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자료

유럽의 극우주의

늠내 화랑 2011. 12. 19. 08:12

유럽의 극우주의

 

흑인만 조준 사격… 극우 망령에 떠는 유럽 동아일보|| 2011.12.15

 

 경제위기로 우울한 연말을 맞고 있는 유럽에서 총격사건이 잇달아 유럽인들을 더욱 침울하게 하고 있다.

13일 이탈리아 피렌체의 달마치아 광장에서 극우주의자 잔루카 카세리(50)가 세네갈 출신 흑인 노점상들에게 총을 쏴 2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카세리는 매그넘 리볼버 권총으로 흑인만 조준 사격했다.

 놀란 시민들이 대피하는 사이 광장 옆에 세워둔 차를 타고 유유히 사라진 카세리는 잠시 후 인근의 산로렌초 광장에 나타나 또 다른 세네갈 흑인 노점상들에게 총을 쐈다. 이곳에서 2명을 더 다치게 한 카세리는 범행 후 광장 인근 시장의 지하 주차장에 숨어 있다 경찰이 접근하자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쏴 자살했다.

 

 조사 결과 카세리는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극우단체 '카사파운드(Casa Pound)' 소속으로 극우 인종차별주의 단체에서 주최한 시위에 여러 차례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마테오 렌치 피렌체 시장은 "범인은 머리가 빈 미친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난했고, 조르조 나폴리타노 이탈리아 대통령도 "무조건적인 증오의 폭발이자 야만적인 범죄 행위"라고 말했다.

 

 사건 직후 피렌체에 거주하는 세네갈 출신 이민자 수백 명은 달마치아 광장에서 인종 차별 범죄를 비판하는 시위를 벌이며 "세네갈"을 외쳤다. 이탈리아 피렌체와 로마 등 주요 관광도시에는 세네갈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길거리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장신구, 손수건, 지갑, 핸드백, 혁대 등을 팔며 생계를 잇고 있다.

 

 이번 사건은 최근 유럽 각국에서 경제 위기로 일자리가 줄어들자 아프리카 출신 노동자들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극우 정당과 인종 차별주의가 더욱 기세를 부리는 상황에서 터져 나왔다. 5개월 전 노르웨이에서 무차별 총격으로 77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도 극우주의자였다.

 독일에서도 신나치를 표방하는 '국가사회주의 지하조직'이 2000∼2006년 터키인 8명 등 10명을 살해하고 2건의 폭파 사건을 일으킨 사실이 지난달 드러났다.

 

 또 네덜란드에서는 극우정당으로 사실상 연립정부에 참여하고 있는 자유당이 유로화 이전의 자국 화폐인 길더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며 국민투표를 제안하고 나섰다. 프랑스에서는 국민전선(FN) 대선후보 마린 르펜이 유로존 탈퇴와 프랑화의 재도입을 주요 선거 공약으로 내세우며 민족주의를 부채질하고 있다. 실뱅 크레퐁 파리10대학 교수는 "경제위기가 전 유럽을 강타하면서 극우 세력의 주장이 지지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벨기에 동남부 리에주 시내 중심 생랑베르 광장에서도 13일 총기 소지 전과자 노르딘 암라니(33)가 벌인 무차별 살상극으로 5명이 숨지고 123명이 다쳤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낮 12시 30분경 생랑베르 광장의 버스정류장에서 서 있던 암라니가 갑자기 배낭에서 수류탄 3발을 꺼내 시민들에게 던진 뒤 칼라시니코프 AK47 소총을 난사했다. 사건 직후 암라니는 인근 다리 위에서 권총으로 머리를 쏴 자살했다.

 

 

[유럽을 다시 보다] 극우주의 테러 그후 노르웨이… 광기가 할퀸 우토야섬 ‘관용의 장미’는 활짝 | 2011-12-08

 

 섬은 최근까지 일반에 개방되지 않았다. 끔찍한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달 17일 슬픔을 간직한 노르웨이 우토야섬(Utoya)을 찾았다.

이곳에서 지난 7월 22일 극우주의 노르웨이인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비크의 총기 난사로 무려 69명이 희생됐다. 이슬람 혐오주의자이며 다문화주의 정책에 반감을 가진 브레이비크는 노동당 캠프에 모인 청소년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을 쏘았다. 노동당이 다문화주의를 지지한다는 이유에서다.

 

 한 창고 밖에는 그날의 스케줄이 붙어 있다. ‘18시 축구, 22시30분 디스코.’ ‘15:30∼16:30 강연이 있으니 모일 것’ 여름 캠프의 간식 텐트인 ‘우토야 와플’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주변에 있던 피크닉 테이블은 모두 접혀져 야외 창고로 들어갔다. 그러나 아이들은 축구도 디스코도 할 수 없었다. 브레이비크가 섬에 발을 내딛은 순간, 섬은 더 이상 파라다이스가 아니었다.

 

 브레이비크는 섬에서 무려 70분을 활보하며 총을 쏘았고, 캠프에 참여했던 아이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건물 안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거나 야외 텐트 속에 숨어 있던 아이들은 피해가 적었고, 나무나 바위에 숨었던 아이들이 주로 희생됐다.

 

 고무보트를 운전해준 마그너스 한센은 “당시 사건을 듣고 너무 충격을 받았다. 막상 섬에 와보니 놀라울 정도로 평범하고 평화롭다”고 말했다. 그는 “테러 이후 오슬로 분위기가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다”며 “사람들은 차분해졌고 다시 평화를 찾았다”고 덧붙였다.

 

 섬이 개방된 뒤에도 찾는 이는 별로 없다. 선착장에서 배를 빌려주는 우트비카 캠핑의 아콘토 인베탈링은 “보통 하루 5명 정도가 섬에 들어간다. 대부분 희생자 가족들”이라고 전했다.

잔혹한 사건에 분노하기보다 차분하게 대처한 옌스 스톨텐베르그 총리는 사건 이후 지지율이 올랐다. 노르웨이는 우토야섬을 평화의 상징으로 재건할 예정이다. 섬에 추모비가 세워지고, 캠핑장과 축구장 농구코트가 만들어질 것이다.

 

 브레이비크의 폭탄 테러로 같은 날 8명이 희생된 오슬로 정부종합청사 주변에는 노란 가림막이 쳐져 있었다. 직원들은 다른 건물로 옮겨갔고 폭탄이 터진 건물은 복구 중이다. 청사 주변에서 만난 오슬로 시민들은 “그냥 정신 나간 한 테러범의 소행일 뿐 대다수의 노르웨이인은 다문화주의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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