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하늘의 아들, 천자가 다스리는 나라
늠내 화랑
2006. 8. 5. 00:47
하늘의 아들, 천자가 다스리는 나라
- 천자란?
그러면 천자국에 대하여 살펴보자.
“시두손님인데 천자국이라야 이 신명이 들어오느니라.”
하늘에서 시두를 몰고 오는 신명이 내려오는데, 천자국이라야 이 시두손님이 들어온다는 말씀이다.
천자란 무엇인가?
천자는 ‘천제지자(天帝之子)’의 약자로 ‘하나님의 아들’, ‘우주의 주재자이자 천상의 통치자[天帝]이신 상제님의 아들’을 칭하는 말이다. 예로부터 천자가 다스리는 나라를 천자국이라 불러왔다.
고구려의 창업 시조 고주몽이 동부여에서 탈출하여 엄리대수(淹利大水 ; 지금의 송화강)에 다다랐다. 앞은 강물에 막히고, 뒤에서는 동부여의 군사들이 쫓아오는 절박한 상황이다. 이 때 주몽이 강의 수신(水神)에게 이렇게 외친다.
“아시천제지자(我是天帝之子)!”
‘나는 천제의 아들이다! 나는 하늘 하나님, 상제님의 아들이다! 나는 천자다!’라는 말이다. ‘천제지자’, 즉 ‘천제의 아들’이라는 말을 줄여서 ‘천자’라고 하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신의 아들(Son of God)’이라고 하는데, 이 ‘하나님의 아들’ 문화가 기독교에도 있다. 그들은 수도 없이 ‘주님’을 찾다가 천상으로 올라간다. ‘주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이 주님을 보내셨다는 것이다. 주(主) 사상, 그 문화의 원 뿌리가 동방 조선의 천자사상이다.
또 신교(神敎)를 신앙했던 동방문화에서 천자는 ‘국가의 통치자’를 의미했다. 천자는 인간세계를 대표하여 하늘(상제님)에 제사를 올렸다.
- 천자문화의 본향, 조선
천자문화의 원 고향은 어디일까?
천자라는 말은 중국 한족이 먼저 쓴 게 아니다. 우리 동방 한민족이 먼저 썼다. 그 사실이 중국 사람의 기록에 있다. 후한시대의 채옹(蔡邕)은 『독단(獨斷)』에서 천자제도의 근원에 대해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천자는 동이족 임금의 호칭이다. 하늘을 아버지, 땅을 어머니로 섬기는 까닭에 하늘의 아들이라 한다(天子, 夷狄之所稱, 父天母地故, 稱天子).”
중국인들은 주변의 다른 민족에 대해 ‘동이서융남만북적(東夷西戎南蠻北狄)’이라 하여 오랑캐로 불렀다. 우리 민족을 가리켜 동방의 큰 활을 멘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동이족이라고 했다. 중국 중심의 천하사상(중화사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아들, 제왕을 부르는 ‘천자’라는 호칭은 동방사람이 먼저 썼다고 밝혀 놓았다.
이 내용을 보면 천자는 부천모지, 하늘을 아버지로 삼고 땅을 어머니로 삼았다. 천자는 천지(天地)의 아들이다. 하늘땅 천지부모의 아들인데, 이것을 하늘로 상징해서 하늘의 아들, 천자라고 했다. 천자는 본래 천지의 아들인 것이다.
- 천자에 대한 예(禮)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천자국임을 입증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고대 역사를 살펴보면 주변의 제후들이 천자에게 예를 올린 사건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4,300년 전, 요임금으로부터 정통을 물려받은 순임금이 태산에 올라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고 ‘동방의 천자’를 찾아가 조근(朝覲)하는 예를 올렸다. 이 내용이 『서경』에 “동순망질 사근동후(東巡望秩 肆覲東后)”라고 기록되어 있다.
동순망질(東巡望秩), 동쪽으로 순행하여 산천에 제를 지내고 사근동후(肆覲東后), 동방의 임금님을 알현했다. ‘사근동후’에서 ‘근(覲)’은 『강희자전』에 ‘하현상(下見上)’, 즉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뵙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근친(覲親)가다, 조근(朝覲)한다고 할 때의 근 자로 ‘제후가 천자를 뵙는다’는 뜻이다.
