 이미 죽고 그의 아들 소왕은 창황히 도망하였다. 오자서는 평왕의 시체를 파내어 채찍으로 300대를 때리고 눈알을 뽑아내고 귀를 뜯어내었다.



신포서는 오자서가 이렇게 잔인 무도한 짓을 하는 것을 보고 몹시 격분하여 곧 소왕을 찾아가 초나라를 회복시킬 대계를 상의하였다.



그러나 이때의 초나라는 내부의 역량이 말할 수 없이 쇠약해져 있어서 이웃나라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되었다.



신포서는 진(秦)나라에 원조를 구할 것을 주장하였는데, 초평왕의 부인은 진애공의 딸이었고 초소왕은 진애공의 외조카였기 때문에 진나라도 그저 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형편이었다.



초소왕은 신포서를 특사로 임명하여 진나라로 급히 가게 하였다. 신포서는 진애공을 보고 초나라의 위급한 상황과 오나라의 횡포를 갖추어 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나라는 본저장사(큰 멧돼지와 긴 구렁이)와도 같아 욕심이 끝이 없으므로 초나라를 멸한 뒤에는 형세가 계속 커져 중원을 도모할 것인데 그때는 진나라도 태평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 군사를 일으켜 오나라를 토벌하는 것은 초나라를 도와 그 기업을 부흥시키는 것이고 또한 진나라 자신의 안전을 위하여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진애공은 내심 싸우기를 원하지 않았기에 그저 신포서에게 듣기 좋은 말로,



"네가 길에서 수고했는데 먼저 휴식부터 하고 나서 보자."



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러자 신포서는 물러나오려 하지 않고 계속 간절히 진언하였고 진애공도 역시 듣기 좋은 말만 하다가 마지막에는 아예 상대도 하지 않았다.



그저자 신포서는 조당의 벽에 붙어 서서 소리내어 통곡하였는데, 곡성이 밤낮을 그치지 않았다. 그는 한 모금의 물도 마시지 않고 계속 통곡만 하다가 7일 만에 땅에 쓰러져서 인사불성이 되고 말았다.



진애공은 감동되어 말하기를,



"초나라에 이렇게 충성하는 애국지사가 있는데 부흥하지 못할 이유가 없거늘, 내가 어찌 도와주지 않겠는가."



라고 하면서 친히 나와 신포서의 머리를 받들고 급히 물을 먹이고 약을 써서 그를 깨게 한 다음 그를 향해 '무이'의 시를 읊어 주었다. '무이'는 진나라의 시로서, 구 중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내가 모극(茅戟)을 준비함은


그대와 함께 한 원수를 치기 위함이고


내가 갑병(甲兵)을 훈련함은


그대와 함께 거사하기 위함이네.



이것은 바로 무기를 들고 공동의 적과 함께 싸우겠다는 뜻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신포서는 진애공이 출병하기로 결정한 것을 알고 아홉 번 절하여 최대의 사의를 표하였다.



마침내 진나라에서는 양원 대장을 파견하여 전차 500승(약 4만명의 병력)과 초나라의 잔여 군사를 연합하여 단번에 오나라 군대를 연패시켰다.



오왕 합려는 그의 형제가 군사를 거느리고 기회를 타서 왕위를 찬탈하려 하였으므로 합려는 싸움을 그만두고 군대를 물리어 내란부터 막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초나라에서는 오나라에 빼앗겼던 실지를 모두 되찾았다. 초소왕은 이때부터 정치를 개량하고 현명한 인재를 중용하였기에 초나라는 차츰 강국의 지위를 회복하였다.



 

진화타겁(?火打劫):내우외환을 이용한다.


 


--------------------------------------------------------------------------------

 

 


'진화타겁'은 불 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약탈을 한다는 뜻인데, 의역하면 남의 불난 집에 들어가서 닥치는 대로 물건을 훔친다는 것, 즉 적의 위기를 틈타서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드러난 약점뿐만 아니라 적국 또는 상대방의 내면적인 허점을 꿰뚫어 볼 줄 아는 지혜도 필요하다.



초나라의 장왕(壯王)은 진(陣)나라를 공략하기 위해 첩자를 보내어 그 허실을 살펴보게 했다.



이윽고 첩자가 돌아와 보고했다.



"아직 진나라를 공격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장왕이 물었다.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성벽은 높고 해자(垓字)는 깊으며 방비는 철통과도 같습니다. 게다가 군사들이 먹을 군량과 군마들이 먹을 마초(馬草)가 산더미같이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들은 진왕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음, 그렇다면 진나라를 칠 절호의 기회는 바로 지금이군."



"그것은 무슨 연유입니까?"



"진나라에 멸망의 징조가 보이기 때문이네."



"?……"



"그래도 모르겠는가. 진나라와 같은 소국이 그토록 전쟁 준비를 했다면 필경 혹독하게 세금을 거두어들여 백성들의 원망이 비등하고 있을 걸세. 또 그 나라에서 그처럼 성벽을 높이 쌓고 물길을 깊이 팠다면 많은 백성들이 심한 노역에 시달렸을 것인즉, 그들은 모두 피로에 지쳐 마음속으로 깊이 원망하고 있지 않겠나."



과연 장왕은 군사를 일으켜 진나라를 쳐 대승을 거두었다.



 

차도살인(借刀殺人):우군을 이용한다.


 


--------------------------------------------------------------------------------

 

 


'차도살인'을 직역하면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인다는 뜻으로, 자기의 실력을 보존하기 위하여 모순을 이용하여 교묘히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 상대방을 격파하는 계략을 말한다.



삼국 시대 예형이 조조를 비방하자 조조가 공융에게 말했다.



