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열전

신교의 삼신문화와 역사관에 정통한 이암(李嵒)

늠내 화랑 2016. 7. 8. 22:12

역사속 인물 탐구 '행촌 이암'

 


신교의 삼신문화와 역사관에 정통한 이암(李嵒 1297~1364) 


■ 고려 충렬왕 23년(1297), 경상도 김해, 강원도 회양 부사를 지낸 이우의 장남이자 고성이씨 9세손으로 태어났다. 


■ 10세(충렬왕 32, 1306) 때 강화도 마리산 참성단에 올라 단군왕검의 역사의식을 가슴에 새기고 고려를 동방의 맑고 깨끗한 나라로 일신하게다고 맹세하였다. 


■ 17세(충선왕 6, 1313) 때 문과에 급제, 충정왕 때 찬성사, 좌정승을 지냈고, 공민왕 때 철원군에 봉해졌다. 

홍건적 침입 때 임금을 호종하여 1등 공신이 되고 철성부원군에 봉해졌다. 

글씨를 잘 써서 동국의 조자앙이라 일컬어졌고 묵죽을 잘 그렸다. 

[서경 -태갑-] 편을 옮겨 써서 왕에게 바쳤다. 


■ 환국과 배달 역사의 근본을 통하고 환단사상에 대해 깊은 안목을 가진 대학자 조부 이존비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 받았다. 


■ [단군세기] 서문은 신교 문화의 우주관, 신관, 인성론, 수행문화의 근원적 핵심원리를 체계화시킨 만고의 대문장이다. 


■ 이암이 죽자(공민왕 13년) 공민왕이 친히 초상을 그리고 행촌이란 두 글자를 써서 관원을 보내 제사를 지냈다. 

우왕 1년(1375)에 충정왕의 묘정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