왜 순임금은 하나님께 제를 올리고 나서 동방의 천자를 찾아뵈었을까? 이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 동방 고대문화와 역사의 비밀이 다 들어있다. 순은 “제가 이제 천하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하고 천지의 주인이신 상제님께 고하고 나서, 자기들을 다스리시는 동방의 천자님을 찾아뵙고 예를 올린 것이다.
여기서 순임금이 알현한 ‘동후(東后)’는 단군성조님을 말한다. 사근동후란 고조선의 제후 순이 동방의 천자인 단군왕검을 찾아뵈었다는 뜻인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 ‘후’ 자를 제후 후(侯) 자로 해석을 하여 ‘가서 동방제후를 만났다’고 왜곡해 놓았다. 그러나 분명히 제후 후 자가 아니고 임금님 후(后) 자가 아닌가.
- 조선의 천자문화가 어떻게 중국으로 넘어갔을까?
그러면 조선의 천자문화가 어떻게 중국으로 넘어갔을까?
앞의 기록으로 보면 순임금은 동방 천자로부터 임명받은, 천자의 영향력 하에 살던 제후였다. 그런데 4,300년 전인 고조선 초기, 요임금 말엽부터 순임금 때까지 동북아 지역에 9년 홍수가 일어나 중국 일대가 물바다가 되었다. 이때 요임금이 치수관인 곤에게 물을 다스리라고 하였으나 곤은 실패했다. 곤은 훗날 하(夏)나라를 연 우(禹)임금의 아버지다. 옛날에는 역사를 기록하는 일이나 치수하는 일 등을 가가계승했다. 그래서 우가 아버지를 이어 치수를 맡았으나 방법이 없다. 이에 아주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를 올렸더니 천상의 신인이 나타나 ‘어디어디를 가면 누구를 만나리라!’는 계시를 내려 주었다. 해서 완위산(宛委山 : 회계산)에 가서 부루 태자를 만나게 된다.
그 때 단군성조의 맏아들 부루 태자(夫婁太子 : 2세 단군)는 단군성조의 명을 받고 오행치수지법(五行治水之法)이 담긴 《금간옥첩(金間玉牒)》을 우에게 전수해 주었다. 이 내용이 『환단고기』와 후한(後漢) 시대의 조엽(趙曄)이 쓴 사서 『오월춘추(吳越春秋)』에 나온다.
우는 이를 바탕으로 마침내 9년 홍수를 다스리는 데 성공한다. 그 공덕으로 민심을 얻은 우는 후에 하나라를 열었다. 하나라는 순임금으로부터 법통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당시 우에게 전한 《금간옥첩》 속에는 치수의 요결뿐 아니라, 나라를 다스리는 천자의 도와 동방 고조선의 정치제도, 문화가 수록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국가 경영 지침서를 내려준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라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 큰 법도, 〈홍범구주(洪範九疇)〉다. 이를 줄여서 ‘범주’라고 한다. 영어 카테고리(category)의 번역어 어원이 바로 4,300년 전 〈홍범구주〉다.
공자는 자신의 가르침에 대하여 ‘조술요순(祖述堯舜)하시고 헌장문무(憲章文武)하시니라’(「중용(中庸)」30章). 즉 ‘요임금과 순임금의 사상, 심통, 법통을 근본으로 하고 문왕과 무왕의 국가통치 제도를 본받았다’고 하였다. 이 요순임금의 국가 경영 지침서, 그것이 바로 부루 태자가 전한 홍범구주인 것이다.
홍범구주의 다섯 번째가 황극(皇極)사상이다. 황극에 대해 주자는 “황극은 천자의 보위(寶位)다.”라고 정의했다.
황극은 나라의 임금님이다. 하늘도 땅도 인간도 전부 임금님이 주인이다. 그만큼 천자의 자리가 지엄하기 때문에, 천자의 역할, 천자의 영향력이 너무도 엄청나서 ‘천하에 미친다’고 했다. 또한 모든 인간의 삶과 죽음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황극은 천하지중(天下之中)이다’라고 했다. 바로 이 황극으로부터 천자사상이 나온 것이다.
천자제도의 기틀, 동양문화의 근본정신이 담겨있는 《금간옥첩》이 중국에 전해짐으로써 동방 고조선의 천자문화가 본격적으로 중국 문화의 토양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 계기가 된 역사적인 대사건, 세기적인 대사건이 바로 9년 홍수이다.