"예형은 소인으로 예의를 모른다. 그를 죽이는 것은 참새나 쥐를 죽이는 것보다 쉽다. 그러나 그에게는 특별한 재주가 있어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으니, 그를 죽이면 틀림없이 나에게 사람을 포용하는 도량이 없다는 평판이 나게 될 것이다. 형주의 유경승은 생각이 좁고 성질이 급한 자이니, 그를 시키면 예형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조조는 즉시 예형을 강제로 말에 태워 기병 두 사람을 호위시켜 유경승에게 보냈다. 그후 과연 유경승의 부장 황조가 거만한 예형을 죽여 버리고 말았다.



 

 

차시환혼(借屍還魂):무엇이나 이용한다.


 


--------------------------------------------------------------------------------

 

 


'차시환혼'을 직역하면 주검을 빌려 영혼을 찾아온다는 뜻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나 이용을 해서 이쪽의 뜻하는 바를 실현시키는 것을 말한다.



원래의 뜻은 이미 죽은 자가 다른 형식을 빌려 나타난다는 비유이다.



조조가 회남의 원술과 싸울 때였다. 조조는 은근히 마음의 근심이 컸다. 진중에 준비한 군량은 많지 않은데 수하 장졸 17만이 날마다 소비하는 양식은 막대한 수량이었고, 모든 고을이 또 가뭄으로 말미암아 이루 뒤를 대지 못한다.



조조는 군사를 재촉하여 급히 싸우게 했으나 원술의 군사가 성문을 굳이 닫고 나오지 않았다.



조조는 손책에게 글을 보내어 양미 십만 곡을 얻어 왔다. 그러나 그것쯤으로는 각영(各營) 장졸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줄 수가 없었다.



관량관(管粮官) 임준의 부하 왕후(王?)가 들어와서 조조에게 품했다.



"군사는 많고 양식은 적으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반으로 줄여 주어, 우선 일시 급한 것이나 면하도록 하여라."



조조가 분부하니, 왕후가 난처한 얼굴로 물었다.



"반으로 줄여서 주면 군사들이 원망을 할 터인데, 그것은 또 어찌 하시겠습니까?"



"다 좋은 방법이 있으니 그저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여라."



왕후는 분부대로 각영 군사에게 1인당 열 말씩 주기로 된 쌀을 닷 말로 줄여서 분배하였다.



조조가 가만히 사람을 시켜서 각영으로 돌아다니며, 군사들이 무어라고 하나 들어보게 하였더니 돌아와서 고하되,



"모두들 승상께서 우리를 속이신다고 불평하지 않는 놈이 없습니다."



라고 한다. 조조는 고개를 끄덕이고, 가만히 왕후를 장중으로 불러들였다.



"양미를 적게 받고 지금 군사들이 모두 불평이란다. 내 네게서 물건 한가지를 빌려, 그것으로 군심(軍心)을 진정시킬까 하니, 네 부디 아끼지 말고 좀 빌려 다오."



왕후는 기이하게 생각하여 물었다.



"승상께서는 무슨 물건을 쓰시려고 하십니까?"



"아무 다른 물건이 아니라 네 머리다."



왕후는 깜짝 놀랐다.



"소인은 분부대로 거행하였을 뿐이옵지 아무 죄가 없습니다."



"나도 네게 죄가 없는 것은 안다만은, 다만 너를 죽이지 않으면 군심이 변할 것이라, 어쩔 도리가 없구나. 너 죽은 뒤에 네 처자는 내가 잘 돌보아 줄 것이니 아무 염려 말아라."



왕후가 다시 입을 열어 말을 하려 할 때,



"여봐라! 이놈을 곧 끌어내어다 참하여라."



조조는 도부수를 불러 큰소리로 호령했다.



이윽고 왕후의 목을 장대 위에 높이 매달아 놓은 다음, 방을 내어 군중에 고시하게 하였다.



'왕후가 함부로 관량을 훔쳤기로 삼가 군법으로 다스리노라.'



이를 보자 모든 군사들이 조조를 원망하는 소리가 뚝 그치게 되었다.



 

차용시의(借用猜疑):시기하고 의심하는 마음을 이용한다.


 


--------------------------------------------------------------------------------

 

 


시기심이란 아주 무서운 것이다. 그것은 마치 마른나무에 던져진 한 알의 불씨와도 같은 것이다.



'차용시의'의 책략을 운용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적절한 시기를 잡고 바람을 빌려 불을 붙여야 한다는 점이다.



조조는 한나라 때 권세를 휘두른 환관 조등의 양자인 조숭의 아들이었다. 조숭은 거금을 주고 태위(太尉:국방장관) 자리를 샀을 정도로 긁어모은 재산이 대단했다. 그런 집안에서 고생을 모르고 자라면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이 빗나가기 마련인데, 조조도 예외는 아니어서 못된 짓은 골라가며 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조조는 천품의 재치가 엿보이고 있다. 이런 일화가 있다.



하도 어른 말을 안 듣고 방탕을 일삼기에 삼촌이 늘 잔소리를 하고 자기 아버지에게 고자질을 하는 데에 앙심을 품은 조조가 한 꾀를 냈다.



어느 날 길거리에서 그 삼촌을 만나자 조조는 갑자기 얼굴을 씰룩거리며 길에 쓰러졌다.



깜짝 놀란 삼촌이 달려와 웬 일이냐고 물으니 조조가 짐짓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마 풍을 맞은 것 같아요."



삼촌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형인 조숭에게 달려가 조조의 일을 고했다.



조숭이 놀라서 급히 조조를 불러 물었다.



"네 삼촌이 네가 풍을 맞았다고 하던데 괜찮으냐?"



그러자 조조는 자못 슬픈 듯이 대답했다.



"저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삼촌이 늘 저를 미워해서 또 지어내신 말이겠지요."



