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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멸종 알고보면 흔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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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진화를 둘러싼 정설은 인류 진화가 한 인류와 다음 인류가 이어달리기처럼
이어지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2003년 9월 인도네시아 동쪽 작음 섬 플로레스에서 발견된 1만 2천년 전 유골은 이런 정설을
뒤짚었다.
당시 발견된 유골은 키가 1m도 안되고 뇌의 부피는 400cc 정도에 불과한 화석 인류. 영화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호빗`이란
애칭이 붙은 인류가 바로 그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존재했던 시기는 인류의 조상으로 알려진 `호모 사피엔스`와 똑같은 2만
5천년전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은 `NGC 특별기획-최후의 승자 진화의 비밀`을 20일 밤 8시에 방영한다.
제작진은
당시 인류가 수평적 진화를 통해 생존 경쟁을 했다는 가설을 고증해 나갈 예정이다. 그 과정에서 오늘날 인류가 고대 아프리카와 유럽, 인도네시아를
누비며 수 백만년 동안 생존한 이유를 밝힌다.
결국 그 과정을 통해 몇
백 만년 전엔 현재 인류 뿐만 아니라 수많은 인류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인류의 역사는 수많은 인류의 경쟁을 통해서 이뤄졌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인류가 멸종되고 사라졌다.
직립 원인의 시초인
`호모 에렉투스`는 당시 최소 두 종류의 직립 원인과 같이 생활했다. 표범의 먹이를 훔쳐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라 불리던 `핸디맨`과
`넛크래커`가 바로 그들. `호모 에렉투스`는 이들 경쟁자들을 불과 무기로 따돌리며 환경을 지배한다.
`호모 에렉투스` 이후엔
또다른 인간이 나타났다. 평균 신장이 193cm가 넘어 `골리앗`이라 명명된 고대 인류. 70만년 전 나타난 이들 인류는 창을 사용했다는 증거가
발견된다고. 물론 이들은 현재 인류의 직계들과 경쟁했던 인류들이다.
NGC 특별기획은 `인간의 진화는 적자 생존의 게임이었다`는
`리 버거`의 말을 빌려 결론을 내린다. 즉 다양한 고대 인류는 서로 경쟁 관계에서 살아 남으려 애썼고, 결국 최후로 남게 된 현인류는 독특한
기술, 성, 언어, 그리고 행운을 가지고 지금까지 현존하게 됐다는 것.
한편 이 다큐멘터리는 에미상 수상 경력의 NGT&F의
존 브래다가 감독을 맡았다.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 인터내셔널은 2005년 4월 5일 방영했다.
다음은 `호빗`(학명 플로레시엔시스)의
존재를 발견한 호주의 과학자이자 지질학자인 `버트 로버츠` 교수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Q: ‘플로레시엔시스’를 언제 처음 발굴했고,
이번 작업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 됐습니까?
뼈 일부가 1만 8천년 만에 처음 발견된 때는 2003년 9월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또 다른 6명의 흔적을 찾아냈습니다. 이 중엔 2001년, 2002년의 동굴 발굴 작업 중에 처음 발견된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인간 형태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정도가 되지 못했습니다.
Q: 이번 발견의 가장 흥미로운 측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주 오래된 난쟁이 인간의 역사라고 할 수 있겠죠. 멸종된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해부학적 연구로 볼 때
2백만 년 전에 아시아 서쪽에 살았던 ‘호모 에렉투스’와 3백만년 전에 아프리카에서만 살았던 ‘오스트랄피테쿠스’계의 ‘루시’와 동시대에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난쟁이 인간의 마지막 흔적은 지구 반대쪽 끝인 동남아시아에서 발견됐습니다. 그 곳에서 충적세가 시작될
무렵까지 살았던 것입니다. 약 만년 전의 일이죠.
Q: “NGC 특별기획”<최후의 승자:진화의 비밀>에서 “이 한 개의
뼈로 우리가 알고 있었던 인류의 역사가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하셨는데요, 더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우리는 지금까지
지구는 약 3만년 전부터 현대 인간의 시초인 ‘호모 사피엔스’ 만이 살고 있었다고 배워왔습니다. 서유럽의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했을 때부터 말이죠.