이후 전국(戰國 : 전국시대 BCE 403~ BCE 221)을 통일한 진(秦)왕 정(政)은 스스로 천자국을 자처하며 자신을 시황[秦始皇]이라고 칭했다. 진시황 이전의 중국의 역대 통치자들은 다 왕이었다. 흔히 성왕이라 하는 요, 순, 우, 탕, 문 무왕도 다 왕이었다. 고대 중국을 천자국으로 묘사한 것은 모두 한(漢) 대 이후 중국 사가들에 의한 조작이며 윤색인 것이다.
- 황제의 칭호를 되찾은 고종
천자문화의 본향인 조선에서는 고조선 이후 고려 말에 이르기까지 천자 칭호가 계승되어 왔다. 우리 민족은 하늘의 자손, 천제의 아들이라는 의식을 갖고 성신의 가르침[神敎]을 받아 내려 인류를 다스려 온 천손민족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개벽의 땅 한반도로 내몰린 동방 조선은 중국의 거듭된 침략을 받으면서 차츰 중국의 속방으로 전락해갔다. 그리하여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고려 25대 충렬왕에 이르러서는 그 호칭을 왕으로 내려 부르게까지 되었다.
그렇게 사대주의에 빠진 나약한 역사의식으로 600년 세월을 보내다가, 19세기에는 국력이 급격히 쇠약해져서 한반도는 강대국들의 각축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 때 본연의 역사정신의 푯대를 세워 천자국의 황통을 회복하려는 비장한 마지막 시도가 있었다.
조선의 실질적인 마지막 임금 고종은 1897년, 천자국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국호 ‘조선’을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황제로 즉위하였다. 고려 충렬왕 이후 약 700년 만에 황제라는 호칭을 되찾은 것이다.
그럼 여기서 궁금증이 들 것이다. 왜 고종임금은 ‘대한제국’이라는 국호를 썼을까? ‘대한제국’의 ‘대한(大韓)’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 ‘대한(大韓)’은 어디에서 왔는가?
하늘에는 삼신, 땅에는 삼한으로, 삼신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옛 조선[古朝鮮]은 조정을 셋으로 나누어 다스렸다[分朝管境]. 이것을 삼한관경제라고도 한다. 관은 관리한다, 경영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국경을 셋으로 나누어 세 분의 왕이 각각 다스렸다는 뜻이다. 나라 이름은 조선인데 현실적으로는 요동의 진한, 요서의 번한, 한반도 전체 마한, 이렇게 삼한으로 다스린 것이다.
마한은 하늘의 정신, 번한은 땅의 정신을 상징한다. 그리고 천지의 주인, 천지의 중심인 태일을 상징하는 곳이 진한이었다. 진한의 강역은 만주지역이며 수도 아사달은 지금의 하얼빈 지역이었다. 그리고 남경, 즉 마한의 수도는 지금의 평양이며, 번한의 수도인 서경은 단재 신채호 선생에 의하면 안시성이다.
조선이 망국의 운으로 들어서자 고종임금은 웅대했던 옛 조선 삼한의 혼을 되찾기 위해, ‘삼한일통(三韓一統)’이라는 의미로 ‘대한’을 붙여서 ‘대한제국’이라 칭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역사학자들은 ‘삼한일통’의 ‘한’을 남삼한(南三韓)으로 얘기한다. 본래의 대륙삼한이 아니라 조선이 망하고 이주해 내려온 ‘백제, 신라, 가야’의 전신인 한강 이남의 삼한인 마한, 번한, 진한에서 왔다는 것이다.
아니, 과연 고종임금이 그 작은 삼한을 염두에 두고 국호를 ‘대한’으로 정했다는 말인가! 그건 정말로 잘못된 해석이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본래 옛 조선의 회복을 꿈꾸고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고 했다. 광활한 대륙을 다스리던, 단군성조가 세운 조선! 요임금 순임금이 즉위를 하고 나서 큰 절을 올린 천자의 나라 동방 조선! 고종은 조선의 천자문화, 황제문화의 역사 정신을 그대로 드러내어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 했던 것이다.
고종 임금이 나라 이름을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꾼 1897년. 이 때는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 상제님의 성수 스물일곱이 되시던 해다. 원시반본의 섭리에 의해 이 땅에 강세하신 증산 상제님은 “내가 있는 곳이 천하의 대중화(大中華)니라.”(道典 2:36:8)고 하셨다. 알고 보면 고종황제는 상제님의 천명을 받들어 천자국의 종주로서 세계만방에 천자국임을 선포한 것이다.