이런 경우는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다. 조숭은 그 다음부터는 자기 동생이 조조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해도 믿지를 않았다.



 

 

친이리지(親而離之):친하면 이간시킨다.


 


--------------------------------------------------------------------------------

 

 


제갈량의 남만(南蠻)정벌 때, 반기를 든 옹개․고정․주포 등은 서로 상의한 후 병사를 삼로(三路)로 나누되, 고정은 중로를 맡고, 옹개는 좌로, 주포는 우로를 맡아, 각기 5,6만의 군사를 이끌고 촉군(蜀軍)과 맞싸우기로 했다.



고정은 악환으로 전부(前部) 선봉을 삼았다. 악환은 본부군을 거느리고 촉군과 싸웠으나 역불급이었다.



마침내 악환이 사로잡혀 대채로 끌려오자 제갈량은 악환의 결박을 풀어주게 한 다음, 술과 음식으로 대접하며 물었다.



"너는 누구의 부장인고?"



"고정의 부장입니다."



"내 아노니, 고정은 충의지사(忠義之士)라 공연히 옹개의 꼬임수에 넘어가 이렇게 되었도다. 내 너를 놓아주겠으니, 고정으로 하여금 속히 항복케하여, 장차 올 대화(大禍)를 면하게 하라."



악환은 너무나 의외의 말에 감격하여 절하고 사례하였다. 그는 돌아가자, 즉시 고정에게 제갈량의 덕(德)을 침이 마르도록 칭송하니, 고정 역시 감격할 뿐이었다.



이튿날 옹개가 고정의 채로 왔다. 서로 예(禮)가 끝나자 자리를 정한 후 옹개가 물었다.



"악환이 사로잡혀 갔다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어떻게 돌아올 수 있었답니까?"



고정이 대답했다.



"제갈량이 의(義)로써 놓아주더랍니다."



"흐흥! 이건 틀림없는 그놈의 반간지계(反間之計)로구려. 우리 두 사람의 사이를 이간시키려고 꾀를 쓰는 것이 틀림없소."



고정은 옹개의 말을 반은 믿고 반은 의심하였다.



그후 나흘째 되는 날, 옹개와 고정은 군사를 두 길로 나누어 촉채를 쳐들어갔다.



그러나 이미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던 촉병이 일제히 무찌르며 짓쳐나오니 옹개와 고정의 군사는 무수히 죽고, 사로잡힌 자만 하여도 그 수효를 헤아릴 수 없었다.



촉장 위연은 무수한 포로들을 대채로 끌고 와서, 옹개의 군사는 왼편에다 가두고 고정의 군사는 오른 편에다 가두었다. 이렇게 포로들을 나누어 감금한 후 위연은 군사들을 시켜서,



"고정의 군사는 살려줄 것이며, 옹개의 군사는 모조리 죽인다."



이렇게 외치게 하였다.



모든 포로들은 이 소리를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였다. 제갈량이 옹개의 군사들을 모조리 장전(帳前)으로 불러들인 후 물었다.



"너희들은 누구의 부하들이냐?"



포로들은 모두 거짓말로 둘러댔다.



"저희들은 모두 고정의 부하들입니다."



제갈량은 그들을 죽이지 말라 하고, 술과 음식으로 대접한 후, 사람까지 딸려 그들을 영채 바깥까지 전송해 주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이어서 제갈량은 고정의 군사들을 불러들여 같은 말로 물었다. 그들은 모두 의기양양하게 고정의 부하라고 대답하였다. 제갈량은 또한 그들도 죽이지 말게 하고, 술과 음식으로 대접하며 말하였다.



"오늘 옹개가 사람을 보내어 항복하겠다고 하면서, 동시에 너의 주인 고정의 머리와 주포의 머리를 바쳐 공을 세우겠다고 하였으나, 내 어이 차마 그렇게 하라고야 할 수 있겠느냐. 너희들은 다 고정의 부하라기에 돌려보내 주겠으니, 다시는 배반하지 말라. 만일 또 잡혀 온다면 그때에는 결코 용서 없으리라."



고정의 부하들은 백배사죄하면서 돌아갔다.



군사들은 본채로 돌아오자, 그 길로 고정에게 사실대로 아뢰었다. 듣고나자 고정은 심사가 불안하여, 참지 못하고 부하 한 사람을 불러,



"네 비밀히 촉군의 영채로 가서 동정을 살피고 오너라."



하고 분부하였다.



이럴 줄 미리 알고 고정의 부하를 옹개의 부하로 잘못 안 것처럼 꾸미고, 장중(帳中)으로 불러들여,



"너의 대장이 이미 고정과 주포 두 사람의 목을 바치겠다고 언약까지 해 놓고 기일을 어기느냐. 이렇듯 만사에 범연(凡然)하고서야 무슨 일을 하겠느냐!"



하고 준엄하게 꾸짖었다.



고정의 부하는 속으로 깜짝 놀랐으나, 꿀 먹은 벙어리처럼 대답 한 마디 못하고 있다가, 돌아와서 자초지장을 말하자, 고정의 손은 와들와들 떨리며, 드디어 그의 분노는 폭발하였다.



"이런 죽일 놈!"



그의 입에서 저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지금까지 나는 진심으로 제놈을 대했거늘, 제놈이 나를 죽이려 하다니, 이럴 수 있단 말인가."



그날 밤 고정은 군사를 이끌고 옹개의 진지로 짓쳐 갔다. 일은 생각보다 쉽게 되느라고 제갈량에게서 놓여 나온 옹개의 군사들은, 고정의 덕을 기리고 있었던만큼, 오히려 싸움을 도와 옹개를 잡으려고 하였다. 옹개는 혼비백산하여 말에 올라 산길로 달아났다.



