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주몽에 나오는 해모수

늠내 화랑 2006. 5. 24. 17:46

     

고조선은 한족에게 멸망당하지 않았다

 

 

               <주몽에서 해모수 역을 맡은 허준호>

주몽 첫회를 기대하면서 보았는데 처음부터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상고시대 최고의 전성기였던 고조선 즉 단군조선 시대가 망운으로 들어서는 과정을 그리면서 한나라에 의해서 고조선이 멸망을 시키고 한사군을 설치했고 한나라는 철기군으로 막강하고 부여 등은 마을 부족 족장을 면치 못하게 그려놓고 있다. 특히 철기군이  부여의 왕을 내려다보며 명령하는 듯한 장면은  정말 드라마의 수준을 의심케 한다.

역사의 뿌리를 제대로 알아야 대한민국이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본다.우리 민족의 역사를 바로 알려면 개벽실제상황(대원출판) 책을 꼭 정독해보기를 바란다


이 책에 고조선의 멸망에 관한 부분을 조금만 발췌한다.

(.... 생략...)

한편 고조선의 멸망을 바로 앞둔 BCE 239년 해모수가 북부여를 일으켜 고조선의 국통을 계승하였으며 그후 BCE 194년에는 번조선 준왕이 거짓으로 항복하고 들어온 한족 위만에게 나라를 찬탈당하게 된다.
 

여기서 또 필자는 지금의 혼빠진 역사학계를 탄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의 사가들은 마치 준왕이 고조선의 마지막 왕인 것처럼 가르치고 있다. 고조선이 한족에게 멸망당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진실은 무엇인가?

 

(古)조선

삼한

수도

관할지역

단군조선

진한(辰韓)

송화강 아사달

압록강 이북, 요하 이동의 만주땅
(단군이 직접 관할)

막조선

마한(馬韓)

평양

압록강 이남의 한반도, 제주도 대마도

번조선

번한(番韓)

하북성

요하의 서쪽에서 하북, 산동, 산서, 강소에 이르는 중국 대륙



준왕은 고조선의 서쪽 날개였던 번조선의 부단군이었을 뿐이다. 더욱이 진조선의 마지막 제왕인 고열가 단군이 장수들의 거듭된 환란 속에서 퇴위하여 고조선 본조 시대가 마감된 것은 찬적 위만이 번조선을 점거하기 44년전에 일어난 사건이다. 특히 고열가 단군 시절 중국은 춘추전국시대, 전국시대의 혼란기에 처해있었다. 사실이 그러할진대 당시 한족이 고조선을 위협한다거나 고조선을 찬탈할 여력이 어디 있었겟는가!! 요컨대 단군조선은 지금의 강단사학이 주장하는 것처럼 중국 한족의 위세에 눌려 망한 것이 아니다. 병권을 셋으로 나누어 삼조선이 독자적으로 나라를 경영하게 됨에 따라 국력의 구심점이 없어져서 내란에 스스로 멸망한 것이다.

 
<삼한관경제로 나라를 다스린 고조선 삼한은 이후에 삼조선으로 개편된다 >


고조선은 원래 신교의 제사장인 단군왕검이 삼신일체의 원리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던 신정국가였다. 따라서
삼한제도의 쇠퇴는 곧 종교의식의 약화에 따른 신교문화의 붕괴과정으로 보아야 하며 그 첫 번째 과정이 바로 삼한(진한,번한,마한)에서 삼조선(진조선,번조선,막조선)으로 개편된 것이다.

요컨대 고조선은 47대 단군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실존국가라는 것. 삼한 관경제로 국경만 셋으로 나누어 대단군이 병권을 장악하고 전체를 다스렸다는 것. 그리고 수도를 송화강의 아사달-> 백악관 아사달-> 장당경으로 세 번 옮기면서 고조선 말기에 나라 이름을 대부여로 바꾸었다는 것 이것이 신교문화의 정통사서가 전하는 고조선의 참모습이다.

 

따라서 고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바르게 알려면 무엇보다 47대 단군들에 대한 기록을 역사적 사실로 인식해야한다.


 개벽실제상황 2부 대한의문 218p~222p

주몽] 해모수 북부여 시조 이다...





  

  

               <주몽에서 해모수 역을 맡은 허준호>


MBC에서 철저한 역사고증을 하고 주몽을 만들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모수의 아들이 주몽이 되는지..

[북부여기 상]에 보면 해모수가 북부여를 건국한 해가 BCE 239년이고 북부여 5대 고무서 단군때 자손중 아들이 없어서 딸 소서노를 고주몽과
결혼시키는데, 그후 고주몽이 BCE 58년에 고구려를 건국합니다.
무려 200여년이나 차이가 납니다 ...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데 우리국민 중 역사를 제대로 아는분이 몇분이나 계실까요..

역사를 제대로 후손 에게 가르쳐주는 것또한 우리들이 해야할 일이 아닐까요..

다음은  북부여 건국에 관한 내용을 소개 합니다 .



 고조선 말기 여러 제후국들이 독립 세력으로 등장했던 이 시대를 ‘열국시대’라 일컫는데, 가장 강한 나라가 고조선 왕실을 계승한 패자(영도국)로 군림했는데, 맨 처음 패자로 등장한 나라가 북부여였다.
 
 북부여는 BC 239년에 ‘해모수’에 의해 건국되었다. 해모수는 BC 195년까지 통치를 했으며, 북부여는 BC 58년에 고구려가 건국될 때까지 6명의 단군이 재위를 했다.
 
 해모수는 중국의 진시황과 동시대인데, 당시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은 것은 흉노 뿐 아니라 북부여를 막기 위해서였다. 즉 만리장성 동쪽은 전부 우리 동방민족의 세력권이었던 것이다.
 
 북부여의 여섯 번째 단군인 고무서 단군에게는 아들이 없고 ‘소서노’라는 딸이 있었다. 소서노와 결혼 사람이 바로 고구려를 건국한 고주몽성제다.
 
 고주몽성제는 북부여를 계승해 오다가 BC 37년 ‘고구려’라고 국호를 바꾼다. 『삼국사기』에 보면 고구려 건국이 BC 37년, 백제는 BC18년, 신라는 BC 57년이라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본래 고구려 건국은 BC 58년이며 처음에는 ‘다물’이라는 연호를 썼다. 그런데 BC 37년에 국호를 ‘고구려’로 바꾸고 ‘평락’ 이라는 연호를 쓰게 되면서 이때부터를 고구려 건국으로 잡은 것이다.
 
 열국시대를 지나 사국시대로 넘어가는데, 부여, 옥저, 동예는 고구려에 귀속되고, 남삼한 중 마한은 백제에, 진한은 신라에, 번한은 후에 가락국(가야)에 귀속된다. 그리하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사국시대(삼국시대가 아님)가 열려 중국의 전국시대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게 된다.


  

개벽실제상황 2부 대한의 문 22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