- 개벽의 심장부, 천자국 조선
그러면 왜 시두를 비롯한 괴병이 하필 동방 한국에서 터지는 것일까?
개벽의 중심 땅 한반도에 산다는 것은 가을 대개벽의 태풍의 눈에 들어있는 것과 같다. 그것은 모든 문제의 근원을 보는 진리의 중심에 서 있다는 뜻도 된다.
우리가 한반도에 산다는 것, 여기에는 참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고조선은 조물주 삼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서 삼신 하나님의 삼신제도에 맞추어 나라를 삼한, 셋으로 나눠서 다스렸다. 그런데 이것이 중국의 마지막 왕조까지 그대로 전해 내려왔다.
중국 심양(瀋陽)을 가보면 청나라의 토대를 닦은 후금(後金 : 청淸의 전신)의 태조 누루하치[奴兒哈赤]의 궁궐이 있다. 그 고궁 마당에 들어서면 중앙에 누루하치가 앉던 누각이 있고 좌우로 부왕인 좌익왕(左翼王)과 우익왕(右翼王)이 앉는 누각이 있다. 그리고 좌우 각각 네 명씩 해서 총 여덟 명의 수령이 앉는 전각이 배치되어 있다.
한나라 원제(元帝 : 재위 BCE 49~BCE 33)의 후궁인 왕소군(王昭君)이 흉노의 호한야 선우(呼韓邪單于)에게 시집가 연지(閼氏)가 되어 흉노 땅에서 생애를 마치는데, 그 기록에도 흉노의 좌현왕(左賢王), 우현왕(右賢王) 얘기가 많이 나온다. 그 모든 것이 삼신사상에서 온 것이다.
이처럼 동북아는 중국이 됐든 우리 조선이 됐든, 저 멀리 몽골도 이 삼신문화의 틀에 따라서 나라를 통치했다. 그게 다 역사에 나오는 얘기다.
그런데도 지금 학자들이 이걸 못 본다. 왜? 우주의 창조섭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우주론을 모른다. 또 도를 안 닦아서 신관에 약하다. 진리의 근본을 못 본다. 그러니 역사에 눈을 못 뜨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역사의 뿌리를 다 잃어버렸다. 그들이 말하는 소위 정통사학에서는 백만 년이 가도 역사의 뿌리를 못 찾는다. 절대 찾을 수가 없다!
그럼 잃어버린 우리 문화의 혼, 역사의 뿌리를 누가 되찾는단 말인가! 오직 우리 삼신 하나님, 상제님의 도꾼들이 찾는다, 삼신 문화로써!
삼신 문화는 참으로 쉽고 간결하다. 그러나 그걸 깨치기가 극단적으로 어렵다. 삼신, 석 삼 자에 하나님 신 자. 얼마나 간단한가. 동서양의 인간도 여기서 나오고 하늘땅도 여기서 태어났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개벽의 중심 땅 한반도에 산다는 것, 즉 우리 신교 문화, 삼신 하나님 문화의 중심 땅에 산다는 것은 모든 문제의 근원을 보는 진리의 중심에 서 있다는 뜻이다. 우주 진리의 혼, 그 맥의 중심에서 우리는 지금 벌떡벌떡 숨을 쉬고 있는 것이다.
- 한반도에 깃든 구원의 섭리
한반도는 ‘개벽의 진원지’이며 동시에 ‘구원의 땅’이다! 이 한마디로 정의를 다 한 것이다.
원시반본의 가을개벽 정신에 따라 앞으로 개벽의 진원지, 구원의 땅인 간방 한반도에 가을 추살기운이 가장 먼저 닥쳐온다. 가을 대개벽은 시두가 터지는 것을 신호탄으로 하여 창생의 명줄을 끊는 참혹한 대병겁으로 진행된다. 병겁은 간방 한반도에서 처음 시작되어 세계를 3년 동안 휩쓸어 버린다. 대한민국은 이 개벽상황에서 인류를 건져내는 구원의 천명을 실천함으로써 인류문화의 ‘도주국(道主國)’으로 부상한다. 그리하여 태고시대 천자국의 위상을 되찾는다. 이것이 바로 ‘간(艮)도수’이다.
결국 가을개벽에 대한 이해는 신천지가 열리는 이법과 구원의 섭리인 간도수의 역사에 대한 깨달음의 문제다. 인류의 꿈이 바로 간도수에 담겨있다.