바로 그때 악환이 창을 휘두르며 말을 달려 덤벼드니, 옹개는 한순간에 창에 찔려 말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고정은 양로군을 거느리고 제갈량에게 내항(內降)하며, 옹개의 목을 장하(帳下)에 바쳤다.



그러나 이 어찌된 영문인가. 제갈량은 장상(帳上)에 높이 앉아 좌우 군사에게 추상같이 호령했다.



"저놈을 밖으로 끌어내어 냉큼 목을 자르라!"



고정은 너무나 뜻밖의 일에 정신이 아찔하였다.



"소장이 승상의 대은(大恩)에 감격하여, 이제 옹개의 목을 가지고 항복하러 왔는데, 오히려 저를 죽이려 하시니,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제갈량이 소리 높여 껄껄 웃으며 말했다.



"네 누구를 속이려 하느냐. 네 감히 나를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승상은 무슨 까닭으로 제가 거짓 항복한다는 것입니까?"



제갈량은 문갑 속에서 편지 한 통을 꺼내더니 고정에게 주며 말했다.



"네 그 글을 읽고도 변명할 텐가. 주포가 비밀리 사람을 시켜 나에게 보낸 글이니 네눈이 있거든 자세히 읽어 보라. 너와 옹개는 생사를 같이하기로 맹세한 벗이라 했으니, 네 어이 하루 아침에 그의 목을 베어 올 수 있단 말이냐. 그러므로 네가 거짓 항복한다는 걸 알고 있은 지 오래다."



고성은 주포의 편지를 읽어보자 어떻게도 억울하고 분통이 터지는지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물론 이것은 제갈량이 꾸며서 만든 거짓 편지였다.



"주포가 이런 밀서를 올린 것은 참으로 반간(反間)하려는 계책입니다. 승상께서는 이런 말을 믿지 마소서."



"내 또한 한 조각 글로써 믿기도 어렵거니와 또 믿지 아니할 수도 없다. 그러니 네 만일 주포를 잡아온다면 비로소 네 말이 진심인 줄 믿을 수 있겠다."



고정은 즉시 부장 악환을 거느리고 본부병과 함께 주포의 영채로 질풍같이 달렸다.



그들이 주포의 영채에서 한 십리 가량 떨어진 곳까지 왔을 때였다. 문득 산 뒤에서 일군이 나타나며 앞장서서 말타고 오는 것은 다름아닌 바로 주포였다.



주포가 앞으로 다가오는 군사를 바라보니 바로 고정의 악환이 아닌가. 그는 멋도 모르고, 반가운 마음에서 고정을 영접하려고 황망히 말을 앞으로 달려왔다.



이때 옆으로 말고삐를 제켜 슬슬 돌아가던 악환이 문득 쏜살같이 달려들어 주포를 창으로 찔러 말 아래 거꾸러 뜨리니, 주포는 죽는 줄도 모르게 죽고 말았다.



이러고 촉채에 이르자 고정과 악환은 주포의 목을 장하에 바쳤다. 주포의 목을 내려다보던 제갈량은 한바탕 크게 웃고 나서 엄숙한 목소리로,



"내 일부러 계책으로써 너로 하여금 옹개와 주포 두 도적을 죽이게 하여 충성을 나타내게 한 것이니, 앞으로 능히 천명(天命)에 거슬림이 없도록 하라."



고정과 악환은 이번 일을 기회로 다시는 반역하지 않겠노라고 울면서 맹세하였다. 이렇듯 제갈량은 '친이리지'의 계책을 써서 힘들이지 않고 반군을 평정한 것이었다.



 

타초경사(打草驚蛇):숨어 있는 적을 찾는다.


 


--------------------------------------------------------------------------------

 

 


'타초경사'란 풀을 두들겨 뱀을 놀라게 한다는 뜻인데, 이에는 그 밖에도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그것은 뱀을 직접적인 목표로 하지 않고 뱀을 때리는 대신 그 근방의 풀을 때려서 뱀의 상황을 알려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요즘 흔히 행해지고 있는 수법과도 같이 거물의 범죄를 수사할 경우, 직접 본인을 조사하지 않고 그의 비서나 운전수 등을 추궁하는 것과도 같다.



당나라 때 당도현 지사인 왕로(王魯)라는 자는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관리였다. 어느 날 주민들이 연명으로 그의 부하들이 뇌물을 받았다고 고발해 왔다.



깜짝 놀란 그는 얼떨결에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은 풀을 쳤지만 나는 이미 뱀을 놀라게 했다."



즉, 네가 친 것은 풀뿐이지만 나로서는 풀 속에 숨어있는 뱀이 놀라듯 깜짝 놀랐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는 진짜 숨어있는 적이 누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퇴피삼사(退避三舍):열세로 우세를 이긴다.


 


--------------------------------------------------------------------------------

 

 


'퇴피삼사'에서는 물러서는 것이 소극적으로 물러서거나 피동적으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인 후퇴로서 물러서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공격할 기회를 찾고 공격할 힘을 축적하는 것이다.



위나라의 맹장 장합과 촉나라의 노장(老將) 황충이 가맹관에서 결전을 벌였을 때였다. 장합의 전세가 불리해지자 위나라에서는 한호와 하후상 두 장수를 보내어 장합을 돕게 하였다.



두 장수가 즉시로 기행(起行)하여 장합의 채중에 이르러 군정(軍情)을 물었다.



"노장 황충으로 말하면 보기 드문 영웅이니 함부로 다루기 어렵습니다."



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한호가 말했다.



"내가 장사(長沙)에 있었으니만큼, 이 늙은 도적을 잘 알고 있소. 그는 바로 우리 형님을 해친 자이니, 이번에는 내 마땅히 원수를 갚아 천추의 한을 풀까 하오."



