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국왕검의 조선 개국
단국왕검의 조선 개국
이후에 신인 왕검이 불함산의 박달나무가 우거진 터에 내려 오셨다.
왕검께서 지극히 신성한 덕성과 성인의 인자함을 겸하시고, 능히 선대 환인.환웅. 성종의 법을 이어 받고 뜻을 받들어 인류의 푯대를 세우시니, 그 공덕이 높고 커서 찬란하게 빛났다.
이에 구환의 백성이 모두 기뻐하고 진실로 북종하여 천제의 환신으로 추대하여 임금으로 옹립하니, 이분이 바로 단군왕검이시다.
왕검께서는 신시 배달의 옛 법도를 되살리시고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여 나라를 여시니, 그 이름을 조선이라 하셨다.
단군왕검께서는 두 손을 맞잡은 채 단정히 앉아 함이 없이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아 다스리셨다.
현묘한 도를 깨치셨으며, 뭇 생명을 접하여 교화하실 대, 팽우에게 명하여 토지를 개척하게 하시고, 성조에게 궁실을 짓게 하시고, 고시에게 농사일을 맡게 하시고, 신지에게 글자를 만들게 하시고, 기성에게 의약을 베풀게 하시고, 나을에게 호적을 관장하게 하시고, 희에게 괘설르 주관하게 하시고, 우에게 병마를 담당하게 하셨다.
단군왕검께서 비서갑에 사는 하백의 따님을 맞이하여 황후로 삼고 누에치길르 관장하게 하시니, 백성을 사랑하시는 어질고 후덕한 정치가 사방에 미치어 천하가 태평해졌다.
병진(단기1909, BCE 425)년 주나라 고왕때 나라 이름을 대부여로 바꾸고 도읍을 백악산에서 장단경으로 옮겼으며, '8조 금법'으로 법도를 세우셨다.
책읽기와 활쏘기에 힘스게 하고, 하늘(삼신상제님)에 제사 지내는 것을 근본 가르침으로 삼았으며, 농사와 누에치기에 힘스고 산과 못을 일반 백성에게 개방하셨다.
죄를 지어도 처자식에게 미치지 않게 하고,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힘을 합하여 다스리셨다.
남자에게는 일정한 직업이 잇고 여자에게는 좋은 배필이 있었다.
집집마다 재물이 풍족하고, 산에는 도적이 없고 들에는 굶주리는 사람이 없으며, 악기 소리와 노랫소리가 온 나라에 넘쳐 흘렀다.
시조 단군왕검께서 무진(BCE 2333)년에 다스리신 이래 47세를 전하니, 역년은 2,096년이다.
※현묘한도 : 한민족의 시원 종교이며 인류의 모체 종교인 '신교'를 말한다.
최치원이 난랑비서에서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라 한다" 라고 밝힌 풍류도의 본래 이름이 신교이다.