- 천자란?
그러면 천자국에 대하여 살펴보자.
“시두손님인데 천자국이라야 이 신명이 들어오느니라.”
하늘에서 시두를 몰고 오는 신명이 내려오는데, 천자국이라야 이 시두손님이 들어온다는 말씀이다.
천자란 무엇인가?
천자는 ‘천제지자(天帝之子)’의 약자로 ‘하나님의 아들’, ‘우주의 주재자이자 천상의 통치자[天帝]이신 상제님의 아들’을 칭하는 말이다. 예로부터 천자가 다스리는 나라를 천자국이라 불러왔다.
고구려의 창업 시조 고주몽이 동부여에서 탈출하여 엄리대수(淹利大水 ; 지금의 송화강)에 다다랐다. 앞은 강물에 막히고, 뒤에서는 동부여의 군사들이 쫓아오는 절박한 상황이다. 이 때 주몽이 강의 수신(水神)에게 이렇게 외친다.
“아시천제지자(我是天帝之子)!”
‘나는 천제의 아들이다! 나는 하늘 하나님, 상제님의 아들이다! 나는 천자다!’라는 말이다. ‘천제지자’, 즉 ‘천제의 아들’이라는 말을 줄여서 ‘천자’라고 하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신의 아들(Son of God)’이라고 하는데, 이 ‘하나님의 아들’ 문화가 기독교에도 있다. 그들은 수도 없이 ‘주님’을 찾다가 천상으로 올라간다. ‘주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이 주님을 보내셨다는 것이다. 주(主) 사상, 그 문화의 원 뿌리가 동방 조선의 천자사상이다.
또 신교(神敎)를 신앙했던 동방문화에서 천자는 ‘국가의 통치자’를 의미했다. 천자는 인간세계를 대표하여 하늘(상제님)에 제사를 올렸다.
- 천자문화의 본향, 조선
천자문화의 원 고향은 어디일까?
천자라는 말은 중국 한족이 먼저 쓴 게 아니다. 우리 동방 한민족이 먼저 썼다. 그 사실이 중국 사람의 기록에 있다. 후한시대의 채옹(蔡邕)은 『독단(獨斷)』에서 천자제도의 근원에 대해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천자는 동이족 임금의 호칭이다. 하늘을 아버지, 땅을 어머니로 섬기는 까닭에 하늘의 아들이라 한다(天子, 夷狄之所稱, 父天母地故, 稱天子).”
중국인들은 주변의 다른 민족에 대해 ‘동이서융남만북적(東夷西戎南蠻北狄)’이라 하여 오랑캐로 불렀다. 우리 민족을 가리켜 동방의 큰 활을 멘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동이족이라고 했다. 중국 중심의 천하사상(중화사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아들, 제왕을 부르는 ‘천자’라는 호칭은 동방사람이 먼저 썼다고 밝혀 놓았다.
이 내용을 보면 천자는 부천모지, 하늘을 아버지로 삼고 땅을 어머니로 삼았다. 천자는 천지(天地)의 아들이다. 하늘땅 천지부모의 아들인데, 이것을 하늘로 상징해서 하늘의 아들, 천자라고 했다. 천자는 본래 천지의 아들인 것이다.
- 천자에 대한 예(禮)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천자국임을 입증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고대 역사를 살펴보면 주변의 제후들이 천자에게 예를 올린 사건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4,300년 전, 요임금으로부터 정통을 물려받은 순임금이 태산에 올라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고 ‘동방의 천자’를 찾아가 조근(朝覲)하는 예를 올렸다. 이 내용이 『서경』에 “동순망질 사근동후(東巡望秩 肆覲東后)”라고 기록되어 있다.
동순망질(東巡望秩), 동쪽으로 순행하여 산천에 제를 지내고 사근동후(肆覲東后), 동방의 임금님을 알현했다. ‘사근동후’에서 ‘근(覲)’은 『강희자전』에 ‘하현상(下見上)’, 즉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뵙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근친(覲親)가다, 조근(朝覲)한다고 할 때의 근 자로 ‘제후가 천자를 뵙는다’는 뜻이다.
왜 순임금은 하나님께 제를 올리고 나서 동방의 천자를 찾아뵈었을까? 이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 동방 고대문화와 역사의 비밀이 다 들어있다. 순은 “제가 이제 천하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하고 천지의 주인이신 상제님께 고하고 나서, 자기들을 다스리시는 동방의 천자님을 찾아뵙고 예를 올린 것이다.