드디어 한호는 하우상과 함께 서둘러 군사를 영솔하고 영채를 떠나 전진하였다.



한편 황충은 잠시나마 해태한 날을 그냥 보내지 않았다. 널리 사람을 퍼뜨려 근방의 지리를 정밀히 초탐케 하여 큰 길과 작은 길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도록 익혀 두었다.



측근이 황충에게 건의했다.



"이 근방에 천탕산이 있는데, 그 산상(山上)이 바로 조조의 둔량소라니, 우리가 바로 그곳을 무찔러 저들의 양초(糧草)를 끊는다면 한중(漢中)을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듣고 나자 황충은 무릎을 치며,



"그 말이 바로 내 마음과 같구려!"



한번 칭찬하고, 낮은 소리로 계책을 상의하였다.



다음날이었다. 황충은 하후상과 한호가 싸움을 돋군다 듣자, 곧 군사를 몰아 나갔다. 진전(陣前)에 섰던 한호가 황충이 나타나는 것을 보자 그대로 꾸짖었다.



"네 이놈! 의리없는 늙은 도적놈아!"



그래도 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소리를 마치지 못하고 창을 휘두르며 황충에게 달려들었다. 하후상 역시 달려나와 황충을 협공했다.



황충이 두 장수와 함께 각각 10여 합을 싸우다가 견디지 못하는 듯 패주하니, 두 장수가 놓치지 않고 20여 리나 쫓아와서, 황충을 영채를 빼앗고 말았다.



황충은 다시 새 영채를 세웠으나, 이튿날 이곳을 덮친 하후상․한호와 불과 몇 합을 싸우지 못하고 다시 패주하니, 승세한 두 장수는 다시 20여 리를 쫓아가서 그의 영채를 빼앗고, 장합을 불러 후채를 지키게 하였다.



장합이 전채로 와서 간하였다.



"황충이 이틀이나 연달아 달아나니, 필경 궤계를 꾸미는가 봅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후상이 소리를 가다듬어 꾸짖었다.



"네 이렇듯 담이 작고 겁이 많으니, 어이 싸움에 지지 않겠는가. 아무 딴말 말고 우리 둘이 입공(立功)하는 거나 구경하라."



장합은 얼굴을 붉히며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다시 두 장수가 싸움을 거니 황충이 다시 패하여 20리를 물러서자, 두 장수는 기를 쓰고 뒤를 따르고, 그 다음날은 두 장수의 깃발만 보고도 황충은 달아나기만 일삼아, 그날만도 몇 차례 싸움에 패하고 나서 관상(關上)으로 사라져 버렸다.



두 장수는 바로 근방에다 하채하고 싸움을 돋구었으나, 황충은 오직 지키기만 할 뿐 나오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즉시로 유비에게 보고되었다.



"황충이 연달아 패하고 나더니, 지금은 관상에 물러나와 겁만 먹고 있답니다."



유비가 몹시 당황하여 제갈 공명에게 물으니, 공명은 얼굴빛도 변하지 않고,



"이것은 모두 노장의 교병지계(驕兵之計)입니다."



라고 할 뿐이었다.



그러나 유비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 의자(義子) 유봉을 관상으로 보내어, 황충을 돕게 하였다.



황충은 유봉이 이르름을 보고 물었다.



"소장군(小將軍)께서는 무슨 일로 오셨소?"



"부친께서 장군이 여러 차례 패함을 들으시고, 저를 보내신 것입니다."



황충이 웃으며,



"모처럼 이 늙은 것이 교병지계를 썼더니, 염려만 끼치게 되었구려. 내 오늘밤 한번 싸워, 여러 영채를 도로 찾고, 양초마필(糧草馬匹)을 뺏으리다. 이제까지는 영채를 잠시 빌려 주어 치중을 쌓게 함이니, 오늘밤에 그것을 모두 빼앗을 것입니다."



이날 밤 이경(二更)쯤 되어서였다. 황충은 5천군을 인솔하고 관문을 열고 짓쳐 나갔다.



한편 하후상과 한호 두 장수는 연일 굳게 닫힌 관상만 바라보다가 어느덧 모두가 황퇴(荒退)해졌다. 이때에 황충이 짓쳐드니, 군사들은 갑옷을 찾아 입을 여가가 없고, 장수들은 말에다 안장을 올려 놓을 겨를이 없었다.



두 장수가 목숨을 다하여 달아나니, 군마(軍馬)는 서로 짓밟아 이 통에 죽는 자가 무수하고 아우성이 진동하였다.



새벽녘에 이르러 황충이 연달아 세 영채를 빼앗고 보니, 그 속에 버리고 간 군기(軍器)와 마필이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었다. 이리하여 황충은 대승을 거두었다.



자고로 경험이 있는 책략가는 먼저 전체 국면의 형세를 따지고 초전(初戰)의 형세로 높고 낮음을 따지지 않는다.



 

투량환주(偸梁換柱):들보를 훔치고 기둥을 바꾸기.

 


--------------------------------------------------------------------------------

 

 


투량환주(偸梁換柱):주력을 바꾼다.



'투량환주(偸梁換柱)'란 대들보를 빼어 기둥으로 바꾼다는 뜻으로, 다른 나라 군대와 합동하여 싸울 때, 몰래 그 주력을 빼내서 전투하기에 불리하게 하고, 기회를 봐서 그 병력을 내 쪽으로 끌어들이는 계략을 말한다.



이 말의 본뜻은 몰래 어떤 사물의 본질이나 내용을 바꿔쳐서 상대를 속인다는 뜻이다.



밀본 병법 '36계'의 25계로서 원문에는 "여러 번 진용을 바꾸면서 주력을 옮기다가 기회를 타서 제압하는 기술"이라고 하였다.