그러나 ‘플로렌시엔시스’의 발견이 그것이 틀렸음을 말해줍니다. 인간의 역사를 통틀어
볼 때 우리는 최소한 하나 이상의 다른 형태의 인간과 공존해왔던 것이죠. 그리고 오늘날 우리만이 살아
남았다는 사실은 예외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다르게 믿어왔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우리는 진화 역사의 한 부분에 불과한
것입니다. 인간 형태의 멸종은 빈번했고,
‘호모 사피엔스’ 중에서도 같은 현상이 발생했던 것입니다. 난쟁이 인간이 바로 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어떻게 돌연변이가
아닌 인간의 형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몇몇 회의론자들은 발굴된 뼈는 병리학적으로 오늘날 인간 형태와 동일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들은 소두증(머리가 작고 키가 작은 현상)을 갖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먼저 우리는 최소
7명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뼈를 발견 했습니다. 때문에 이들 모두가 똑 같은 증세를 겪고 있었다고 단정짓기는 어렵습니다. 둘째로 원형 그대로
발굴된 두개의 하악골은 ‘호모 사피엔스’ 보다
‘오스트랄로피테구스’나 ‘호모 레렉투스’와 더 비슷한 모양을 갖고 있었습니다. 난쟁이 인간의 어금니가 많은 턱은 병리학적으로도 오늘날의 인간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셋째로 골격 구조상의 특성을 볼 때 회의론적 주장은 더욱 신빙성을 잃습니다. 그 예로 난쟁이 인간의 골반은
‘호모 사피엔스’보다 훨씬 넓고 팔도 깁니다. 이러한 증상은 소두증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Q: 난쟁이 인간 외에 또 다른 발견이
있었나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정교한 석조 도구들이었습니다. 사냥을 위해 만들어진 도구들도 있었습니다. 불을 사용했던 흔적과
먹이로 잡은 코모도 왕도마뱀이나 피그미 스테고돈의 흔적들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찾은 것은 당나귀 사이즈 정도로 축소된 작은 코끼리 였습니다. 무게가 500킬로그램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오늘날 3세
정도의 아기 사이즈 밖에 되지 않았던 이들에게는 여전히 무서운 존재였을 것입니다.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는 아마도 무리를 지어서 사냥을 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때문에 언어와 의사소통 능력도 발달됐을 것입니다.
Q: 이 인간이 오늘날의 인간 형태와 대면했던 적이
있었을까요?
북서쪽의 보르네오(니아 동굴)와 동남쪽 오스트레일리아(문고
호수)에서 발견된 뼈가 ‘호모 사피엔스’가 동남아시아 지역에 최소 4만 년 전부터 살았음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호모 플로렌시엔시스’가 멸종되기
2만 년 전의 시간이죠. 그러나 플로레스 섬의 리앙부아 지역에서 발견된
‘호모 사피엔스’의 최초의 흔적은 1만1천년 전입니다. 플로레스의 화산이 난쟁이를 덮은 지층 바로 위에서 발굴되었습니다. 두 인종이 공존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의 뼈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지 못한다면 ‘호모 사피엔스’는 난쟁이가 멸종될 때까지 그 섬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혹은 우리의 조상들이 섬 지역의 풍토병이나 말라리아 때문이었다고 가정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
‘플로렌시엔시스’는 면역성이 있었습니다.
Q: 다음 연구는 어떤 것입니까. 또 다른 발굴 작업을 하실 계획인가요?
당연히 더 많은 발굴 작업이 필요합니다. 플로레스 섬에 있는 난쟁이 인간과 공존했던 ‘호모 사피엔스’의 흔적을 찾을 계획입니다.
또한 인도네시아의 다른 외딴 섬들도 탐험할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도 인간이 또 다른 모습으로 진화 했을 가능성(난쟁이의 예처럼)도 있습니다.
롬복, 숨바와(모두 플로레스로 가는 길목에 있는 섬이다), 숨바, 술라웨지 섬들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 섬들이 또 다른 형태의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서식지였을 수도 있습니다. 이 것이 저희가 향후 몇 년 간 계획하고 있는 것들입니다.[TV리포트 김대홍 기자] paranthink@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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