여기서 순임금이 알현한 ‘동후(東后)’는 단군성조님을 말한다. 사근동후란 고조선의 제후 순이 동방의 천자인 단군왕검을 찾아뵈었다는 뜻인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 ‘후’ 자를 제후 후(侯) 자로 해석을 하여 ‘가서 동방제후를 만났다’고 왜곡해 놓았다. 그러나 분명히 제후 후 자가 아니고 임금님 후(后) 자가 아닌가.
- 조선의 천자문화가 어떻게 중국으로 넘어갔을까?
그러면 조선의 천자문화가 어떻게 중국으로 넘어갔을까?
앞의 기록으로 보면 순임금은 동방 천자로부터 임명받은, 천자의 영향력 하에 살던 제후였다. 그런데 4,300년 전인 고조선 초기, 요임금 말엽부터 순임금 때까지 동북아 지역에 9년 홍수가 일어나 중국 일대가 물바다가 되었다. 이때 요임금이 치수관인 곤에게 물을 다스리라고 하였으나 곤은 실패했다. 곤은 훗날 하(夏)나라를 연 우(禹)임금의 아버지다. 옛날에는 역사를 기록하는 일이나 치수하는 일 등을 가가계승했다. 그래서 우가 아버지를 이어 치수를 맡았으나 방법이 없다. 이에 아주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를 올렸더니 천상의 신인이 나타나 ‘어디어디를 가면 누구를 만나리라!’는 계시를 내려 주었다. 해서 완위산(宛委山 : 회계산)에 가서 부루 태자를 만나게 된다.
그 때 단군성조의 맏아들 부루 태자(夫婁太子 : 2세 단군)는 단군성조의 명을 받고 오행치수지법(五行治水之法)이 담긴 《금간옥첩(金間玉牒)》을 우에게 전수해 주었다. 이 내용이 『환단고기』와 후한(後漢) 시대의 조엽(趙曄)이 쓴 사서 『오월춘추(吳越春秋)』에 나온다.
우는 이를 바탕으로 마침내 9년 홍수를 다스리는 데 성공한다. 그 공덕으로 민심을 얻은 우는 후에 하나라를 열었다. 하나라는 순임금으로부터 법통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당시 우에게 전한 《금간옥첩》 속에는 치수의 요결뿐 아니라, 나라를 다스리는 천자의 도와 동방 고조선의 정치제도, 문화가 수록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국가 경영 지침서를 내려준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라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 큰 법도, 〈홍범구주(洪範九疇)〉다. 이를 줄여서 ‘범주’라고 한다. 영어 카테고리(category)의 번역어 어원이 바로 4,300년 전 〈홍범구주〉다.
공자는 자신의 가르침에 대하여 ‘조술요순(祖述堯舜)하시고 헌장문무(憲章文武)하시니라’(「중용(中庸)」30章). 즉 ‘요임금과 순임금의 사상, 심통, 법통을 근본으로 하고 문왕과 무왕의 국가통치 제도를 본받았다’고 하였다. 이 요순임금의 국가 경영 지침서, 그것이 바로 부루 태자가 전한 홍범구주인 것이다.
홍범구주의 다섯 번째가 황극(皇極)사상이다. 황극에 대해 주자는 “황극은 천자의 보위(寶位)다.”라고 정의했다.
황극은 나라의 임금님이다. 하늘도 땅도 인간도 전부 임금님이 주인이다. 그만큼 천자의 자리가 지엄하기 때문에, 천자의 역할, 천자의 영향력이 너무도 엄청나서 ‘천하에 미친다’고 했다. 또한 모든 인간의 삶과 죽음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황극은 천하지중(天下之中)이다’라고 했다. 바로 이 황극으로부터 천자사상이 나온 것이다.
천자제도의 기틀, 동양문화의 근본정신이 담겨있는 《금간옥첩》이 중국에 전해짐으로써 동방 고조선의 천자문화가 본격적으로 중국 문화의 토양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 계기가 된 역사적인 대사건, 세기적인 대사건이 바로 9년 홍수이다.