기원전 205년 한신(韓信)이 군사를 거느려 위왕을 칠 때 한신은 위왕이 대군을 포판에 집결시켜 놓은 것을 보고, 그는 곧 포판 서안의 임보에 전선(戰船)을 집결시키면서 임보로부터 황하를 건너 포판을 친다고 소문을 냈다.



그리고는 은밀히 주력부대를 임보 북쪽의 하양에서 나무 앵부(아가리가 작고 배가 큰 용기)를 타고 황하를 건너 위왕이 미처 손쓸 사이도 없이 들이쳐서 위왕을 사로잡아 버렸다.



'투량환주'는 사물의 내용을 고치거나 바꿈으로써 얼르고 속이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파부침주(破釜沈舟):솥을 부수고 배를 가라앉히기.


 


--------------------------------------------------------------------------------

 

 


'파부침주'의 핵심은 군사들을 죽음의 처지에 처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살아나갈 생각을 버리고 필사의 결심을 갖게 하며, 나아가서는 용맹을 다하여 싸우게 하는 것이다.



'손자병법․구지편'에는 "사지에 빠진 다음에 도리어 살아난다"고 하였는데, 군사들을 격려하여 적들과 한판 싸움을 하자는 데 있다.



한 부대가 만약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생사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능히 한 명이 열 명을 당할 수 있고 열 명이 백 명을 당할 수 있다. 바로 '오자병법․치병 제3'에서 말한 것처럼 '필사즉생(必死則生)'하는 것이다.



'사기․항우 본전'에는 "항우는 군사들을 이끌어 강을 건넌 다음 배를 몽땅 침몰시켜 버리고 밥솥과 식기들을 부수고 집을 몽땅 불살라 버린 후 3일간 먹을 양식만 남겨놓게 함으로써 군사들로 하여금 모두 죽고 한 사람도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적혀 있다.



'파부침주'는 하나의 중요한 책략이기도 하다. 그것은 지도자가 사람들의 사기를 앙양시키고 사상을 통일하며 결심을 내리게 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팔문금쇄진(八門金鎖陣)

 


--------------------------------------------------------------------------------

 

 


 1.방진 2.원진 3.분산진 4.밀집진 5.추행진


6.안행진 7.구행진 8.의진 9.화진 10.수진

이상 손빈의 십진(十陣) 10종류는 각각 진법이 용도가 다르다.


예를 들어,


1. 방진은 적을 분산시킬 때


2. 원진은 병력을 모을 때


5. 추행진은 적진을 돌파할 때


6. 안행진은 사격전을 할 때


사용하는 진법이다. 이들 진법을 종합하여 팔진(八陣)으로 편성한 것이라 하겠다.



원래 팔문금쇄진은 조조가 손자병법에서 원용하여 창안한 진법으로 그 구성이 특이하여 전문적인 안목을 갖지않고는 파악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팔문금쇄진(八門金鎖陣)에서, 팔문(八門)이란 휴(休), 생(生), 상(傷), 두(杜), 경(景), 사(死), 경(驚), 개(開) 여덟 문이다. 만약에 생문, 경문(景門), 개문으로 들어가면 길하고, 상문, 경문(驚門), 휴문으로 들어가면 상하며, 두문, 사문으로 들어가면 망한다.

폄우보중(貶沛保中):나무람을 칭찬 속에 담는다.


 


--------------------------------------------------------------------------------

 

 


중상(中傷)은 꼭 남에 대해 나쁜 말을 하는 것만은 아니다. 나쁘다는 말을 하지 않는 중상법도 있으니 소위 '나무람을 칭찬 속에 칭탁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상대방에게 죄를 짓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어떤 때는 도리어 감사를 받기까지 한다.



'한비자'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 복인과 왕자 중의 한 사람이 화목하지 못했다. 이 왕자는 생모의 지위가 비천하였기 때문에 그의 마차를 끄는 말까지도 몹시 여위었다. 그래서 복인은 곧 대왕에게 진언했다.



"그 왕자가 매우 가련합니다. 말까지도 그렇게 여위었습니다. 그에게 말먹이를 더 줄 수 없겠습니까?"



왕은 물론 이를 들어주지 않았다. 복인은 바로 그날 밤 가만히 마구간에 불을 놓았다. 왕은 그것은 틀림없이 그 왕자가 한 짓이라고 생각하고 즉시 왕자를 처벌하였다.



 

 

포전인옥(抛廛引玉):벽돌을 주고 옥을 바꾼다.


 


--------------------------------------------------------------------------------

 

 


'포전인옥'의 이야기는 당나라의 현종 개원년간의 진사 상건이 쓴 '상건집'에서 나왔다.



상건은 당대의 이름난 시인 조가의 시를 십분 앙모하였다. 그는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다. 조가가 오나라로 가서 영음사를 유람한다는 소식을 수소문하여 듣고, 자기가 먼저 가서 영음사 암벽에다 두 구절의 시를 써 놓음으로써 조가의 시흥을 불러 일으키기로 하였다.



얼마 안되어 과연 조가가 그곳으로 와서 완성되지 못한 시가 있는 것을 보고 곧 그 뒤에다 두 구절을 더 써서 한 수를 완성시켰다.



속성한 두 구절은 원래의 두 구절보다 훨씬 나았는데, 당시 사람들은 상건의 이런 작법을 "벽돌을 던져주고 옥을 바꾸어 오는 것"이라고 하였다.



'포전인옥'의 원래 목적은 자기가 아직 옳고 명확하고 훌륭한 견해가 없을 때는 먼저 의견을 발표함으로써 남들로 하여금 좋은 견해를 내놓게 유도한다는 것이다. 또는 타인의 의도와 견해를 유발하기 위하여 자기가 먼저 미끼가 되는 어떤 의견들을 내놓음으로써 자기의 목적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항장무검 의재패공(項庄舞劍 意在沛公):뜻은 딴 곳에 있다.