이후 전국(戰國 : 전국시대 BCE 403~ BCE 221)을 통일한 진(秦)왕 정(政)은 스스로 천자국을 자처하며 자신을 시황[秦始皇]이라고 칭했다. 진시황 이전의 중국의 역대 통치자들은 다 왕이었다. 흔히 성왕이라 하는 요, 순, 우, 탕, 문 무왕도 다 왕이었다. 고대 중국을 천자국으로 묘사한 것은 모두 한(漢) 대 이후 중국 사가들에 의한 조작이며 윤색인 것이다.
- 황제의 칭호를 되찾은 고종
천자문화의 본향인 조선에서는 고조선 이후 고려 말에 이르기까지 천자 칭호가 계승되어 왔다. 우리 민족은 하늘의 자손, 천제의 아들이라는 의식을 갖고 성신의 가르침[神敎]을 받아 내려 인류를 다스려 온 천손민족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개벽의 땅 한반도로 내몰린 동방 조선은 중국의 거듭된 침략을 받으면서 차츰 중국의 속방으로 전락해갔다. 그리하여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고려 25대 충렬왕에 이르러서는 그 호칭을 왕으로 내려 부르게까지 되었다.
그렇게 사대주의에 빠진 나약한 역사의식으로 600년 세월을 보내다가, 19세기에는 국력이 급격히 쇠약해져서 한반도는 강대국들의 각축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 때 본연의 역사정신의 푯대를 세워 천자국의 황통을 회복하려는 비장한 마지막 시도가 있었다.
조선의 실질적인 마지막 임금 고종은 1897년, 천자국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국호 ‘조선’을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황제로 즉위하였다. 고려 충렬왕 이후 약 700년 만에 황제라는 호칭을 되찾은 것이다.
그럼 여기서 궁금증이 들 것이다. 왜 고종임금은 ‘대한제국’이라는 국호를 썼을까? ‘대한제국’의 ‘대한(大韓)’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 ‘대한(大韓)’은 어디에서 왔는가?
하늘에는 삼신, 땅에는 삼한으로, 삼신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옛 조선[古朝鮮]은 조정을 셋으로 나누어 다스렸다[分朝管境]. 이것을 삼한관경제라고도 한다. 관은 관리한다, 경영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국경을 셋으로 나누어 세 분의 왕이 각각 다스렸다는 뜻이다. 나라 이름은 조선인데 현실적으로는 요동의 진한, 요서의 번한, 한반도 전체 마한, 이렇게 삼한으로 다스린 것이다.
마한은 하늘의 정신, 번한은 땅의 정신을 상징한다. 그리고 천지의 주인, 천지의 중심인 태일을 상징하는 곳이 진한이었다. 진한의 강역은 만주지역이며 수도 아사달은 지금의 하얼빈 지역이었다. 그리고 남경, 즉 마한의 수도는 지금의 평양이며, 번한의 수도인 서경은 단재 신채호 선생에 의하면 안시성이다.
조선이 망국의 운으로 들어서자 고종임금은 웅대했던 옛 조선 삼한의 혼을 되찾기 위해, ‘삼한일통(三韓一統)’이라는 의미로 ‘대한’을 붙여서 ‘대한제국’이라 칭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역사학자들은 ‘삼한일통’의 ‘한’을 남삼한(南三韓)으로 얘기한다. 본래의 대륙삼한이 아니라 조선이 망하고 이주해 내려온 ‘백제, 신라, 가야’의 전신인 한강 이남의 삼한인 마한, 번한, 진한에서 왔다는 것이다.
아니, 과연 고종임금이 그 작은 삼한을 염두에 두고 국호를 ‘대한’으로 정했다는 말인가! 그건 정말로 잘못된 해석이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본래 옛 조선의 회복을 꿈꾸고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고 했다. 광활한 대륙을 다스리던, 단군성조가 세운 조선! 요임금 순임금이 즉위를 하고 나서 큰 절을 올린 천자의 나라 동방 조선! 고종은 조선의 천자문화, 황제문화의 역사 정신을 그대로 드러내어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 했던 것이다.
고종 임금이 나라 이름을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꾼 1897년. 이 때는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 상제님의 성수 스물일곱이 되시던 해다. 원시반본의 섭리에 의해 이 땅에 강세하신 증산 상제님은 “내가 있는 곳이 천하의 대중화(大中華)니라.”(道典 2:36:8)고 하셨다. 알고 보면 고종황제는 상제님의 천명을 받들어 천자국의 종주로서 세계만방에 천자국임을 선포한 것이다.