 


--------------------------------------------------------------------------------

 

 


'사기․항우 본기'에 나오는 말로서, 항장이 칼춤을 추는데 뜻은 패공에게 있다는 뜻이다.



기원전 206년 유방이 진나라 서울 함양을 공점하고 군사를 파견하여 함곡관을 지키고 있었다.



이와 거의 때를 같이 하여 항우가 40만 대군을 거느리고 하북을 평정한 후 서행하여 관으로 들어와 홍문에 주둔하면서 유방을 격파할 준비를 하였다.



당시 유방의 군대는 십만도 채 안되어 유방은 스스로 힘이 모자람을 자인하고 있었다.



이 때 항우의 숙부 항백은 유방의 모사 장량의 옛 친구였는데, 항백은 항우가 지금 유방을 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장량에게 알려주었다.



유방은 장량의 계책을 받아들여 장량과 함께 홍문희에 나가 항우를 만나 화해큽 뜻을 말하고 항우에 대한 충성을 표시하였다.



항우는 이를 진정으로 믿고 연회를 배설하여 유방을 환대하였다. 연회에서 항우의 모사 범증이 몇 번이나 항우에게 유방을 죽일 것을 암시하였으나 항우는 허락하지 않았다.



범증은 가만히 항장을 시켜 칼춤을 추다가 시회를 타서 유방을 죽이게 하였다. 그러자 항백도 칼을 뽑아 춤을 추며 몸으로 유방을 엄호하였다. 유방은 맹장 번쾌가 검과 방패를 들고 들어와서야 겨우 몸을 빼어 달아날 수 있었다.



이 고사에 나오는 항백처럼 어떤 목적을 위하여 겉으로는 이렇게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남모르게 달리 도모하는 바가 있을 때 이를 '항장무검 의재패공'이라고 한다.



 

 

  허실상란(虛實相亂):허위와 진실이 서로 교란하게 한다.


 


--------------------------------------------------------------------------------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만약 상대방이 처음에 거짓말을 할 경우, 듣는 사람이 그것을 눈치채었다면 그 다음의 말들은 모두 거짓말로 인정하게 된다. 반대로 상대방이 처음에 진실한 이야기를 하고 아울러 인상이 매우 깊었다면 후에 거짓말을 하여도 그것을 정말로 여기게 된다. 현대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선입위주'라고 한다. 이 원리를 원활하게 운용하면 곡 허실을 뒤섞고 거짓으로 진실을 교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기원전 4세기 진(秦)나라의 저명한 상국 감성은 바로 이 방법을 이용하여 정적을 무너뜨렸던 것이다.



진왕이 갑자기 장군 공손연을 중히 여기고 자신을 내쳐버리곤 하기 때문에 감성은 의기 소침하였고, 이에 대해 몹시 분개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람이 감성에게 진왕이 상국을 공손연으로 바꾸려 한다고 일러 주었다.



원래 진왕은 사사로이 공손연에게,



"내가 공을 상국으로 삼을까 하고 생각 중에 있소."



하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말을 감성의 부하가 훔쳐들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정보는 틀림이 없었다.



감성은 곧 진왕을 배알하여 말했다.



"대왕께서 유능한 상국을 얻게 된 것을 축하드리옵니다."



진왕은 깜짝 놀라 '이 사람이 어떻게 알았을까?'하고 생각하면서도 시치미를 떼고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요? 내가 국사를 모두 경에게 맡겼는데 또 무슨 다른 상국이 필요하단 말이오?"



진왕은 계속해서 시치미를 떼면서 넌지시 물었다.



"그런데 공은 어디서 그런 요언을 들었소?"



감성은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결정적인 모함을 하였다.



"공손연 장군이 그렇게 말하였습니다."



진왕은 입을 딱 벌리고 혀가 굳어져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진왕은 가만히 생각했다.



'공손연, 이 사람은 정말 믿지 못할 사람이구나.'



하고 분개했다.



얼마 안되어 공손연 장군은 면직되고 말았다. 진왕은 감성이 먼저 한 말이 사실에 맞으니 뒤에 한 거짓말도 진실로 여겼던 것이다.



 

현권이동(懸權而動):추를 달고 무게에 따라 움직인다.


 


--------------------------------------------------------------------------------

 

 


'현권이동'중의 '현'은 건다는 뜻이고, '권'은 저울추를 가리키니, 전체적인 의미는 물체를 계량함에 있어 먼저 저울추를 저울대에 달고 그 무게에 따라 이동한다는 뜻이다.



책략을 쓸 때 중요한 것은 행동이 경솔하지 ?고 반드시 이해를 따져 보면서 세 번 생각해 본 후에 행동하라는 것이다.



당태종 때 이충신과 마수가 칙지를 받들고 이령요를 토벌하였는데, 이충신은 첫 싸움에 패하여 흩어진 군사가 십중팔구나 되었다.



그는 싸움에 패한 후 회서로 돌아가려 했으나 이를 마수가 말렸다. 그리하여 함께 성벽을 튼튼히 하고 지키기만 하면서 기회를 기다렸다.



그후 이충신은 마수와 함께 이령요의 군대가 방심하고 있는 틈을 타서 기습을 가해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이령요는 계속 싸움에 패하여 변주로 퇴각하였다.



이를 추격한 이충신은 어느 날 밤 한 장수로 하여금 경기 수백 명을 거느리고 적진에 돌입하게 하였다. 그 소부대가 좌충우돌하며 수십 명을 베고 돌아오니, 적군은 싸우지도 못하고 붕괴되고 이령요는 황망히 도망치고 말았다.