- 개벽의 심장부, 천자국 조선
그러면 왜 시두를 비롯한 괴병이 하필 동방 한국에서 터지는 것일까?
개벽의 중심 땅 한반도에 산다는 것은 가을 대개벽의 태풍의 눈에 들어있는 것과 같다. 그것은 모든 문제의 근원을 보는 진리의 중심에 서 있다는 뜻도 된다.
우리가 한반도에 산다는 것, 여기에는 참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고조선은 조물주 삼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서 삼신 하나님의 삼신제도에 맞추어 나라를 삼한, 셋으로 나눠서 다스렸다. 그런데 이것이 중국의 마지막 왕조까지 그대로 전해 내려왔다.
중국 심양(瀋陽)을 가보면 청나라의 토대를 닦은 후금(後金 : 청淸의 전신)의 태조 누루하치[奴兒哈赤]의 궁궐이 있다. 그 고궁 마당에 들어서면 중앙에 누루하치가 앉던 누각이 있고 좌우로 부왕인 좌익왕(左翼王)과 우익왕(右翼王)이 앉는 누각이 있다. 그리고 좌우 각각 네 명씩 해서 총 여덟 명의 수령이 앉는 전각이 배치되어 있다.
한나라 원제(元帝 : 재위 BCE 49~BCE 33)의 후궁인 왕소군(王昭君)이 흉노의 호한야 선우(呼韓邪單于)에게 시집가 연지(閼氏)가 되어 흉노 땅에서 생애를 마치는데, 그 기록에도 흉노의 좌현왕(左賢王), 우현왕(右賢王) 얘기가 많이 나온다. 그 모든 것이 삼신사상에서 온 것이다.
이처럼 동북아는 중국이 됐든 우리 조선이 됐든, 저 멀리 몽골도 이 삼신문화의 틀에 따라서 나라를 통치했다. 그게 다 역사에 나오는 얘기다.
그런데도 지금 학자들이 이걸 못 본다. 왜? 우주의 창조섭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우주론을 모른다. 또 도를 안 닦아서 신관에 약하다. 진리의 근본을 못 본다. 그러니 역사에 눈을 못 뜨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역사의 뿌리를 다 잃어버렸다. 그들이 말하는 소위 정통사학에서는 백만 년이 가도 역사의 뿌리를 못 찾는다. 절대 찾을 수가 없다!
그럼 잃어버린 우리 문화의 혼, 역사의 뿌리를 누가 되찾는단 말인가! 오직 우리 삼신 하나님, 상제님의 도꾼들이 찾는다, 삼신 문화로써!
삼신 문화는 참으로 쉽고 간결하다. 그러나 그걸 깨치기가 극단적으로 어렵다. 삼신, 석 삼 자에 하나님 신 자. 얼마나 간단한가. 동서양의 인간도 여기서 나오고 하늘땅도 여기서 태어났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개벽의 중심 땅 한반도에 산다는 것, 즉 우리 신교 문화, 삼신 하나님 문화의 중심 땅에 산다는 것은 모든 문제의 근원을 보는 진리의 중심에 서 있다는 뜻이다. 우주 진리의 혼, 그 맥의 중심에서 우리는 지금 벌떡벌떡 숨을 쉬고 있는 것이다.
- 한반도에 깃든 구원의 섭리
한반도는 ‘개벽의 진원지’이며 동시에 ‘구원의 땅’이다! 이 한마디로 정의를 다 한 것이다.
원시반본의 가을개벽 정신에 따라 앞으로 개벽의 진원지, 구원의 땅인 간방 한반도에 가을 추살기운이 가장 먼저 닥쳐온다. 가을 대개벽은 시두가 터지는 것을 신호탄으로 하여 창생의 명줄을 끊는 참혹한 대병겁으로 진행된다. 병겁은 간방 한반도에서 처음 시작되어 세계를 3년 동안 휩쓸어 버린다. 대한민국은 이 개벽상황에서 인류를 건져내는 구원의 천명을 실천함으로써 인류문화의 ‘도주국(道主國)’으로 부상한다. 그리하여 태고시대 천자국의 위상을 되찾는다. 이것이 바로 ‘간(艮)도수’이다.
결국 가을개벽에 대한 이해는 신천지가 열리는 이법과 구원의 섭리인 간도수의 역사에 대한 깨달음의 문제다. 인류의 꿈이 바로 간도수에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