'현권이동'의 요결은 형세를 잘 계량하고 시기에 맞게 움직이는 것이다. 마수가 실패한 후에 굳게 지키고 싸우지 않은 것이야말로 현권이동의 책략인 것이다.



 

화공의 계(火攻의 計)

 


--------------------------------------------------------------------------------

 

 <조조가 관도에서 승리한 결정적인 요인은 오소에 있는 원소군의 1만대 분량의 군량을 불태운 것으로 화공작전의 교과서적인 성공으로 군관계자들이 평가하고 있다.>


 

손무자가 쓴 병법서 <손자(孫子)> <화공편(火攻篇)>에 의하면 화공에는 다음 다섯가지의 목표가 있다고 한다.

(1) 사람을 불태운다 (병력에 손상을 준다)


(2) 적(積)을 불태운다 (물자를 불태운다)


(3) 치(輜)를 불태운다 (보급을 끊는다)


(4) 고(庫)를 불태운다 (창고를 없앤다)


(5) 대(隊)를 불태운다 (지형을 혼란케 만든다)


결국 화공은 병력수가 적거나 여러모로 군세가 약한 쪽에서 강한 상대를 일격에 궤멸시킬 수 있다는 데서 널리 사용되었다. 그리고 그 수단이 계속해서 개발되었다. 향후 화공에 대비하는 작전이 크게 요구될 것으로 전망된다.


혼수막어(混水摸魚):혼전을 틈타 쳐들어간다.


 


--------------------------------------------------------------------------------

 

 


'혼수막어'란 물을 저어서 고기를 찾는다는 뜻으로, 적이 난입하여 혼전하는 때를 이용하여 약해진 적을 섬멸하는 계략을 말한다. 본래의 뜻은 물을 저어 고기가 아무것도 보지 못하도록 해 놓고 그 틈에 고기를 잡아낸다는 뜻이다.



적의 내부에 혼란이 생기면 그때를 틈타서 쳐들어가 힘이 빠지고 갈팡질팡하는 자들을 이쪽으로 끌어들인다. 이것은 흡사 방이 되어 어두워지면 사람들이 집안으로 들어가 휴식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병법의 요결은 집단을 이끌어 승리를 획득하는 것이며 '손자'가 주장하듯이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을 최상으로 삼는다.



삼국 시대 조조는 나중에 서로 적이 되어 싸웠지만 어릴 적에는 명문 자제인 원소(袁紹)와 한 패가 되어 방탕한 생활을 했었다.



어느 날 이웃 동네에서 결혼식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둘이 짜고 신부를 겁탈하기 위해 몰래 신부집에 침입했다. 밤이 되는 것을 기다려 느닷없이 소리를 질렀다.



"도둑이야!"



온 식구들이 깜짝 놀라 우왕좌왕하는 틈에 신부방에 들어가 칼을 들이대고 신부를 납치했다. 그런데 도망치다가 원소가 잘못해서 탱자나무숲에 빠져 움직이지를 못한다.



이런 경우, 보통 사람 같으면 혼자 도망을 하거나, 아니면 친구를 구하려다 함께 붙들리게 마련인데, 조조는 그러지를 않았다. 그는 느닷없이,



"도둑이 여기 있다!"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 소리에 그만 정신이 번쩍 든 원소가 살이 찢어지는 것도 돌볼 겨를이 없이 젖먹던 힘을 다해 숲을 빠져나와 함께 도망쳤다. 이 일화는 후한 말에서 진(晋) 초에 이름을 날린 명사들의 언행을 기록한 '세설신어(世說新語)'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후발제인(後發制人):후에 손을 써서 상대를 제압한다.


 


--------------------------------------------------------------------------------

 

 


'백전기법'에는 "무릇 싸움이란 적들의 대열과 진이 정연하고 예기가 있으면 싸우지 말고 굳게 지켜야 한다. 오래 진을 치고 있으면 예기가 쇠하는데 그때 일어나 치면 못 이기는 법이 없다. 후에 손을 쓰는 것은 상대방이 쇠약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고 하였다.



역사상 현원 시대의 판천 싸움에서 현원씨가 쓴 것이 바로 후발제인의 전략이다. 당시 현원씨족은 유목 경제로부터 농업 경제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



그들은 유목 생활의 습관이 있어 행동이 영활하였고, 멀리 싸우러 가도 그저 소와 양만 몰고 가면 곧 양식 공급을 할 수 있어 후방 병참에 대한 근심이 없었다.



이들과 맞선 것은 유강(신농씨족의 28대 황제)이 영솔하는 씨족이었는데, 오직 농경 생활에만 습관되어 병마가 움직이기 전에 양초가 앞서 나가야 하며, 일단 곡식을 심지 않는 목축구의 황야에 진입하면 후방 공급이 단절되었다.



적들에게서 양식을 해결하려 해도 황야에는 빼앗을 것도 없이 주동을 잃고 말게 되는 것이었다.



현원씨는 웅재 대략이 있었기 때문에 적들의 이러한 약점을 이용하여 기동성있게 후퇴하는 전술을 쓰기로 했다.



그는 하남에서 싸우고 다시 하북에서 싸우다가 마지막에는 판천의 번판까지 퇴각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지형과 위치가 자기에게 유리하고 적에게 불리한 곳에서 결전을 벌여 일거에 승리를 쟁취했던 것이다.

출처 : 내 인생을 컨설팅하라
글쓴이 : 박지연 원글보기
메모 :

'사자성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易 地 思 之 (역지사지)  (0) 2006.05.08
反 哺 之 孝 (반포지효)  (0) 2006.05.08
結 草 報 恩 (결초보은)  (0) 2006.04.29
言 行 一 致 (언행일치)  (0) 2006.04.29
群 鷄 一 鶴 (군계일학)  (0) 2006.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